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빛항아리 Jul 25. 2023

이탈리아 아저씨에게 콩글리쉬로 길안내

덕분에 행복한 저녁을 보냈다.

비 온 뒤 햇볕이 강했다. 덕수궁 돌담길 사이로 강렬한 햇빛이 들어찼다. 덕수궁 돌담길의 풍경과 어우러져 싫지 않았다. 덕수궁 돌담길의 풍경, 사람들은 나를 다른 세계 속으로 인도한다. 그 느낌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덕수궁을 지나 발걸음을 재촉하며 지하철로 향했다. 그날따라 마음이 바빴다. 지하철 타자마자 순간이동으로 집에 도착했으면 했다. 상상뿐 현실이 될 수 없었다.      


가파른 숨을 몰아쉬며 계단을 바쁘게 내려간 뒤 10-1 승강장으로 이동하는데 캐리어를 끌고 이동하는 나이 든 외국인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것도 대놓고 쳐다봤다. '서울역, 서울역'을 계속해서 말하며 나를 쳐다보는 그 순간, 나는 잠시 쭈뼛거렸다. 영어를 잘 못하고 주변사람들도 나를 쳐다보는 듯한 눈빛이라 찰나에 고민이 되었다. 도와줘야 할까 말까. 그러나 나는 천상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을 거절하지 못한다.      


유독 길거리에서 나에게 길을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럴 때마다 거절하지 못한다. 희한하게도 길을 걷다가 나에게 길을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아 엄마는 자주 놀라곤 한다. 초행길인 장소에서 누군가가 나에게 길을 묻는 경우도 종종 있다. 나의 옷매무새, 행동, 걸음걸이가 그곳에 거주하는 주민으로 보이나 보다.   

  

길거리에서 길을 묻기 위해 나에게 말 걸어오는 사람들에 대해, 나는 기분이 썩 나쁘지 않다. 적어도 나에게 말을 걸기까지 마음속으로 몇 차례 용기 내었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알려주려고 한다. 나의 인상이 조금은 나쁘게 보이지 않았기에 물어보러 왔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혼자 우쭐해진다. 이런 것이라도 장점이라 치부해야 한다. 단점이 많은 인간이기에.     


외국인의 눈빛을 거절하지 못했다. 영어를 잘하지 못하지만 알려주기로 했다. 서울역에서 내려야 하는데 1호선 시청역에서 잘못 하차한 것이다. 건너편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바로 건너편으로 이동할 수 없고 개찰구를 통과해야만 했다.      


짧은 영어로 자세하게 설명하기 쉽지 않아 몸을 열심히 놀려야만 했다. 간단하게 내가 도와줄 테니 나를 따라오라고 명령조로 말하고 부지런히 걸음을 재촉했다.     


큰 캐리어로 이동하는 나이 든 노신사에게 계단으로 캐리어를 이동시킬 수 없어 엘리베이터가 있는지 눈동자를 뒤룩뒤룩 굴렸다. 찾았다. 10-1에서 한참이나 멀리 떨어진 곳에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외국인과 함께 엘리베이터 있는 곳으로 향했다. 캐리어를 들게 할 수 없었다. 그 짧은 거리 이동 시 나는 돼먹지도 못한 영어로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는 나보고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이냐고 물어봤다. ‘한국인이다’라고 말하며 나도 질문을 했다. ‘어디서 왔어요?’ 그는 이탈리아에서 왔다고 말을 전해줬다. 짧은 영어로 2011년에 이탈리아를 여행한 적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탈리아에 놀러 오라고 말했다. 나도 진짜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사실 진짜 가고 싶다.      


이탈리아가 그립다. 2011년 혼자 여행하면서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만난 할머니, 이탈리아 섬에서 만난 할머니들, 로마에서 만난 브라질 교수와 아르헨티나 여행객, 로마에서 만난 한국 부부, 밀라노의 한인 민박 사장님과 게스트들 등 온갖 추억이 오롯이 머릿속에 남아있다.      


2011년 이후로 한 번도 해외를 나간 적이 없다. 오로지 국내 여행만 다녔다. 십 년 동안 삶의 굴곡이 심하고 힘겨웠다. 더욱이 해외를 나갈 정도의 마음과 경제적 여유가 없었다.      


지금도 사실 당장 유럽으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지만 그럴 수 없다. 지금 나의 삶의 여건에 맞춰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조만간 갈 수 있는 날이 어서 찾아오기를 바랄 뿐이다. 지금 갈 수 없는 상황이라고 나의 삶이 괴롭거나 싫은 것은 아니다. 십 년 이상을 밖으로 나가지 못했지만, 나는 그 덕분에 오히려 국내 여행지를 많이 다녔다.      


같은 지역을 가도 다른 계절, 다른 시간에 가면 다른 풍경과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우리나라가 사랑스럽다. 지금까지 국내 여행을 많이 다녔다고 자부하지만 여전히 안 간 지역도 많다. 죽을 때까지 우리나라 곳곳을 다 다닐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해외로 가고 싶단 열망이 이탈리아 여행객 때문에 더 솟구친 하루였다. 무사히 건너편으로 이동시키고 나는 이탈리아 노신사에게 신나게 손을 흔들었다. 우리나라 여행을 잘하고 본국으로 잘 돌아가길 바랐다. 때론 말의 언어보다 몸짓 언어가 필요할 때가 있다. 짧은 영어로 사람들이 쳐다보는 눈빛이 조금은 두렵고 창피했지만, 그것을 극복하고 누굴 돕겠다는 마음이 더 컸던 그 상황에 나 스스로 칭찬받아 마땅하다. 나에게 가혹한 사람으로 이런 행위 자체도 칭찬해야 한다. 며칠 전 자존심 상하는 일이 있었는데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그래도 썩 괜찮은 사람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감정이 조금 회복되는 듯하다.    

  


나와 밀도 높은 대화나 농익은 대화를 잘하지 않았던 사람이 나를 재단하는 말을 해 어이없었다. 워낙 단점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고 성장한 편이라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 함부로 “너는 이런 사람이구나!’라는 말을 잘 안 하는 편이다. 한 사람이 살아온 성장배경, 생각, 가치관을 내가 온전히 알 수 없고, 겉으로 볼 때와 가까이 다가가 이야기하다 보면 잘못된 판단을 하는 경우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상대방에게 느꼈던 단점이 정작 단점이 아니고 장점인 경우도 많다. 지금까지 인간관계를 하면서 느낀 바이다. 그래서 섣부르게 상대방을 판단하는 말을 잘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편이다. 그래서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싫다.


며칠 전 나의 일상에서 찾아온 뜻하지 않은 행복한 만남에 관한 글을 쓰다 보니 타인으로 받았던 상처가 살짝 메꿔지는 듯하다. 나에게 말을 걸어 준 이탈리아 아저씨에게 고맙다. 이탈리아 여행을 상기시켜 준 아저씨 덕분에 순간적으로 2011년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무전여행 다시 떠날 수 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