brunch

매거진 Honeyberry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니베리 Oct 26. 2023

엄마라는 옷 입기

아침 노래(Morning Song by Silvia Plath)

 공기를 갈기갈기 찢는 듯한 비명. 극심한 산고 끝에 새 생명이 탄생한다. 갓난아이를 품에 안은 산모는 환희에 싸여 출산의 고통을 잊는다. 눈에서는 감격의 눈물이, 가슴에서는 모성애가 펑펑 솟아난다. 대중매체를 통해 형성된 출산에 관한 이미지는 이와 같이 매우 극적이었다. 하지만 나의 경험은 좀 달랐다.


 서른여덟 시간의 난산 끝에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아기의 어깨가 산도를 빠져나오자, 고슴도치 가시처럼 촘촘하게 박힌 통증 사이로 시원함과 안도감이 퍼졌다. 의사가 강보로 돌돌 만 아기를 내 곁에 눕히더니 아기의 이름을 불러보라고 했다. 눈을 일자로 꾹 감고 누워있는 아기를 향해 고개를 돌려 태명을 불렀다. 아기가 눈을 번쩍 뜨더니 나를 바라보았다. 작은 사람이 내뿜는 강렬한 기운에 당황했다. “아들입니다.” “엄마야.” 의사가 우리 두 사람을 서로에게 소개해 주었다. 내게서 나왔지만, 완벽하게 낯선 타인이었다.  


 숭고하고 아름답게 묘사되는 출산과 모유 수유의 이면은 비루했다. 쉽사리 회복되지 않는 몸은 물에 젖은 채 흙바닥에 방치된 터진 솜이불 같았다. 이러한 몸으로로 아기를 먹이고, 어르고, 재우는 행위를 끊임없이 반복해야만 했다. 이 작은 손님은 우리의 생활방식은 물론이고 언어를 배우는 데에도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말이나 노래로, 그는 울음으로 대화를 시도했고, 그 외의 시간은 적막으로 채워졌다. 시간은 아주 더디게 흘렀다. 아기가 엄마라는 단어로 나를 부르기 시작할 즈음에서야 나는 어색하게 걸치고 있던 엄마라는 옷에 두 팔을 끼워 넣었다.


 실비아 플라스(Silvia Plath)의 아침 노래(Morning Song)라는 시가 있다. 이 시에서는 모성에 대한 당위성을 주장하지 않는다. 우리가 삶에 초대한 아기가 마냥 기쁨만을 선사한다고도 묘사하지 않는다. 단지 여자가 아기의 연약함과 사랑스러움에 반응하며 아이와의 거리를 좁혀가면서 엄마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을 뿐이다. 나는 이 시를 읽으며 죄책감 없이 나의 지난 출산과 육아의 시간을 돌아보며 나를 어루만질 수 있었다. 출산 후 아기의 울음소리에 무거운 걸음으로 휘청거리며 일어서는 엄마들에게 이 시를 권한다.





이미지 출처: Freepik

매거진의 이전글 아프지만, 아프지 않게 계승되는 사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