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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Jul 28. 2023

아이와 여름이 하브루타로 빛날 때#1-질문 본능

학원 교육 단상


(*하브루타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일상에 깊숙이 서려있는 "대화, 토론, 논쟁" 문화를 말합니다. 짝을 지어 질문을 주고받으면서 서로 답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우리나라에 전해져서는 신앙과 삶의 철학과 세계관 전체를 다루는 본래 하브루타가 교육현장에서 하나의 토론기법처럼 치우쳐져 활용되고 있지만, 하브루타는 일상에 주고받는 수평적 대화와 상호작용 전반에 활용할 수 있는 방식입니다. 오늘 하브루타 교육단상으로 어제 있었던 학원 이야기를 해볼게요.)


© house_42, 출처 Unsplash

"선생님, 왜 교실에 있던 책장을 옮겼어요?"

대뜸, 실내를 자세히 흘겨보던 아이가 물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해?"



응당, 어른에게 물어서 답을 구하고 대꾸를 들으면 그대로 수용하는데 익숙한 아이가 눈을 굴렸다. 비 일상적인 상황이나 대화, 그리고 익숙하지 않은 장면은 아이의 뇌를 자극한다. 우리의 뇌는 늘 이런 식이다. 익숙하지 않은, 낯선 것을 만나면 스파크가 튄다. 반대로 익숙한 것에는 시원찮은 반응을 보인다. 나는 늘 아이들이 시큰둥하게 어른들이 하는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수용하는 꼴을 볼 수가 없다. 나란 사람이 줄 수 있는 대답의 한계와 얄팍함을 알기 때문이고, 다른 생각도 해볼 수 있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 가르치는 병이 있어, 이 상황을 좋은 교육의 재료로 쓸 수 있을까 머리를 굴리는 게 나의 취미이자 습관이라 이번 상황을 그냥 넘길 수 없었다. 눈이 동그래진 아이는 연속으로 힘든 소리를 냈다.


"으~으!"


되받아 던진 질문에 당황한 아이는 썩 괜찮은 답을 찾을 수 없었는지 눈알만 굴리는데, 나는 이런 상황을 기다리는 게 이제는 어렵지 않다. 질문을 던지고 답이 없으면, 잘 가르치지 못하는 어른이 될까 서둘러 답을 주곤 하던 나였는데, 이제는 천연덕스럽게 오래 기다릴 수 있게 되었다. '아이가 생각하는 힘을 기르려면 스스로 생각을 해볼 기회를 줘야 한다'라는 믿음과 '잘 가르친다는 것은 일방적인 지식 전달이 아니다. 스스로 발견해 내게 길을 터주는 것 또한 좋은 티칭이다'라는 신념이 어느덧 내면에 자리를 잡은 듯하다.


"책장이 더 들어오고, 작은 교실에 있던 책장이 큰 교실로 옮겨졌는데, 네가 사용해 보니 어떤 점이 달라?"

이제는 대답할 수 있겠다는 표정을 짓는 아이는

"편해졌어요"

라고 답했다. 한결 가벼워진 아이에게 다시 질문했다.

"그럼 선생님이 왜 옮겼을까 눈치챘어?"



우리 일상의 작은 변화의 이유는 그리 거창하거나 대단치 않을 때가 얼마나 많은지. 하찮아 빠진 답을 찾은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찾아내기 위해 생각을 한 번 더 해보는 "생각의 습관"을 기르는 데 있다. 마치 숨겨진 보석을 발견한 게 기쁘기보다, 숨겨진 보석들을 찾아내는 보물지도를 갖는 게 더 큰 기쁨인 것으로 빗댈 수 있지 않을까? 더 많은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것은 과거지향적이다. 지식과 정보는 소수의 유력한 사람들에게서 보편적인 모든 사람들에게 펼쳐진 시대를 살고 있다. 과거, 문자를 소유한 소수의 사람들이 문자를 향유하지 못한 다수의 사람들을 지배하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상반된 세상이 되었다. 이런 세상에 자라는 우리 아이들은 누군가 짜 맞춰 의도적으로 구성한 지식을 그대로 받아먹도록 수동적 자세를 체득하게 둬서는 안 된다. 기본적인 생활양식과 습관은 전수받고,


지식을 습득할 기초 도구를 함양하는 데지시적 지도를 받아야겠지만 말이다. 스스로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에 이른 아이에게는 질문과 사고하는 습관을 좋은 도구로 손에 들게 해야 한다. 아이 스스로 발굴해 낼 수 있다. 아니, 나는 그러하다고 믿고 가르친다. 그래서인지 나의 교육의 대부분은 티칭이 아니라 코칭이다.


"그러면, 우리가 쓰는데 편하라고 옮긴 거예요?"

"정답! 어떻게 알았어? 너희들 개인 파일 꺼내고 추천 도서를 꺼내는데 두 교실을 오가는 게 영 불편해 보여서

옮겼는데, 그걸 알아챘구나"



아이는 나의 느슨한 개입을 인지하지 못한 채, 정답에 근접한 답을 스스로 해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는지,

괜히 기분이 좋아진 얼굴로 제자리로 돌아갔다. 아이가 질문하기 편한 분위기, 질문할 때 "그런 것도 모르니?"라는 비난을 받을까 주저하지 않도록 가르치고 싶다. 모르는 것을 물어 아는 게 아니라, 모를 때, 질문하고 다른 질문을 다시 돌려받으며 '생각'이라는 것을 하는 데 능숙한 아이들로 자라나길 바란다. 어른 세대인 부모는 '상부 하달' 문화에 익숙하다. 지식으로 충만한 윗사람에게 매뉴얼을 전수받고 그대로 하는데 노련한 삶을 살아왔다. 그런데 이제 세상은 힘 있는 사람들이 짜 놓은 판에 충실한 구성원으로 온건히 따르며 매뉴얼을 벗어나지 않는 사람을 인재라고 하지 않는다. 그런 일은 인공지능이 대신하고야 만다. 판을 짜는 사람, 로봇을 부리고 가동하는 사람이 되려면, 주어진 것을 그대로 따르는 "착한"사람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스스로 생각하고 질문하며 스스로 찾아내는 배움에서는 제법 '까칠'한 사람으로 아이들이 자라나야 한다.



"**아, 네가 질문하고 답을 찾는 과정을 "탐구"라고 해. 어딘가 멋진 곳으로 떠나야 만 탐험이고 탐구가 아니야. 우리 생활 속에 널리고 널린 것들을 탐구해 봐. 이번 여름방학에 말이지"



가정마다 질문과 역 질문, 그리고 '생각'하는 문화가 가득해지면 좋겠다. 나중이 아니라 지금, 뜨거운 이 여름방학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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