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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항아리 Sep 13. 2022

무전여행 다시 떠날 수 있을까

무전여행을 지금으로부터 딱 이십 년 전에 했다. 같은 과 동기와 함께 교양을 신청한 게 아니라 교양 수업을 대부분 혼자 신청했다. 같은 과 동기들과 어울리기보다 거의 혼자 1학년 2학년을 보냈다. 나중에 3학년이 되어서야 사람들하고 어울렸다. 혼자 들었던 교양 수업 중 어떤 과목인지 뚜렷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그 교양수업에서 나는 역사학과 친구를 만났다. 나는 역사학과 친구가 멋있어 보였다. 국사 시간이 내게는 너무도 힘들었던 수업 중 하나였다. 역사를 이야기식으로 재미있게 풀어가기보다 무조건 외는 역사 수업은 지루하고, 재미없었다. 그저 중간고사, 기말고사에 시험을 치기 위해 벼락치기로 외웠을 뿐이다. 그래서 역사학과인 그 친구를 속으로 대견스럽게 여겼다.     


그 친구와 나는 2002년 4일간의 무전여행을 했다. 돈을 챙겼지만, 가방 깊숙이 지폐를 넣고, 무전여행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2002년 그해 여름이 끝나갈 때쯤 떠났던 무전여행은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처럼 무전여행을 시도하기에는 무모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무전여행하면서 히치하이크를 통해 주로 마을과 마을 사이, 시골과 도시 사이 등등 이동했다. 히치하이크를 통해 우리는 다양한 사람들을 여행 속에서 만났다. 친구와 나는 누구에게든 배울 점이 있다는 것을 이동하는 차량에서 무수히 나눴던 이야기들 속에서 깨달았다.


걷다가 지칠 때, 자신에게 너무도 소중해 보이는 우유를 건넨 할아버지는 아직도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산 중턱의 절에서 하룻밤 잠을 청했을 때 인부들이 절에서 작업하느라 내어줄 방이 없다며 거절했고, 산에서 내려오며 '어디서 자야 하나' 걱정했던 그 밤, 우리는 한 음식점에서 달콤한 잠을 잘 수 있었고, 다음 날 아침 사장님이 우리가 보고 싶었던 문경 석탄박물관까지 차로 태워다 주셨다. 그 고마움은 여전히 잊지 못하며, 사장님의 사모님이 어른이지만 순수한 마음을 가진 소녀 같다는 느낌이었다는 것은 여전히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문경 석탄박물관 앞에서 마주쳤던 70대 두 어르신도 여행 중이라며 우리를 응원해줬을 때, 길에서 만난 인연들이었지만 낯설지 않았다. 70대가 되면 그 어르신들처럼 여행하고 싶었다. 그런데 70대가 되면 나와 같이 떠나 줄 친구가 내 옆에 있을까.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이 드니, 조금 우울해진다. 그렇지만 나도 분명 멋진 친구를 만날 것이다. 주문을 외울 것이며, 그 주문이 꼭 이뤄지리라 믿는다. 그 당시 그 두 분이 굉장히 멋진 어른이며, 삶 자체를 즐기는 어른이라 생각했으며, 나도 그들처럼 자신들만의 삶의 철학을 가지고 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여행 중 배가 고파 우리는 시골에 사는 노부부, 할머니 집에 들어가 밥 한 끼를 부탁했었다. 어렵지만 무전여행을 철저히 실천하고 싶었다. 우리는 많은 사람은 만나고 싶었으니까.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이런 행동이 꽤 민폐 짓이라는 생각은 지울 수가 없다. 민폐 짓이 분명하다. 근데 그때 나는 분명 기억한다. 우리를 환대해주셨던 노부부와 할머니를.


밥 한 끼를 얻어먹으며 노부부와 할머니와 많은 이야기 들었으며, 사진을 함께 찍었었다. 노부부나 할머니나 많은 이야기 실타래를 우리에게 풀어냈고, 우리도 여행에서 생각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동시대를 살아가지만 여행이 아니고서는 만날 기회가 없는 사람들을 만나 각양각색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였고, 여행이었다. 선입견과 편견 없이 낯선 이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은 내 인생의 큰 기쁨이다.     


경주를 여행하던 중에 갑자기 일이 생겨, 통영까지 여행하려던 우리의 여행은 경주에서 그쳤지만, 우리는 충북 괴산군, 경북 문경, 안동, 점촌, 포항, 경주 등을 거치며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다. 다시 무전여행이 가능할까 생각해보지만, 지금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며 이십 대 시절처럼 떠나기에도 나는 나이를 그때보다 많이 먹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같이 떠날 친구가 없다. 그 옛날의 무전여행이 그립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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