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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성민 Apr 22. 2017

타이타닉호 스쿼시장

[타이타닉호.]


'타이타닉'이라는 배는 다들 한 번은 들어봤을 거라 생각한다. 영국의 초대형 여객선으로 1912년 첫 항해이자 마지막 항해를 떠났다. 어차피 배에 관한 얘기는 영화도 나왔고 하니깐 그런 부분은 패스하고, 타이타닉 배 안에 스쿼시 코트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자, 이제 내가 자세히 알려줄테니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어디가서 '너 타이타닉에 스쿼시 코트 있던 것 알아?"하고 본인의 지식을 뽐낼 수 있게 '아는 척 매뉴얼'을 만들어 주겠다. 나를 믿어보시라! (아, 어디서 들었냐고 하면 출처는 꼭! ^^;)




1) 스쿼시 역사 살짝 짚어보기

1800년대 영국에서 시작된 스쿼시는 초반엔 코트 크기도 동네마다 달랐고, 규정도 달랐고, 사용하는 공도 달랐다. 이름도 '스쿼시'가 아니었다. 스쿼시 자세한 역사는 팟캐스트 2회 참조 - 클릭. 우리나라도 고스톱이나 포켓볼, 아이들이 하는 공기놀이까지도 동네마다 룰이 다른데, 이것과 비슷하다고 이해하면 쉽겠다. 암튼, 스쿼시가 점점 널리 퍼지면서, 하는 사람도 많아짐에 따라 규정을 단일화시킬 필요가 있었고, 이런 움직임이 한창이던 1900년대 초반, 영국에서 타이타닉이라는 초대형/초호화 여객선을 만들겠다는 돈 많은 회사가 나타났다. 타이타닉의 컨셉은 빠른 속도를 내기보다는 느긋하게 항해를 하면서 호화롭게 즐길 수 있는 배를 만드는 것으로 정해졌고, 이에 따라 당시에 급속도로 퍼지던 스쿼시의 인기에 힘입어, 스쿼시 코트도 타이타닉 안에 짓기로 하였다. 스쿼시의 유래를 찾아보면 감옥에서 죄수들이 벽을 향해 공을 치던 것이 그 유래라고 나와서 마치 '죄수들의 운동'으로 비칠 수 있는데, 물론 이 '감옥 유래설'이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저 감옥이 일반 흉악범들을 모아놓은 감옥이 아니라, 주로 경제 사범들만 모아놓은 감옥이었다. 예를 들면 현재 구속되어 있는 삼성의 이재용 같은 사람들 (물론 기소 사유는 좀 다르지만). 그리고 저 당시 감옥은, 들어가게 되면 감옥 숙박료를 지불해야 하는 한 마디로 골 때리는 시스템이었는데, 스쿼시가 시작되었다고 알려진 감옥은 그중에서도 숙박료가 제일 비싼 감옥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그 감옥에 수감된 사람들도 밖에서는 귀족 스포츠인 테니스를 많이 즐기던 사람이 많았고, 감옥 안에서는 테니스 코트가 없으니 대신 벽에 대고 공을 치면서 시간을 보냈을테고, 이러다보니 이게 발전해서 스쿼시가 되었다는 것이 스쿼시의 '감옥 유래설'이다. 물론 이후 이것이 영국의 유명한 고등학교 몇 곳에 까지 퍼지게 되고, 그러면서 차차 룰이 정립되면서 하나의 종목으로 자리를 잡아간다는 것이 스쿼시 기원의 정설이다. 여하튼, 배가 건조되던 당시에 널리 퍼지고 있던 스쿼시, 그리고 호화스러운 컨셉으로 만들어지고 있던 타이타닉, 이 둘이 딱 타이밍이 맞아 타이타닉에 스쿼시 코트가 지어지게 된다. 그리고 스쿼시는 1등석 승객들만 이용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2등석, 3등석 승객은 이용 불가. 타이타닉 영화 속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도 3등석 승객이었으니, 얘도 불가! 잘 생겨도 안됨!   


