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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Honeyberry

달걀 비린내

by 허니베리

급식 시간. 한 선생님의 뒤로 줄을 섰다. 30대 젊은 아기 아빠였는데, 연신 하품하는 모습이 애처로워 보였다.


“아이 돌보시느라 고생이 많으시지요? 단백질 보충하시고 힘내세요.”

계란찜을 가리키며 말을 건넸다.

그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려 인사하더니 머뭇거리며 말을 꺼냈다.

“저기....”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그의 눈을 응시했다.


“부장님도 퇴근 후 밥 하시나요?”


피로 때문인지 그의 눈꺼풀이 살짝 내려앉아 있었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답했다.

“힘들 땐 배달 음식이나 간편식도 먹는데, 요리도 자주 해요. 아이도 있고, 부모님도 계셔서요.”


그의 동공이 커졌다.

“장도 보세요?”

“그럼요. 어제도 퇴근 후 장 봐서 요리하고, 아이 공부 좀 봐주고, 집안일하다 보니 열두 시가 훌쩍 넘더라고요.”


그가 동의를 바란다는 듯이 눈을 더욱 동그랗게 뜨며 또다시 질문했다.

“저만 힘든 거 아니겠지요?”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건 정말 큰 에너지가 필요해요. 하지만 아이가 크면서 몸도 좀 편해지고 여유도 생기실 거예요.”


그의 얼굴에 기대감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 모습에, 정작 하고 싶은 말은 삼켰다.

‘아이를 업었던 등에 더 큰 삶의 무게가 자리 잡을 테지만요.’


그날도 모든 일과를 마치니 늦은 밤이었다. 갈비뼈 부근이 뻐근하고 한쪽 머리도 묵직했다. 지난 한 달간 연이어 치른 행사와 출장의 여파도 있었다. 까만 텔레비전 화면에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있는 내 모습이 비쳤다. 흐물흐물한 상태로 흘러내리는 나. 전등불이 훤한데도 눈앞이 아득해졌다.


토요일 이른 아침, 눈을 뜨자마자 씻지도 않은 채 외투를 걸치고, 노트북을 가방에 넣었다.

문을 열고 나오자, 현관 앞에 식재료가 든 택배 상자가 놓여있었다. 정리, 요리, 육아의 순환 속에 지금 다시 나를 몰아넣고 싶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문 앞에 식재료가 도착했는데 넣어줄래요?”

“이따 하면 안 돼?”

“닭 있어서 안 돼요. 지금 냉장고에 넣어줘요.”

“알겠어요.” 남편이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전화기를 주머니에 넣고 발걸음을 옮겼다. 얼굴에 찬 바람이 닿았다.


카페에 앉아 노트북을 꺼냈다. 전원이 켜지는 동안 남편이 상자 안에 있는 달걀은 꺼내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전화를 걸까. 하지만 잔소리꾼 되기를 포기했다. 그와의 미세한 신경전에 사용할 에너지로 신선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하지만, 하얀 창에 입력한 단어는 ‘달걀’이었다. 잠시 뒤, 그 단어 뒤로 내게 질문을 던졌던 남자 선생님이 떠올랐다. 그는 아내와 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아기를 먹이며 긴 주말을 보낼 것이다. 기저귀를 갈다가 문득 나와의 짧은 대화가 생각날지도 모르겠다. 조금이라도 힘이 될까. 하지만, 모두가 통과하는 의례라고 해서 쉬운 일은 아니다.


이 이야기를 쓰다 보니, 일어설 시간이 되었다. 손끝에서는 만지지도 않은 날달걀 비린내가 풍기는 듯했다. 쓰고 싶었던 가상의 이야기는 펼치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은 거실 식탁에 앉아 노트북으로 일하고 있었다. 내게 홀로 있을 시간을 마련해 주기 위해, 출근을 저녁으로 미루었다. 냉장고 문을 열자, 그 안에 달걀이 얌전히 놓여있었다.


시계를 보니 외출까지 한 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닭과 채소를 손질하고 빠르게 익히기 위해 압력솥에 삶았다.


“닭백숙 하고 있어요. 점심으로 먹어요.” 남편에게 뿌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반색할 줄 알았던 남편이 실망스러운 목소리로 답했다.

“아이랑 치킨버거 먹기로 약속했는데.”


압력솥 추가 돌아가는 소리에 내 한숨 소리가 묻혔다.

압력솥에 남아있던 수증기를 뺐다.

치-익 소리와 함께 나 역시 김이 빠졌다.


압력솥 뚜껑을 열자, 국물이 출렁거렸다. 세 식구가 두 끼를 먹고도 남을 양이었다. 과했다.


서둘러 외출 준비를 하다 보니 화장이 짙어졌다. 거울 속 내 얼굴이 낯설었다. 솜으로 색조를 살살 덜어내자, 잘 익힌 달걀같이 단단한 얼굴이 드러났다. 비린내를 견디고, 뭉근한 열기를 참아내며 얻은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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