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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항아리 Dec 07. 2023

계약만료 통보: 이유 같지 않은 이유

2023년 11월 30일 사무실의 내 자리 전화기에 두 번이나 부재중 전화가 기록되어 있었다. 먼저 전화하는 일이 별로 없는 사람이며, 일하러 다니는 것인지 놀러 다니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사무실에 붙어 있지 않는 사람에게서 온 전화이다. 내가 근무하는 부서의 가장 상급 관리자의 전화였다. 최근에 지적받았는지 그나마 사무실에 조금 앉아 있는다.

 

그런 사람이 두 번이나 내 자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그사이 다른 직원이 그의 사무실로 들어가길래, 나는 나의 자리에 오롯이 앉아 있었다. 그 직원이 나오고 바로 나의 자리로 전화가 울렸다.

 

무슨 이유로 전화를 했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그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얼굴만 봐도 싫다. 일하지 않는 상사, 기본적인 근태조차도 좋지 않은 상급 관리자, 어디로 출장 가는지도 모르게 출장 가는 사람이다. 근태가 이렇게 좋지 않은 상사도 처음 겪어 혐오스럽다. 나라의 세금을 받아 운영하는 곳이니 화가 난다. 사회생활의 대부분이 사기업 근무였다. 그래서 지금 직장에서 이해되지 않는 점이 많다. 뉴스에서 보던 행태가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면서 누구를 자르는가.


자영업 폐업 후 가장 낮은 직급의 계약직 일자리를 구해왔다. 그래서 나의 선택이라 받아들이고 다녔다. 내가 속한 부서의 직원은 무기계약직 1명을 빼고 모두 계약직이다. 그들은 평소에 특별할 일이 없으면 계약이 연장된다고 말해 왔었다. 나는 그들의 말을 평소에도 믿지는 않았다.


나보다 훨씬 어린 사람이 가방끈 길다고 팀장급 즉 중간관리자로 있었다. 나의 선택이었으니 그 중간관리자를 최대한 존중해 줬다. 그녀가 나를 1년 넘게 무시하는 것도 참아 왔었다. 그러다 너무 만만하게 보는 것 같아 말했었다. 1년 4개월 만에 말이다. 이곳에서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녀는 2년 정도 직원으로 일하다가 관리자가 되었다. 그녀는 리더의 자질이 상당히 부족하다.


상급 관리자 사무실에 들어가니 그런 그녀가 같이 앉아 있었다. 절차상의 문제에 화가 났다. 상급 관리자를 만나기 전 그녀는 나에게 말했어야 한다.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나를 보며 말하는 그들의 태도에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참았다. 길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인사란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지금껏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런 방식은 처음이다. 인사와 관련된 이야기는 언제나 1:1 대화였다. 이들은 개인의 인권조차 지키지 않았다.


 

내년도 인건비 예산이 없어 계약 연장을 할 수 없다고 일방적인 통보를 해왔다. 예산이 줄어들지 않았다는 것과 기존 인원에 추가 2명 채용 예산을 내년 예산에 이미 반영한 것을 아는 나에게,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들어서 통보한 것이다. 이것은 인사이다. 그런데 그런 인사에 대해 적어도 배려가 있어야 하는데, 눈 씻어도 찾아볼 수도 없었다. 본인의 근무태도부터 철저히 지키고 누구를 평가하든지 말든지 하지, 기본적인 것도 지키지 않는 사람이 누구를 평가하는가. 그런데 지금까지 내가 겪은 사회생활에서 기본적인 것도 잘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더 남을 잘 평가하기는 했었다.

 

지금의 밥벌이에 사실 미련은 없지만 앞으로의 밥벌이가 더 걱정될 뿐이다. 오히려 그들의 민낯을 확실히 본 것 같아 통보 다음날부터 출근하기 싫었지만 이번달까지 참아야지 하며 출근하고 있다. 더럽고 아니꼽지만 마무리는 잘하고 나가자라는 생각이 깔려있다. 연차를 사용하면 실질적으로 12월 셋째 주까지만 참으면 된다. 그럼에도 얼굴도 보기 싫다.


