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캐피탈스카이워커스
1990년대 겨울이면 언제나 배구, 농구 중계방송을 챙겨봤었지만 한동안 겨울 스포츠와 이별했었다. 그리고 다시 배구 경기를 보기 시작한 것은 2008년부터이다. 1990년대 "마지막 승부"라는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어 더더욱 겨울 스포츠인 농구, 배구가 인기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어릴 적 농구를 챙겨봤지만 나이 들수록 농기 경기는 잘 시청하지 않는다. 몸을 부딪치는 경기보다 페어플레이하는 경기 위주로 보다 보니 어느새 관람하는 스포츠는 개인 경기의 경우에는 기록경기이거나 구기종목의 경우는 배구, 배드민턴, 탁구, 컬링 등이다. 몸을 부딪치기는 하지만 그것이 경기의 주요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아닌 쇼트트랙은 좋아해 챙겨본다.
이런저런 이유로 배구를 사랑한다. 매번 경기장에 가지 못하더라도 최대한 갈 수만 있다면 가는 편이다. 경기장 내에 관람은 현장 나름의 행복감이 있고, 집에서 배구 경기를 시청할 경우는 집에서 보는 나름의 행복감이 있다. 집에서 배구 경기를 시청할 때의 장점은 선수 하나하나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있어 좋을 뿐만 아니라 스포츠 해설을 듣는 재미, 작전타임의 감독이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22~23년 시즌 시작하고 지금까지 현대캐피탈스카이워커스는 한 번도 대한항공을 이기지 못했다. 그래서 오늘도 경기도 으레 지겠지하고 생각했었다. 이길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젠 한 번쯤은 대한항공을 이겨줄때도 되지 않았나 하는 마음이 있었다.
대한항공을 이기지 못하면 현대캐피탈스카이워커스 선수들은 그다음 단계로 결코 넘어설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올 시즌 한 번도 넘지 못한 벽을 넘어야 그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고, 이는 앞으로 현대캐피탈스카이워커스에게도 좋은 계기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오늘 경기를 이긴다면 앞으로 선수들은 더 단단해지고, 더 견고해져 어떤 경기에 어떤 팀을 만나더라도 경기력의 편차없이 훌륭한 경기력을 보여 줄 수 있을 것이다.
대한항공팀의 특징은 끝까지 투지를 불사르며, 공을 끝까지 보는 집중력이 대단하다. 경기력의 기복도 거의 없다. 더불어 어느 선수 한명이 득점을 독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골고루 득점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것이 대한항공이 강력한 팀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주요 요인이라 생각한다. 선수들의 정신력이나 공을 치는 파워 또한 다른 팀에 비해 월등하다. 그러나 이렇게 강한 대한항공 팀도 계속 강팀으로 남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거의 하위 수준의 팀이지만 2008년쯤에는 삼성화재가 가장 강력한 강팀이었다. 언제든 변할 수 있다. 허나 최근 몇 년간 대한항공은 더 단단고 더 무서운 팀이 되어버렀다. 이런 강팀을 현대캐피탈스카이워커스가 뛰어넘으려면 오늘 경기는 무척이나 중요해 보였다.
2008년 삼성화재와 지금의 대한항공과 똑같은 잣대로 비교할 수 없다. 당시 삼성화재는 외국인 선수 한 명의 뛰어난 실력으로 외국인 선수 한 명이 올리는 득점이 다른 배구팀 외국인 선수보다 월등히 높았었다. 그러나 지금의 대한항공은 외국인 선수뿐만 아니라 모두 선수들이 골고루 잘한다.
현대캐피탈스카이워커스도 지금의 대한항공처럼 나아갔으면 좋겠다.
어떤 경기를 해도 크게 흔들리지 않고 경기력의 편차가 보이지 않는 팀이 되기를 바란다. 덧붙여 끝까지 공에 대한 집중력을 가지는 막강한 팀으로 성장해 대한항공 팀을 뛰어넘었으면 한다.