2) 배도 넓은데, 스쿼시 코트는 어디?

오로지 1등석 승객들만 이용이 가능했던 타이타닉의 스쿼시 코트. 어디 있을까? 아래 사진에 나와있다.


[위에 빨간색 네모칸이 스쿼시 코트 위치.]


[다른 단면에서 본 타이타닉. 중앙에서 약간 아래에 스쿼시 코트가 보이는가.]


그 큰 배에 코트는 달랑 하나뿐이다. 하긴 전체 탑승자 2,200명 중에 1등석 승객은 320명 정도였으니, 그리고 저 320명 모두가 스쿼시를 하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항해도 며칠이 걸리니 코트가 하나만 있다고 해도 그렇게 빡쎄게 돌아가진 않았을 수도 있겠다. 코트를 이용하는데 큰 제한은 없었지만, 뒤에 대기하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1시간만 이용하도록 하는 규정은 있었다고 한다. 아, 스쿼시 동호인이라면 누구나 궁금해하는 그것, 일일 입장료! 타이타닉에 있는 스쿼시 코트 이용료는 당시 영국 돈으로 2실링,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대략 15,000원쯤 된다. 우리나라 스쿼시 클럽의 일일 입장료와 얼추 비슷하다. 배 안에 스쿼시 코트를 지은 것은 타이타닉이 처음이다. 자, 이제 우리 모두 타임머신을 타고 타이타닉이 출항하던 1912년 4월 10일로 이동해서 타이타닉의 스쿼시장을 이용하는 경험을 해보자. 좀 더 실감나게 하기 위해 타이타닉 영화 뮤비를 가져와봤는데, 아~ 추억 돋는다. 벌써 20년 전 영화인데, 이걸 영화관에서 두 번 보느라 죽는 줄. 고증도 매우 잘 되어 있어서 당시 1등석과 3등석의 차이를 뮤비에서도 잘 보여주고 있다. 영화가 개봉하던 저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ㅠ.ㅠ



3) 타이타닉 스쿼시장

여러분은 이제 배에 올랐다. 21세기에서 100년을 앞으로, 당시엔 나무로 된 라켓이 대부분이었지만 여러분의 라켓은 '미래소재' 그라파이트다. 물론 무게도 나무 라켓보다 훨씬 가볍다. 그래, 이제 만만한 상대만 찾아서 뺑뺑이만 돌려주면 되겠다. 스쿼시장으로 내려가보자. 아차, 스쿼시장을 이용하기 위해선 1등석 티켓이 있어야 하니, 여러분 모두 1등석 승객으로 간주한다. 스쿼시 코트의 위치는 G 데크, 마우스 휠 살짝 올리면 지도 있으니깐 잘 찾아가 보시라. 못 찾겠다고 해도 상관없다. 여러분은 1등석 승객 아닌가. 승무원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도 1등석 승객에게는 친절하게 안내해 줄 것이다. 물아봐서 왔든, 지도를 보고 왔든, 여러분은 이제 스쿼시 코트에 도착했다. 타이타닉의 스쿼시 코트는 이렇게 생겼다.


[타이타닉호의 스쿼시 코트.]


딱 보면 알겠지만, 지금의 스쿼시 코트와는 약간 다르다. 저 때만 해도 스쿼시는 아직 룰이나 이런 부분이 지금처럼 정립되기도 전이니깐. 그래도 코트 면적은 현재 우리가 뛰어다니는 스쿼시 코트의 면적과 비슷하다. 타이타닉 스쿼시 코트의 특이점이라면 위층에서 코트를 내려다볼 수 있는 관람석이 있고, 코트로 입장하는 문은 왼쪽 코너 뒤에 위치해 있다. 우리나라에 있는 스쿼시 코트는 대부분이 뒷 벽은 유리인데, 해외에는 저런 식으로 사방이 그냥 벽이고 문은 조그맣게 옆 벽 혹은 뒷벽에 만들어놓은 경우가 제법 있다. 주로 시멘트 코트에서 볼 수 있는 구조인데, 우리나라 동호인들에겐 생소한 출입문이지만, 해외에서는 종종 볼 수 있는 구조다.