평소에 자신들이 잘났다고 생각하는 게 이미 깔려있는 사람들이다. 자신들은 ‘사’ 자로 누구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들의 몸에 배어있다. 그래서일까. 자신보다 학벌이 낮아 보이는 사람에게 은근히 무시하는 태도를 보여왔다. ‘사’ 자로 시작되는 사람들이 모두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속한 부서의 대다수의 사람이 그랬다. 유독 다른 부서에 비해 우리 부서가 '사' 자 출신이 많았다. 사람을 겪은 후 판단하자라는 주의이지만 우리 부서의 '사' 자 출신들에게 실망을 금치 못해 같은 '사' 자 출신은 다 좋게 보이지 않는다. 그전에는 좋게 봤었다. 다른 부서에 같은 '사'자임에도 착한 분이 있다. 근데 우리 부서는 왜 그럴까.


특정분야에 전문지식을 가진 사람들이지만 자신의 업무와 그다지 관련이 없음에도 자신의 개인적 관심으로 출장달고 외부교육을 꽤 들으러 다닌다. 그것을 중간 관리자가 승인한다는 것과 출장비를 청구한다는 것이 문제이다. 이게 무슨 세금 낭비인지. 개인역량 개발하러 직장을 다니는 격이다. 일이 별로 없는데 중간 관리자는 회의 때 종종 우리 부서원들 모두는 2명분의 일을 하느라 바쁜단다. 바쁜 친구들이 수시로 병가를 내며, 외부 교육을 당당히 다니는가. 부서 카톡에 관심있는 세미나와 교육 있으면 수시로 정보를 올린다. 지긋지긋하다. 사기업에서 이런 일은 얼토당토 아니한 일이다. 진짜 일 많다는게 얼마나 많은 것인지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가방끈은 길지만 사회생활 경험이 많지 않은 사람들이 나의 경력을 무시하는 태도로 일관하는 모습에 그들이 더 볼품없어 보였다. 상급 관리자 역시 나의 업무조차 파악하지 않았다. 중간 관리자와 상급 관리자의 결정이 필요한 사항을 서로의 미뤘다. 가방끈과 일은 별개의 개념이다. 머리 좋다고 일 잘한다고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그간의 사회생활로 겪은 바이다. 내가 존경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보면 그들이 잘나고 멋진 사람임에도 스스로 잘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서는 그들 스스로 드러내지 않아도 아우라가 느껴진다. 어떤 부서는 분명 회사에서 쓰는 공통 명칭 ‘선생님’이 있는데도 자신을 박사라고 불러달라고 했단다. 선생님이라는 공통 명칭이 있어도 불러주고 싶은 마음에 먼저 그리하면 괜찮지만 이건 뭐 자신을 박사라고 불러달라는 말을 아주 당당히 하는 사람을 보면서 왜 이곳에 왔을까 싶었다. 박사로 불리고 싶으면 그런 직장으로 가야지 하고 싶은 말은 참 많지만 입이 아프다.


그들은 자신들의 엘리트 인식에 사로잡혀 나를 상당히 피곤하게 만들었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 현수막이 자기 학교에 걸려 있지 않았냐며 그들 무리끼리 서로 동조를 구하는 모습이 왜 이리 어처구니가 없던지. 그것도 식사 시간에 '사' 자 출신이 아닌 사람도 분명 있는 데에서 말이다. 이들이 왜 우물 안에 개구리가 될 수밖에 없는지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최소한 십 년 이상 넘은 사람들이 여전히 그때의 영광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니 불쌍해 보였다.

 

 

공부 잘한다고 모든 것을 잘하는 것이 분명 아닌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타인보다 우월하다고 표현하고 싶은 그들의 행동은 고수가 아닌 하수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별거 아닌 일에도 투덜거리며, 불평불만을 표시하는 그들을 보면서 다시는 전문가 집단과 일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막상 상급 관리자에게 가서 말도 못 꺼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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