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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니베리 Mar 04. 2024

미국에서 한식만 드시는 이유

크림파스타를 좋아하시지만

 

 어머님은 워낙 잠도 없으시고 부지런하신 분이시지만, 내가 방문한 당시 편찮으셔서 요리는 물론이고 앉아계시는 것도 힘들어하셨다. 따라서 주방의 주도권이 자연스럽게 내게 넘어왔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에 오기 전, 미국에서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까에 관해 남편과 이야기 나눈 적이 있다. 우리는 잠시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동시에 “요리!”라고 외쳤다. 남편과 나 둘 다 요리를 좋아하는데 한국에서 구하기 어려운 식재료를 사용해서 이런저런 음식을 만들어 볼 생각에 들떴다. 하지만 미국에서 한 달 지내는 동안 몇 끼를 제외하고는 내리 한식만 하게 될 줄이야. 게다가 미국에서 만든 '외국' 음식은 한국에도 재료를 쉽게 구해서 만들 수 있는 음식들이었는데 그 중 하나가 크림파스타였다. 사연이 있어서이다.


 우리는 미국에 계시는 시부모님께 카톡으로 종종 사진을 보내드리곤 했다. 한 번은 집에서 음식을 먹는 사진을 보신 어머님께서 질문을 던지셨다.


 “접시에 담긴 하얀 건 뭐니?”

 “크림파스타예요.”

 “그걸 집에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거니? 그거 오래전에 먹어봤는데 엄청 맛있더라.”

 “저희는 소스를 만들어 먹는데, 마트에서는 데우기만 하면 먹을 수 있는 것도 팔아요.”

 “마트에서? 한국은 없는 게 없구나.”

 “어머님, 미국에도 있는데요.”

  '미국에도 있다'라고 말씀드렸으나 사실 ‘한국에도 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날로 당장 미국 마트에서 파는 파스타 소스 브랜드와 이미지를 검색하여 시부모님께 보내드렸고, 두 분은 처음으로 크림파스타를 만들어 드셨다고 한다(는데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쉰 가까운 나이에 이민 가셨고, 미국에서도 한식만 해 드셨으니, 한국에서 자녀들과 지내는 분들보다 서양 음식을 오히려 적게 드셨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았다. 심지어 한국인이 없는 동네에 거주하시는데도 말이다.


 미국에 오면 크림파스타 꼭 해드리겠다고 약속드렸던 게 생각나서 가까운 마트에 갔다. 하지만 마트 진열대에는 내가 원하는 100퍼센트 동물성 fresh cream, 즉 생크림이 없었다. 직원에게 물어봤더니 내 말을 못 알아들었다. 나는 그를 이해했다. 말하고 있는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걸..... 결국 어쩔 수 없이 직원이 진땀 흘리며 가리키는 whipped cream, 첨가제가 들어간 휘핑크림을 집어 들었다.


 드디어 시댁에서 나의 크림파스타 레시피를 펼쳐보였다.

 먼저, 끓는 물에 소금과 올리브오일을 넣고 스파게티 면을 삶았다. 익은 면을 건져내어 올리브유로 버무려 코팅했다. 이렇게 코팅해 놓은 면은 냉장해 두었다가 이튿날 먹어도 된다.

 면이 익는 동안 냄비에 버터를 녹인 후 같은 비율로 밀가루를 넣고 볶아 화이트 루(White Roux)를 만들었다. 밀가루를 볶을 때는 프라이팬에 남은 잔열로만 볶아도 충분하다. 불 위에서 밀가루를 섞으면 재료가 탈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프라이팬을 약불 위에 올리고 화이트 루에 면수를 조금씩 나누어 넣으며 잘 개어준다. 되직해지면, 우유와 생크림을 붓고 섞어서 센 불로 끓인다.

 크림소스가 완성되면, 재료를 볶을 차례이다. 팬에 오일을 두르고 편마늘과 양파를 볶다가 새우, 양송이, 브로콜리 등을 넣고 휘리릭 볶는다. 새우는 내장을 제거하고 소금, 후추로 밑간을 해놓으면 좋다.

 자, 이제는 모두를 섞을 차례이다. 재료를 볶은 팬에 만들어 놓은 크림소스를 붓고 끓이다가 파마산치즈 가루와 소금, 후추로 간한다. 여기에 면을 섞어서 그릇에 담거나, 접시에 담아놓은 면에 소스를 부으면 오늘의 요리 완성!


 양이 너무 과한가 싶었는데 어머님, 아버님은 오늘도 접시를 깨끗하게 비우셨다. 두 분은 한식만 고집하시는 분이 아니셨다. 단지, 서양 요리 방법을 모르셨을 뿐.


정말 맛있었어. 이전에 먹어본 그 맛이네.
한국에서 온 너에게 여기 생활을 배우는구나.
고맙다.

어머님 자존심의 상징인 진한 색의 작은 입술에서 고맙다는 말씀이 부드럽게 흘러나왔다.


우린 여기 오래 살았어도 뭐가 뭔지 잘 몰라서 맛있는 걸 못 해 먹는다.

팔순 바라보시는 아버님 말씀에 콧잔등이 시큰해졌다.


 아버님, 저희가 여러 가지 식재료 활용 방법 알려드릴게요. 그날부터 우리 부부는 박물관, 미술관 관람하듯 메모장까지 손에 쥐고 장 보러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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