벽의 재질은 철이다. 배 안에 짓다보니 어쩔 수 없었던 듯하다. 공을 치면 엄청 시끄러웠다고 한다. 여기서 스쿼시를 치고 있는 당신. 시끄러운 철판 때리는 소리는 적응되지 않고, 철판 재질의 벽은 공이 너무 빠르게 튀어나오기 때문에 여기서 또 적응이 안된다.


아 참, 시설이 있으니 당연히 이것을 관리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무리 1등석 승객이라도 허락없이 막 코트에 들어가면 민폐다. 코트를 이용하기 위해 여러분이 가장 먼저 만나야 하는 사람은 24세의 젊은 프레드릭(Frederick Wright)이라는 사람이다. 이렇게 생긴 사람을 찾으면 된다.


[Frederick Wright. 타이타닉호의 스쿼시장 관리자.]


주로 코트 예약 관리를 하고, 라켓이나 공도 대여해주고, 혼자 이용하는 사람이 있으면 가끔 게임을 쳐주기도 한다. 참고로 이 사람의 주급은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대략 60만원 정도, 한 달로 치면 240만원 정도다. 여기에 부수입으로, 스쿼시 코트는 돈 많은 1등석 승객들이 드나들었기 때문에, 승객들이 주는 팁이 상당히 쏠쏠했다. 프레드릭과 30분간 게임을 치고 싶으면 약 5만원 정도를 내면 게임도 칠 수 있고 필요하면 레슨도 받을 수 있다. 돈 많은 1등석 승객이 대상이라 약간 비싸게 받지 않았나 한다. 물론 승객들끼리 와서 게임을 쳐도 상관없다. 단, 1등석 승객들만 스쿼시 코트를 이용할 수 있고, 일일 입장료는 얼마? 그렇다 지금 돈으로 대략 15,000원. 하지만, 프레드릭은 안타깝게도 타이타닉이 가라앉으면서 운명을 함께 한다. 이후, 프레드릭을 기리기 위해 필라델피아에서 이 사람 이름을 딴 'Fred Wright 메모리얼 대회'를 개최했다. 이것 역시 해외 문화 중 하나인데, 몇 년 전에 캐나다 스쿼시 국가대표 상비군 정도 되는 선수가 자전거를 타고 운동가는 길에 차에 치여서 현장에서 사망했는데, 이듬해 이 선수의 이름을 딴 대회를 열기도 했다.


4) 스쿼시장 죽돌이

타이타닉 스쿼시장 죽돌이를 할 뻔했던 사람이 있다. 이름은 Colonel Archibald Gracie, 그냥 그레이시 아저씨라고 부르자. 부동산 사업가로 돈 많은 53세 아저씨다. 이렇게 생겼다.


[그냥 그레이시 아저씨라고 불러다오.]


원래 대서양을 이런 일 저런 일로 자주 오갔는데, 그럴 때마다 배 안에서 운동을 많이 했다고 한다. 마침 스쿼시 코트가 타이타닉 안에 생기게 되었고, 운동 좋아하는 그레이시 아저씨는 당연히 스쿼시를 치러 코트를 이용했다. 그러다가 하루는 프레드릭에게 "나 내일 아침에 레슨 좀 해줘" 하고 방에 들어가서 쉬고 있었는데.....하지만 그날 밤, 타이타닉이 빙산과 충돌하는 일이 발생했고, 그레이시 아저씨는 방 밖으로 나와서 우연히 프레드릭과 마주쳤고, "야, 우리 레슨 어째 취소해야 할 것 같은데?"라는 영국 특유의 핵노잼 농담을 날리고 자리를 뜬다. 아마 이때만 해도 그레이시 아저씨는 상황의 심각성을 몰랐지 싶다. 하지만 프레드릭은 이미 그 시간에 스쿼시 코트에도 물이 차오르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얘기가 있다. 빙산과 충돌해서 바닷물이 들어온 곳이 스쿼시 코트 바로 옆에 있는 보일러실이었으니. 어쨌든, 프레드릭과는 다르게 그레이시 아저씨는 운 좋게 구조가 되었으나 사고 트라우마가 너무 심해서, 결국 몇 달 후에 지병으로 앓고 있던 당뇨가 심해지면서 결국 숨을 거둔다. 그레이시 아저씨는 구조되어 죽기 전까지 타이타닉에 관해서 회고록을 썼는데, 영화 타이타닉에도 그레이시 아저씨가 등장한다. 아래 사진에.


