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그 길 위의 만남.
2014년 서울에 거주하고 있는 집주인의 딸, 그녀가 제주 여행을 하면서 갑작스럽게 제주도로 여행 오라며 내게 전화를 했다. 고민했다. 제주도 날아갔다. 그녀와 함께 며칠간 제주올레를 걸었다.
힘겨운 시간을 보내 있는 것을 알고 잠깐이라도 바람을 쐬어 걱정과 불안을 떨쳐버리라고 강력히 나를 설득했다. 여행 경비의 부담으로 하루 이틀을 고민하다가 함께 하기로 했다. 당시 몇 년간의 힘든 일을 겪으면서 정신적인 고통이 나를 옭아매고 있었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회피하고, 방 안에서 틀어박혀 혼자만의 세상에서 걱정과 불안으로 점철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었다. 안쓰러워 보였나 보다. 나와 깊은 사이도 아니었다. 집주인의 딸과 세를 얻어 사는 사람으로 가끔 차를 마시면서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정도…… 딱 그 정도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가깝고 친밀한 사이도 아닌데 제주도로 이끈 것은 고맙고 신기한 일이다. 그 해, 제주도는 지치고 힘들었던 나를 포근하게 감싸 안아주었다.
떠날 때, 낯선 여행길에서 낯선 만남이 찾아오리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2014년 봄, 제주올레를 걸으며 하루에 서로 다른 종교의 수행자를 만나, 인생의 값진 경험을 했다. 제주올레를 걷다가 『순례자의 교회』를 발견하고, 안으로 들어갔더니 편안하고, 아늑한 공간이 주는 매력은 물론 제주올레를 걷는 사람들을 위해 곳곳에 마련해 놓은 배려의 흔적들, 타인을 위하는 마음이 느껴져 감동했다. 바쁜 세상 속 베풀면서 살아가는 것이 쉬운 일인가? 『순례자의 교회』 나오는데 교회를 만드신 목사님을 우연히 만나, 길 건너 건물에서 정성스러운 차 대접을 받았다. 세상에서 제일 작은 『순례자의 교회』를 짓기 위해 겪었던 경험담을 경청하며 내 마음도 치유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와서 살피시는 데, 우리는 어쩜 타이밍도 절묘하게 만났는지.
우리는 행복한 만남을 뒤로하고, 계속 제주 올레를 걸었다. 엉알 해안으로 해가 뉘엿뉘엿 해 질 무렵 하룻밤 묵을 숙소를 찾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녀와 나는 길을 걷는 내내 숙소를 혹여 구하지 못할까 봐 걱정했다. 그렇게 걱정을 안은 체 제주올레를 벗어나 삼거리에 다다르자, 갑자기 차 한 대가 우리 앞에 멈췄다. 우리는 발걸음을 멈추고, 조심스럽게 창문 내리는 분을 살폈다. 스님이시다.
스님의 질문에 숙소를 구하려고 걸어가고 있다고 답하자, 차에 얼른 타라고 재촉하신다. 미안해 거절하려고 하였지만, 뒤에서 차가 오고 있어 스님의 차량에 덥석 올랐다. 차에 타자마자 스님은 사찰의 방을 내어 줄 테니 하룻밤을 보내라고 했다. 스님을 불편하게 하는 것 같아 고민하다가 넙죽 그러겠다고 답했다. 사찰로 바로 가지 않고 스님은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겠다고 드라이빙을 해주셨다. 스님 덕분에 제주 해안의 아름다운 풍경을 즐겼다. 드라이빙 후 늦은 밤까지 제주 『천안사』에서 스님이 내어주신 따뜻한 차와 함께 즐거운 담소를 나누면서 인생의 고민도 함께 나눴다. 그해 봄, 성각스님은 내게로 왔다.
무교인 나에게 평생 수행하는 서로 다른 수행자를 한 날에 만난 것은 신기한 일이며, 만나겠다는 계획을 세우면 충분히 만날 수도 있겠지만 우연히 찾아왔던 만남이니만큼 그저 신기할수 밖에. 힘들어하는 나에게 “용기를 가지라고 누군가 보낸 것 같다”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길 위에서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 행복을 경험했다. 조금만 다른 시간에 갔다면 만나지 못했을 인연이다.
우리 인생에서 상상하지 않은 일이 찾아온다면 기꺼이 그 순간을 함께 하라고 말하고 싶다. 인생의 새로운 의미와 길을 열어줄지도 모르니. 2014년 그해 봄, 그녀의 부름에 거절했다면 불안과 걱정으로 한 치 앞도 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 만남이 있었기에 용기를 얻어 다시 시작해보자고 마음을 먹었고, 가끔 스님께 문자 드리고 용기를 얻었다. 2년 전까지도 스님께 종종 문자 연락을 드렸는데, 지금 다시 연락을 드려봐야겠다.
-비록 탈락했지만 '좋은생각'에 공모했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