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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니베리 Feb 13. 2024

마술껌

세상에서 제일 명석한 할머니

 겨울방학 동안 미국 시댁에서 머물기로 했다. 출국 당일 새벽까지도 일을 하다가 남편이 공항 가는 택시를 부른 뒤에야 부랴부랴 짐을 싸고, 배웅 나온 친정엄마와 짧게 인사를 나눈 뒤 정신없이 공항으로 향했다.


 시댁에 도착하여 짐을 푸는데 트렁크에서 정체불명의 비닐 뭉치가 튕겨 나왔다. 뭔가 싶어서 열어보니 풍선껌과 젤리가 들어있었다. 풍선껌 수를 헤아려 보니 무려 열 통이나 됐다.


 “자기야, 이게 뭐예요?”

 “아, 그거? 출발 직전에 짐 싣는데 장모님이 가방에 넣어주셨어요.”

 “뭐? 풍선껌이랑 젤리를? 미국에 오는데? 왜 안 말렸어요?”

 “짐 싣느라고 정신없었어. 그리고 아이 주라고 일부러 사 오신 걸 어떻게 빼?”

 “엄마는 참, 미국 오는 대체 왜 껌을 사서 넣으셨냐고. 그것도 이렇게나 많이!


 말은 이렇게 내뱉으면서도, 여행 떠나는 아이에게 한국 용돈을 쥐여줄 수없으니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아이가 좋아할 만한 풍선껌을 떠올리고는 종류별로 한 개씩 집어 장바구니에 담았을 엄마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러한 엄마가 고맙고 애틋하면서도 답답하기도 하여 속상하다가 이내 죄책감이 느껴지며 서글퍼지는, 풍선껌 종류만큼이나 다채로운 감정이 올라왔다.


 멀쩡한 껌을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라 외출용 가방에 풍선껌을 넣어서 다녔다.


 “외할머니는 왜 풍선껌을 이렇게 많이 사 주셨대? 하루에 한 개씩 씹어도 50일은 필요한데 말이야.”

 “너를 향한 사랑이 한가득이라 그래.”


 “할머니가 진짜 껌 많이 사 주셨다. 아직도 많이 남았잖아.”

 “혹시라도 여행 중간에 떨어질까 봐 넉넉히 사주셨나 보다.”


아,  맞다! 할머니가 나 멀미 날 때 껌 주셔서 씹으면 멀미 안 했는데. 우리가 차를 자주 탈 거 알고 이만큼 넣어 주신 건가?그러고 보니, 차만 타면 멀미하는 아이였는데 풍선껌을 씹어서인지 멀미 증상이 예전처럼 심하지 않았다.

 

 풍선껌을 불며 아이는 외할머니를 생각했다. 달콤한 외할머니, 멀리서도 멀미를 멎게 해 주는 약손을 갖고 있는 외할머니. 우리 엄마, 명석하시다.


 “엄마, 한국에서 껌 가져오길 잘한 것 같아요. 미국 껌은 딱딱할 거 같거든.”

 껌을 씹을 때마다 한 마디씩 내뱉던 아들 녀석은, 어느새 씹어보지도 않은 미국 껌을 폄하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엄마, 나 풍선 진짜 잘 불지? 크게 불면 사진 찍어서 외할머니한테 보내줘.”

그때, 아이 옆자리에 앉아 계시던 시어머니께서 한 말씀하셨다.

 “아니, 무슨 풍선껌을 그렇게 씹니? 껌을 많이 씹으면 이가 썩어요.”

갑자기 속이 더부룩 해졌다. 소화에 껌이 도움이 된다던데.... 


 운전하던 남편이 곁에서 내 체기를 더해주었다.

 “장모님께서 껌을 열 통이나 싸주셨더라고. 아, 맞다. 자기는 예전에 미국 올 때 참치 캔 잔뜩 싸들고 온 적 있다고 했지? 하하하.”


  어머님 때문에 남편에게 눈빛 레이저도 쏘지 못하고 눈을 내리깐 채 조용히 중얼거렸다.

  “원이, 저 아이한테는 풍선껌이 멀미약 보다 효과가 좋아서요.”


 풍선껌을 질겅질겅 씹고 풍선을 크게 불어 펑펑 터뜨리면 스트레스가 날아갈 것 같다. 풍선껌 한 개를 찾아 입속에 살짝 넣었다. 이래서 엄마가 껌을 넉넉히 넣어주셨나 보다. 정말이지 명석하신 우리 엄마.









이미지 출처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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