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한 단어가 30일 동안 주어지고 그 한 단어를 주제로 글쓰기를 했었다. 그리고 일 년 이상 글쓰기를 방치하고 있는 나 자신이 부끄러워 100일 동안 글쓰기에도 참여했다.
30일 글쓰기를 마친 후 그 흐름을 이어가기 위해 30일 동안 글쓰기를 더 이어간다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표했다. 말을 꺼내니 주워 담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꺼낸 말의 무게를 느끼고, 책임감을 느끼고 30일 더 글을 써 내려갔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었다. 2개월이 3개월이 되고, 4개월이 되고, 1년이 되어야 하는데 나는 거기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이런저런 핑계를 삼아 글 쓰기를 더 이상 지속하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목표가 생기면 어떻게든 그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열심히 몸을 놀리는 편이다. 명석한 머리, 천재적인 재능이 없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라 주어진 목표에 최대한 가까이 가도록 성실히 노력하는 편이다.
목표가 있으면 목표만을 바라보고 갈 수 있어 마음이 편안하다. 목표를 이뤘든 이루지 못했던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목표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불안한 감정으로부터 조금은 벗어날 수 있다. 그것은 나에게 매우 중요하다.
남들보다 미래에 대한 불안한 감정을 더 느끼는 사람이다. 그래서 목표가 있으면 덜 불안한 감정을 가질 수 있다. 잡생각이 끼어들 자리가 적어지며, 오롯이 목표를 향해 현실의 삶을 살아내는 데 집중할 수 있어 불안한 감정이 파고드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결국 나에게는 있어, 목표라는 것은 달성했든 달성하지 못했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그런데 글쓰기보다 먹고사는 것이 더 급하고, 더 절실해 몇 개월 동안 나의 삶에서 글쓰기는 사라졌었다. 글 쓰는 시간이 아까웠다. 글 쓰며 살고 싶다는 마음을 품은 지가 꽤 되었는데도 밥 먹고 사는 일이 더 중요했다.
먹고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글쓰기를 소홀히 했다. 밥 먹고 사는 걱정으로 순간순간 글쓰기를 놓는 나 자신을 보면서 나 자신을 책망했다. 결국 이럴 때 혼자 방구석에 처박혀 고민하지 말아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그리고 그저 아무런 생각 없이 글 쓸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침내 생각해낸 것이 함께하는 글쓰기이었다.
함께하는 글쓰기를 생각했지만 동호회나 모임에 참석하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 아니어서 오프라인 글 쓰기 모임 참여가 망설여졌다.
오래전 온라인에서 글쓰기 한 뒤 오프라인 모임을 몇 번 간 적이 있지만 그때마다 낯설고 어색한 분위기가 나를 짓눌렀다. 영업을 한 사람이 이렇다고 하면 “웃기지 마!” 하겠지만 많은 사람이 모여있는 공간에 있으면 상당히 버거워한다. 낯가림으로 몇 달의 적응 기간이 필요하고, 친해지더라도 소수의 사람하고만 친해진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글쓰기 모임이 생겨났다. 함께하는 글쓰기를 참여할 수 있었다.
온라인으로 몇 번 참여할 수 있어 개인적으로 좋았다. 의지박약이 나를 이끌어줬던 소중한 온라인 글쓰기 모임이었다. 얼굴을 보지 않아 편해 글을 잘 쓰든 못 쓰든 계속 글쓰기를 이어 나갈 수 있었다. 혼자서 글 쓰면 단 며칠도 하지 못했을 텐데 함께이기에 꾸준히 쓸 수 있었다. 누군가 글을 써서 공유하면 나태해진 나를 담금질하며 다시 글을 쓰기 위해 의자에 앉게 만들었다. 그렇게 나는 혼자보다 함께하는 글쓰기 덕분에 글을 지속해서 쓸 수 있었다.
그런데 함께하는 글쓰기가 끝나니 매일 글쓰기는 언감생심이 되었다. 지속해서 글을 쓰고 싶다면 혼자보다 여럿이 함께하는 글쓰기 방법이 내겐 딱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금 더 쉬다가 글 쓰는 모임을 한 번 더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