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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낚시하는 갱년기#1

아빠와 딸의 장면을 낚았어요.

by 최신애

초등학교 2학년이 안 되어 보이는 자그마한 여아와 덩치가 큰 아저씨가 자리를 잡았다. 월요일을 앞둔, 직장인이 가장 두려움에 휩싸일 일요일 저녁. 두 사람은 무릎보다 낮은 테이블 자리에 앉아 책을 폈다. 몹시 불편해 보이는 자세였다. 착장으로 봤을 때 주말에 편한 차림새였고, 둘의 거리를 보니 아빠와 딸 같았다. 읽던 책이 급하고, 중등 시험기간 수업준비로 자습서를 둘러보는 내게 그들의 풍경은 사소로운 것일 뿐이었다.

고요히 울리는 나긋나긋한 소리에 이끌려 눈을 들었다. 남성의 목소리에서 나오는 발음은 곱하기와 더하기와 비슷한 말들이었다. 딸아이의 수학을 지도하는 장면. 아이가 아빠에게 혼나며 배우겠다는 나의 예상은 어김없이 무너졌다. 부모라면 안다. 내 아이에게 의도치 않게 언성을 높이는 경우가 여럿 되는데(아니, 헤아릴 수 없이 많음을 고백해야겠다) 한글을 가르칠 때와 구구단을 가르친 때가 그 때다. 그런데 또렷하고 다정하며 세심하게 문제를 설명하는 아이의 아빠를 보니 안도감과 존경심을 느껴졌다.


"좀 깨끗하게 적어야지"

"~와 ~를 더하면 이렇게 되는 거지?"

전세금을 다 쏟은 남편의 일때문에 시댁의 방한칸으로 급하게 들어간 그 해. 두 아이를 붙들고, 늦게 귀가하는 남편을 원망하며 언성을 높였던 어느 일요일 밤이 떠올랐다. 불쾌지수가 높을 뿐 아니라, 이사 후 고장 난 에어컨을 고칠 여윳돈이 없었다. 선풍기와 부채로 견디던 우리들. 눅진하고 살벌하던 거실의 온도. 뾰족하기 그지없던 나의 상태는, 자처한 가난에 대한 불편이 먼저였다. 그리고 제깍 알아듣지 못하는 큰 아이에 대한 불만 도 덧붙었다. 게다가 첫째에게 매달린 엄마를 기다리며 속옷만 입고 땀을 척척 흘리던 작은 아이에 대한 미안함까지 온통 범벅이 되었었다.


오늘날까지도 더 다정하지 못했던 나를 되짚곤 했다. 그런 장면이 떠오를 때마다 무거운 마음과 함께 솔직한 마음은 이러했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지만, 환경이 나를 구렁텅이에 빠지게 해서 나빠졌다'거나 '여유만 있다면 좋은 엄마로 고상하게 아이들을 기를 것이라'라는 하소연이 용수철처럼 튕겨 올라오곤 했다. "엄마는 화난 거 아냐. 빨리 다시 풀어 봐"라고 높이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화난 엄마를 불안하게 쳐다보던 순하고 느렸던 첫아이가 벌써 성년이 되었다. 그러데도 나는 이런 장면들을 오래된 옷처럼 겹겹이 입고 있었다.


젊어서 모든 게 서툴고 부족했던 시절. 도무지 쌓이지 않는 통장 잔고로 절망했고, 떼어놓을 수 없는 어린 두째때문에 무릎 치료를 오래 미루었다. 절뚝거리던 것은 다리만이 아니었다. 다정함의 소멸은 내가 선택한 부정적인 습관이었다. 견딘다며 건조하고 딱딱한 사람을 자초해 온 게 지금까지였다.


한 시간 정도 그들의 시간이 평온했고 공간은 풍성했다. 아빠에게 더 가까이 머리를 맡대며 설명을 듣는 정겨운 모습은 고요하고 단단했다. 문득 예상밖의 생각에 닿았다. 그 시절 그 거실의 모습이 저렇지 않았을까? 속으로는 어금니를 깨물며 화를 참았지만 겉으로는 한없이 기다렸었지. 아이에게 붙어있으려 화장실도 줄였던 나였다. 강퍅해진 내가 두 아이를 모질게 돌보았겠다는 기억은 남이 아닌 내가 만든 것이었다. 나의 기억이 선택적인 편집일 수 있겠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돋았고, 오래 묵은 쳇증이 가시듯 가벼워졌다.


어느 부모가 자녀의 위기나 위험을 넋 놓고 쳐다보거나 방관만 할까. 나의 자녀들은 모든 순간 어려움의 연속을 경험했을 것이고, 나는 그 순간마다 귀 기울이고 방법을 함께 강구한 게 팩트다. 가끔은 다 큰 아이들이 과거 어둡게 반추하는 나를 말릴 때가 많았다. "나는 행복했는데 엄마는 왜 그렇게 기억해?" 때론 아이들보다 더 앞서기도 했고, 때론 시일을 놓쳐 더 상하게 하기도 했다. 처음 엄마가 되는 과정, 처음 두 아이를 나란히 키우는 경험으로 나는 허덕이는 내가 싫었다. 나의 시간과 건강과 잠과 에너지를 쏟도 나는 부족한 사람이었다. 아무도 나를 비난하지 않았지만, 내가 나를 용서하지 못했다.


오늘의 장면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 길은 없다. 아이 아빠가 커피 한잔이 당겨서 숙제해야 하는 딸아이를 데리고 나왔거나, 아이 숙제를 봐주다가 언성이 올라갈까 걱정해 딸아이를 데리고 나섰을 수 있다. 그들의 배후에 딸아이의 엄마가 남편을 흘겨봐서 피신한 것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따듯하고 다정한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오늘의 장면을 통해, 엄마로서 초보였던 나를 소환했고 다독였다. 엄마됨을 포기하지 않았던 여정은 따뜻하면서도 최선이었음을.


머리로 알던 것이 이제 가슴까지 내려왔다. 불쑥 뜨끈한 것이 솟구쳐 올라오는 바람에 화들짝 생각을 정리하고는 '이놈의 갱년기! 열이 오르고 내리네'라고 공연한 헛손질을 했다. 가족 단톡에 메시지가 쌓인다. 늙어가는 나를 안 쓰러이 여겨서인지, 장성한 아이들과 엽떡을 먹고 있는 남편. 앓았던 대상포진이 다시 도지려 한다는 나의 앓는 소리에 카페에서 더 놀다 오라는 둘째 아이의 목소리. 내 심장박동을 걱정해서, 얼른 귀가하고 수면시간을 늘리라는 큰 아이의 잔소리. 카페에서 건진 장면, 그들의 파동이 나에게 닿아 기분 좋은 소란을 일으킨다. 열이 오르고 내리는 게 갱년기만은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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