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빛항아리 Feb 26. 2024

70년 외길 인생

오래전 청주비엔날렌에서 빗자루 하나를 구매했다. 당시 구매한 빗자루는 서울의 작은 원룸 공간을 청소하기에 제격이었다. 협소한 공간에 그것만큼 훌륭한 청소 능력을 발휘할 제품은 없었다. 애장 하는 제품 중 하나가 되었다. 살면서 많은 제품을 소비하지만 구매하고도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 버리는 제품도 있고, 쉽게 고장이 나 버리는 제품도 허다하다. 결국 몇 년 이상을 쓰며 애장품으로 되는 제품은 많지 않다. 그런데 그 빗자루가 나의 애장품이 되어 버렸다.     


어릴 적 오후 5시쯤 무렵이면 매일 빗자루를 들고 방 이곳저곳을 쓸었다. 그것은 엄마가 나에게 부여한 집안일이었다. 그때는 빗자루를 들고 매일 청소하는 일이 싫었으며, 이따금 마당에서 키웠던 싸리로 만들었던 싸리비를 들고 마당을 청소하는 일도 싫어했다. 거기에 주말이면 어김없이 동네 오빠가 마을 청소를 위해 마을 집결 장소로 빗자루를 들고 나오라고 쩌렁쩌렁 방송하면 청소하러 나가기를 극도로 싫어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모든 것이 추억이다.      


요즘 도시에서는 핸드메이드 즉 옛날 방식의 빗자루를 쉽게 발견하기 어렵다. 집 근처에서 간편하게 살 수 있는 빗자루의 대부분은 플라스틱 제품이다. 환경에도 상당히 안 좋은 플라스틱 제품을 우리는 더 많이 실생활에서 사용하고 있다.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는 생각도 든다. 예전만큼 빗자루의 사용도가 떨어졌으니 각 가정에 빗자루가 별로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대부분 빗자루보다 청소기를 사용할 테니 말이다.      


그러나 간단한 청소를 할 때는 빗자루만큼 요긴한 것이 없다. 플라스틱 빗자루보다 손맛도 좋고, 청소도 더 꼼꼼히 된다. 내가 가지고 있는 빗자루는 전통 빗자루 기능 전수자가 만든 빗자루였고, 전통시장이나 대형마트에서 파는 빗자루와는 다른 품질과 성능을 가지고 있어 나의 마음을 훔쳤다. 그렇게 십 년 이상을, 빗자루를 사용했다. 닳고 닳았지만, 그만큼의 디자인과 성능을 가진 빗자루를 어디서도 찾지 못했다.


꽤 오래 사용해 새로 구입하고 싶어 몇 년 전부터 인터넷 검색을 했다. 빗자루를 구매한 장소만 기억하지 그 빗자루를 누가 만들었으며, 어디서 판매하는지 몰라 고생하며 인터넷 검색을 했었다. 장인이 만든 제천의 광덕 빗자루였다. 그러나 빗자루 장인의 연세를 보고 마음이 급해졌다. 2~3년 전부터 광덕 빗자루를 사기 위해 제천을 가야겠다고 엄마에게 누누이 말해왔었다. 그렇게 나의 간절함으로 2월 말 제천을 빗자루를 사기 위한 목적으로 여행을 갔다. 누가 빗자루를 사기 위한 목적으로 여행을 간다는 말인가. 그런데 여기 그런 사람이 있다. 그것이 나다.      


전통시장을 갈 때마다 그런 빗자루가 살펴봤지만, 도무지 그런 빗자루를 찾을 수 없었다. 즉 빗자루만 살 목적으로 제천을 떠나기에 합리적인 명분이 생겼다. 제천에 가면 김진명 작가도 만나고 싶었지만 어디 사는지도 모르겠고, 평생 보고 싶었던 작가를 이미 2023년 국제도서전에서 만났기에 김진명 작가의 작업공간을 찾아보려던 마음은 잠시 접어두었다. 제천으로 빗자루를 사러 가기 전에 광덕 빗자루 장인에게 전화를 드렸다.      


너무 일찍 방문하기가 죄송해 제천에서 잠시 살 때 마음의 평화를 찾고 싶을 때 이따금 드라이브 갔던 배론성지를 먼저 둘러보고 광덕 빗자루에 갔다. 도착해 문을 열려고 하니 문이 잠겨있어 헛걸음하나 조마조마했다. 전화를 드리니 가게 문을 직접 열어주셨다. 반가운 마음에 한껏 소리를 높여 인사드렸다. 가게 안에 들어서며 전시된 다양한 빗자루를 보며 연신 감탄했다. 빗자루 하나로 한 길을 살아온 장인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한 길을 평생 살아온 장인이 존경스러웠다.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비슷한 연세일 것이다. 내가 백일도 안 돼 돌아가셨기에 아버지뻘 되시는 분들이 나를 편안하게 대하면 그저 고맙다. 장인은 나를 편히 대하며 가게에 전시된 빗자루에 관해 설명해 주셨다. 그리고 이내 가게 한쪽에 마련된 작업장에서 나와 엄마에게 차와 과일을 내어주셨다. 빗자루 사러 왔는데 왜 호강인가 싶었다. 할아버지로부터 빗자루에 대한 설명과 유머 있는 농담을 여러 개 들었다.


여름날 뙤약볕 아래에서 빗자루 재료인 갈대를 거둬들이는 일을 두 노부부가 직접 한다고 한다. 팔순이 넘은 분들이 한여름 그 일을 하려니 얼마나 힘이 들까 싶었다. 갈대를 수확할 때, 사람을 쓰는데 다들 뜨거운 날씨에 도망가 버린다고 하니 얼마나 힘들지 감히 예상치 못한다. 힘든데도 여전히 빗자루 명맥을 이어가려는 할아버지 열정에 감격했다.     


처음 방문한 사람에게 따듯한 차와 과일을 내어주며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줘 영원한 추억이 되었다. 광덕 빗자루만 사러 갔더라도 절대 후회 없을 여행이었다. 그러나 광덕 빗자루 외에 제천 여러 곳을 여행했다. 광덕 빗자루에서 빗자루 3개를 사 왔다. 엄마는 하나만 사라고 했지만, 도무지 언제 제천을 다시 갈 수 있을지 몰라 충분히 사놓았다. 요즘 광덕 빗자루로 나의 공간을 청소하고 있다.      


70년 이상 빗자루를 만든 장인의 손이 어떨까 궁금해 감히 악수를 청했는데 굳은살 없이 여자 손보다 고와 놀랐다. 손이 거칠 것이라는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안타깝게도 빗자루를 배우러 온 사람도 있었지만 떠났고 배신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전수자도 없다는 말에 슬프고 아쉬웠다. 곧 있을 제천행사에 빗자루 체험에 참여한다는 말을 전해줘 응원하며 광덕 빗자루 가게를 나왔다.     

 

사람이 손수 만든 빗자루를 찾는 이들이 많지 않을 테니 전수자가 없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겠지만, 자연에서 얻어진 것으로 손수 만든 제품이 점점 사라지는 현실이 안타깝다.


매거진의 이전글 계약만료 통보: 이유 같지 않은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