[영화 속의 그레이시 아저씨(가운데). 위의 실제 사진과 비슷한가? 이 아저씨 회고록이 고증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한다.]


5) 당시 스쿼시 세계 챔피언도 타이타닉에 타고 있었다.

현실적으로 영국과 미국만 스쿼시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진정한 '세계 챔피언'이라고 부르긴 그렇지만 당시 실제로 불리던 타이틀이 'World Champion'이었으니 일단은 그대로 따라가본다. 타이타닉에 타고 있던 당시 월드 챔피언 - Charles Eugene Williams (찰스 유진 윌리엄스). 


[흠흠, 내가 스쿼시 좀 하지. 내 이름은 찰스 유진 윌리엄스.]


찰스는 2등석에 타고 있었고, 뉴욕으로 타이틀 방어전을 하러 가는 길이었다. 당시 월드 챔피언쉽은 영국 1등과 미국 1등이 붙어서 이긴 사람이 월드 챔피언이 되는 식이었다. 지들끼리만 해놓고 월드래. 원래 1등석 승객만 이용 가능한 스쿼시 코트였지만, 얘는 당시로 치면 세계 랭킹 1위 아닌가. 얘한테는 살짝 예외가 주어졌지 않았나 싶다. 스쿼시장 관리자 프레드릭이, 자기도 스쿼시계에 몸담고 있는데, 같은 영국 사람이기도 한 세계 챔피언 찰스를 모를 리가 있겠는가.


사고가 나기 몇 시간 전, 1912년 4월 14일 저녁, 저녁에 스쿼시 게임을 치고 나온 찰스. 대략 시간이 밤 10시 반 정도 되었는데, 게임 끝나고 담배 한 대 피우러 흡연실에 들어갔다가 배가 빙산과 충돌하는 소리를 듣고 대피해서 결국 구조되었다. 운동선수가 담배를;; 하지만, 뉴욕에 도착해서 치르기로 예정되었던 방어전 경기를 연기할 수밖에 없었고, 구조된 후 주최측에 전보를 보낸다. 당시는 스마트폰이 없었다능


[원래 경기하러 뉴욕에 오기로 했는데, 배 사고 때문에 경기를 연기한다고 찰스로부터 연락이 왔다는 내용.]


예정된 경기 날짜는 4월 29일이었다. 원래는, 타이타닉을 타고 뉴욕에 4월 15일쯤 도착해서 2주간 적응하고 타이틀 방어전을 할 계획이었던 찰스. 하지만, 타이타닉 사고로 인해 경기는 연기되고, 한참 뒤에 타이틀 방어전을 치르게 된다. 결과는 찰스의 타이틀 방어 성공. 얘는 담배도 피우는 넘이 공도 잘 쳤다. 하지만, 다음해에 자기의 트레이닝 파트너였던 미국 친구에게 패하며 월드 챔피언은 미국이 가져가게 되고, 이후 10년 넘게 미국이 챔피언 국가를 유지한다.


6) 아는 척 매뉴얼 완성

긴 글 읽느라 고생이 많았다. 이제 당신은 타이타닉에도 스쿼시 코트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 외 다른 곳에서는 알려주지 않는 세세한 내용까지 읽었을 것이다. 원래 아는 척은 디테일이 중요하다. 어디가서 '너 타이타닉에 스쿼시 코트 있던 것 알아?"하고 본인의 지식을 뽐낼 수 있게 해주겠다는 글 서두에 밝힌 약속, 이 정도면 지켰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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