재작년, 작년 시즌 하위권에 맴돌던 현대캐피탈스카이워커스를 보면서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팀의 리빌딩이라고 하지만 응원하는 입장에서는 지는 경기보다 이기는 경기를 보길 원했다. 가장 힘들고, 답답하고 이기고 싶었던 사람들은 선수와 감독, 코치들이라는 것은 알지만 스포츠를 관람하는 입장에서 그게 잘 안되었다. 그런 팀이 2년 사이 많이 달라졌다.
뛰는 선수 구성이 많이 달라지지 않았지만, 선수들의 실력이 향상된 것 같아 보는 내내 고생을 정말 많이 했겠구나 싶었다. 올해 경기를 보며 우승을 노려봐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대한항공을 넘어서지 못하면 우승은 엄두도 못 낼 것이고, 2위에만 머무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오늘 경기를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1위 탈환, 1위 우승으로 시즌을 마감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보인다.
대한항공만 만났다면 맥을 못 추었는데 오늘은 정말 대등한 경기력을 보여줬다. 1세트 경기 후 "그래, 오늘 경기도 뭐 지겠지, 다른 날의 경기와 똑같겠지" 하면서 그저 오늘은 '응원하는 마음'만 가지고 경기를 관람하려고 했다. 그러면서 2세트 역시 지겠다고 생각하고 봤는데 대단한 집중력을 보여줬고 결국 듀스까지 가는 접전을 이뤄냈다. 2세트를 37 대 35로 승리를 거뒀다. 아마 이번 시즌 가장 긴 세트 경기였을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2세트 경기 후 체력 소모가 심해진 선수들을 보니 걱정이 되었다. 오늘따라 심판 판정에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어 더더욱 선수들을 응원하게 되었다.
3세트에서 4세트 역시 경기 내내 접전을 펼쳤다. 4세트 때 심판의 이상한 판정에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했지만, 전광인 선수가 잘 이겨냈고 결국 대한항공을 이겼다. 올 시즌 대한항공을 만날 때마다 졌는데 오늘은 이겼다. 처음 이겼다. 경기할수록 단단해지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앞으로도 어떤 상황이 와도 크게 정신력이 흔들리지 않는 강팀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2세트와 4세트에 손이 아플 정도로 물개박수를 쳤고, 소리도 집이 부서질 정도로 크게 질렀다. 옆 동 맞은편에 살고 있는 여든 넘은 할머니가 욕을 많이 하셨을 것 같다. 그래도 좋다. 아찔한 순간들이 많았지만,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해낸 선수들에게 다시 한번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오늘 경기에서 전광인 선수의 컨디션이 상당히 좋아 보였고, 오늘따라 부쩍이나 이기고 싶은 마음이 얼굴에 보였다. 엄마와 나는 경기 초반부터 전광인 선수의 얼굴을 보면서 '이기고 싶다'는 표정이 보인다고 계속 말했었다. 오래간만에 보이는 얼굴이다라고 했는데 오늘 정말 잘해줬다. 경기 끝나고 MVP로 인터뷰까지. 가끔 경기력이 왔다 갔다 하는데 오늘은 중요한 순간마다 전광인 선수로 인해 경기를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커다란 경쟁 상대인 대한항공을 올해 처음 이겼지만, 이것은 앞으로 상당히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봄 배구 가면 반드시 만나야 하는 상대인 대한항공만 만나면 선수들이 주눅이 든 모습이었는데 오늘 경기 승리로 자신감이 생겼을 것이고, 이것은 향후 경기에서 더 좋은 경기력을 보여 줄 수 있은 아주 절호의 기회라는 생각이 든다.
2세트, 4세트 듀스를 가는 접점 끝에 승리해 준 현대캐피탈스카이워커스에 오늘 감동해서 눈물 날 뻔했다. 경기 끝나고 그날의 MVP를 거의 90% 맞추는 나를 보며 엄마는 신기해한다. 오늘 전광인 선수 MVP 인터뷰까지 맞추는 기묘함이랄까.
오늘 경기를 보고 이렇게 글을 길게 쓸 줄 나도 몰랐다. 오늘의 감동이 오래갈 것 같다. 평소 카톡 프로필에 이미지가 없는 빈 상태로 해놓는데 방송에서 인터뷰하는 전광인 선수 모습을 촬영해 카톡 프로필로 변경해 놓았다.
앗~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