췌장암 트레일에서 내려와
도로 건너편 먼 곳에 노인 한 분이 휘청대며 서 계셨다. 자세히 보기 위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레이 톤으로 점잖게 맞춘 상·하의를 입으시고 챙 짧은 모자를 쓰신 모습이 아버지와 비슷해 보였다. 혹시, 설마, 아버지이실까.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심장이 요란하게 뛰었다.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려면 60초는 더 기다려야 하는데. 저렇게 흔들리는 몸으로 왜 혼자 나오셨을까. 지팡이라도 짚고 나오시지.
보행자 신호가 들어오자마자 횡단보도로 발걸음을 옮겼다. 노인분이 몇 걸음 떼셨을 무렵 나는 이미 그 앞에 도착해 있었다. 역시나 아버지는 아니셨다. 하지만 이분 또한 아버지셨다.
아버지께서 암 수술받으신 지 3주가 되어간다. 수술을 마치고 회복실로 나오시는 얼굴에 웃음이 가득 담겨 있었다. 마취제 후유증일까 싶었지만, 고통스러운 회복 과정에도 아버지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퇴원하시던 날 입원실에서 내려오시는 아버지를 기다렸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신 아버지는 나를 향해 두 팔을 활짝 펼치고 다가오셨다. 종종걸음으로 비틀대며 다가오시는 모습이 위태로워 보였다. 아버지의 마음은 우리를 보는 순간 이미 우리 앞에 도달했을 것이다.
오빠와 함께 아버지 곁으로 달려갔다. 아버지는 시선과 두 팔을 여전히 내게 향한 채였다. 반가움보다도 곁에 서 있던 오빠가 의식되었다.
“오빠 안아주세요.”
한 걸음 물러서며 아버지를 살짝 오빠에게 밀어드렸다. 하지만 오빠도, 아버지도 서로를 향해 성큼 다가서지 못했다. 대신 아버지께서는 오른손으로 내 손을, 왼손으로 오빠 손을 꼭 부여잡으시고는 나를 향해, 오빠를 향해 그리고 시선을 높이 올리시며 말씀하셨다.
“고마워, 고맙다. 고맙습니다.”
아버지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암 진단받으셨을 때와 항암 치료 중 그리고 수술실에 들어가실 때의 의연함을 벗으신 채, 감정을 투명하게 드러내셨다. 처음 마주한 모습이었다.
퇴원 후 아버지는 식사와 운동, 기도와 수면 위에 일상을 세워가신다. 아직 죽을 드시며 동네 산책 정도가 운동의 전부이지만, 낯선 관광지에서 새로운 음식을 드시듯 즐겁게 받아들이신다.
항암 치료 기간 중 사드린 지팡이를 수술 후에는 사용하지 않으시는 아버지가 염려스러웠다. 하지만, 두 발로 땅을 딛고 걷기 원하시는 모습에서 삶에 대한 굳은 의지를 발견한다. 아이의 걸음마 연습 시절, 흔들거리는 발을 땅에 딛고 홀로 몇 걸음 걷던 아이가 제 모습이 자랑스러워 조그마한 손바닥으로 짝짝, 손뼉 치며 웃던 모습이 떠올랐다. 아버지도 자신의 힘을 시험하며, 하루하루 단단한 모습으로 서고 싶으실 것이다.
아버지와 함께 몇 달간 고통의 여정을 지나고 나니 아이를 해산한 뒤 세상의 모든 아이가 특별해 보이듯, 거리에서 스치는 노인들도 그러했다. 두 발로 땅을 지지하신 분들의 힘에 경탄하고, 지팡이를 짚은 채 걷는 분들의 의지에 감사하고, 보행보조기를 밀며 나오신 분들에게는 머리가 숙여졌다.
가느다랗게 흔들리는 불꽃이 쉽사리 꺼지지 않는 것은 기적이고, 신비이다. 이 땅 가득히 울리는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와 함께 크고 작은 불꽃이 숨 쉬듯 춤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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