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천군립생거판화 미술관의 윤여걸의 목판화전
그림으로서 표현되는 문자와 이미지 사이의 경계는 모호한 측면이 있다. 마야의 상형문자 자료는 주로 종교적인 장소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신성한 책과 비문 사이의 연관성을 살펴보면 단어와 이미지 사이에 서로 중첩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그런 느낌을 받는 예술분야가 바로 판화다. 판화를 보고 있으면 문자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떤 측면에서는 그림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생거진천생거판화미술관에서는 지난여름 윤여걸 목판화:수상한 숲의 1부에 이어 2부가 전시되고 있었다. 윤여걸 작가는 1990년~2000년대 숲은 경작자나 숲으로 가는 기로가 같이 강인한 육체적 삶과 그의 독특한 염세성 알레르기인 죽음에의 원초적인 지향 정서가 길항하는 묘한 공명의 지점이었다고 한다.
생거진천판화미술관은 지금까지 판화와 관련된 수많은 전시전이 진행이 되었다. 판화를 언급할 때 보통 돌, 나무, 금속 등의 판에 형상을 낸 뒤 잉크등을 바른 후 종이에 찍어내는 형식의 그림이지만 넓게 본다면 우리가 보고 있는 대부분의 것들이 판화이기도 하다.
최근의 작품들은 숲은 팽창하는 도시로 인해 점점 더 바깥으로 밀려나가며 옹색해지는 삶의 영토에 대한 자전적 회의를 그리고 있다고 한다.
작품에서 보듯이 빠르게 바뀌는 도시는 사람들의 사이로 들어오게 되고 나이가 들어 겪는 얕아진 숲은 더 이상 사람을 은폐시켜주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과 도시 속의 생명체들은 부근의 자연과 뒤엉키며 공존해가고 있다.
사람의 인생 역시 사회가 찍어낸 모습을 기반으로 살아가게 된다. 삶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생각하고 그려보기도 하면서 그들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사람을 만났으며 어떤 사랑을 했을까를 생각해보기도 한다. 이곳에는 작가를 포함한 사람, 동물, 식물, 벌레등 모든 생명체를 삶을 표현한 것처럼 보인다.
모든 생명체들이 공존하고 있을 텐데 사람들은 자신 이외에 존재에 대해 거의 인지하지 않고 살아가기도 한다. 사람의 기억은 순간이 지나가면 희석되고 왜곡되기 시작하기에 기록을 남겨두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초현실주의자들은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이론에 따라 언어는 의미를 감추고 꿈의 이미지만이 진실을 드러낸다고 믿었다. 한 사람의 몸에는 어떤 것들이 머무르고 있는 것일까.
사람은 태어나면서 절대 바뀌지 않을 지문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 지문은 똑같은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사람이라는 존재에 기록되는 모든 것들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전시전이다.
작가가 추구하는 카오스는 지난한 생명력의 능동성에 대한 숭고라고 한다. 현실적인 억압이나 제약에 대해 투쟁을 할 때 더 빛나는 생명력, 즉 살아남음에 대한 오마주가 있다. 수상한 숲에는 현대의 압박을 이겨낸 거친 생명력이 숨어 있다.
윤여걸 목판화. 수상한 숲
2024.10.08 - 12.09.
진천군립생거판화미술관
충북 진천군 진천읍 백곡로 15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