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맞이한 첫날. 비행기에서 느끼한 음식을 먹은 탓에 매콤한 음식과 시원한 국물을 먹고 싶었다.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던 중,내가 가장 좋아하는 비빔국수와 잔치국수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면류를 좋아하시는 아버님 댁에 국수가 없을 리 만무했다. 멸치다시 육수를 내어 잔치국수 국물을 내는 동안 총총 썬 배추김치에 고추장, 설탕, 식초를 넣어 새콤달콤 칼칼한 비빔국수 소스를 만들고 레몬즙을 짜 넣어서 상큼함을 더해주었다. 그 사이 국수 면발이 탱탱하게 잘 익었다. 면을 찬물에 헹군 뒤 물을 탈탈 털었다. 감칠맛 나는 빨간색 소스에 국수 절반을 넣고 참기름을 한 바퀴 크게 두른 뒤 쓱쓱 버무려서 커다란 볼에 담아 깨를 솔솔 뿌렸다. 나머지 국수는 팔팔 끓는 멸치육수에 넣어 다시 한번 파르르 끓여 그릇에 붓고 노란색 계란 지단과 초록색 파를 송송 썰어 얹었다. 간장에 고춧가루와 참기름 몇 방울 톡톡 떨어뜨리고 파와 청양고추를 잘게 썰어 양념장 만들어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버님, 어머님! 국수 드세요.
내가 차린 음식을 보고 두 분의 눈이 동그래지셨다.
“아니, 국수 요리를 두 가지나 했니?”
“저는 매운 것을 좋아하고, 아이는 매운 것을 못 먹어서 같은 재료로 두 가지 요리를 하곤 해요.둘 다 맛보세요.”
어머님의 반응을 기다리며 살짝 긴장했다.
아버님은 내가 한 음식을 꽤 드셔보셨지만, 어머님께는 음식을 만들어드릴 기회가 많지 않았다. 아버님보다 한국 방문 횟수도 적으셨고, 오셔도 약속 등 바쁜 일정으로 거의 외식을 하고 오셨기 때문이다.간혹함께 식사하실 때도 음식을 조금 드시길래 워낙에 소식하는 분이신 데다가 내 음식이 입에 안 맞으신다고 여겼다.
하지만 어머님 앞에서 요리하는 게 어렵고 조심스러운 결정적 이유는 따로 있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이튿날곧 미국으로 떠나실 시부모님을 위해장을 봐와서 상을 한가득 차렸다.여독도 풀리지 않는 상태로 말이다. 식구들이 상에 둘러앉았는데 감탄하는 남자들과 달리, 여자들 사이에는 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요리와 담을 쌓고 사는 형님이 어두운 낯빛으로 비쭉거리며 상을 바라보고 있었고, 어머님은 그런 형님 손을 잡고 다독이고 계셨다. 내가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어머님께서 상을 쭉 훑어보시고는 못마땅한 얼굴로 말씀하셨다. “네가손이 커서 안 되겠구나.” 그리고 밥을 몇 술 뜨시더니 소화가 안 되신다며 숟가락을 탁 내려놓으셨다.
내가 아기를 낳자 어머님께서 아이를 보기 위해 한국에 오셨다. 아기를 업고 닭백숙을 끓이며 외출하신 어머님을 기다렸지만 어머님께서는 감감무소식이셨다. 저녁 늦게 들어오신 어머님께서는 옛 동료들과 만나 호텔 음식을 맛있게 드셔서 배부르시다며 내게 밥을 먹었는지 여부는 묻지도 않으신 채 주방 불을 꺼버리셨다. 나는 너무 허기져서 되려 밥 생각이 없었지만 수유를 위해 밥에 물을 말아 목구멍에 밀어 넣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나도 미련하게도 불을 다시 켜지도 못하고 어둠 속에 선 채로 말이다. 그때 어머님 목소리가 들렸다. "얘, 밥 많이 먹으면 배 나와서 못써요. 네 형님처럼 살 빼면 옷 한 벌 사주마."
미국에서 한 달간 어머님과 지내보니 어머님은 마르고 왜소한 체구와 달리 대식가셨다. 어머님 식사량이 적다거나 내 음식이 맘에 안 든다는 것은 지난 십여 년간 어머님에 대해 품어왔던 수많은 오해 중 하나였다. 어머님은 한국에 머무실 때 매번 기름진 바깥 음식을 드셔서 늘 속이 불편하셨던 것이다. 아버님뿐 아니라 어머님께서도 비빔국수와 잔치국수를 번갈아 가며 많이 드셨고, 어머님께서 그렇게 드시는 장면을 처음 뵌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