갖고 있는 것 모두를 끄집어내는 것.
글을 대략 다 써놓고 급하게 나가야 해서 일단 임시저장을 해놨는데, 이게 저장이 안되었는지 홀라당 다 날라가버렸다. 그 순간 인터넷이 잠깐 끊겼던 듯. 역시 캐나다 인터넷은 저질이다. 그래서 다시 쓰는데, 김이 팍 새 버려서 처음 글만 못할 듯하다. 하아.....기억을 더듬어보자. 기억력엔 호두가 좋다고 했던가? 하나 사 먹든가 해야지 원.....
스포츠에서 '코치'의 역할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일까? 어린 주니어 선수들이나 일반 동호인들이라면 운동을 가르쳐주는 부분에 더 중점을 둘 수 있겠다. 포핸드는 이렇게, 백핸드는 이렇게. 하지만 프로 선수들의 경우라면 약간 얘기가 달라지는데, 이 경우에 있어서 코치라고 한다면 무언가를 가르쳐주는 '티칭(teaching)' 보다는 정신적인 부분 혹은 그 외 다른 부분을 잡아줄 수 있는 '코칭(coaching)'에 더 큰 비중을 두는 경우가 많다. 메시가 있는 축구팀 감독이 메시한테 축구를 가르쳐주겠나. 이 부분에 대해서는 최근 들어서 스포츠 심리학에서 더 많이 다루고도 있는데, 우선 결론부터 말하자면 '시합은 멘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기술적인 부분은 시합 전에 이미 마무리를 지어놓아야 하는 것이고, 정작 시합에 들어서면 이 선수가 자신이 기량을 100%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코치의 역할이 되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 올린 글 중에서 지난달까지 세계 랭킹 1위였던 모하메드 쇼바기에 관한 글에 밝히기도 했는데, 매 게임이 끝나고 주어지는 2분의 휴식시간에 쇼바기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스쿼시를 한 번도 쳐본 적이 없는 쇼바기의 어머니이고, 첫 번째 게임을 지고 나와서 어머니와 얘기를 나누고 들어간 쇼바기는 이후 게임을 모두 이기며 역전승을 이끌어 낸다는 것이다. 쇼바기는 기술적으로 어디가 어떻다고 평가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는 탑 레벨의 선수다. 그런데, 이 선수에게 게임 중간중간 조언을 해주는 이는 스쿼시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스알못'인 그의 모친이다. 난 우리 엄마랑 얘기하면 서로 멘붕이 오던데 ㅠ.ㅠ
대한민국 스쿼시 국가대표팀의 강호석 코치님과 친분이 있어서 종종 이야기를 나누는데 (내가 강선생님한테 배우기도 했고), 강호석 코치님 역시 현대 스포츠에 있어서 위와 같은 '코칭'의 또 다른 개념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하고 있다. 이렇게 남자 둘이 만나서 스쿼시 얘기만 하고 그 흔한 여자 얘기를 하나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부분이 대한민국 스쿼시 국가대표팀 선수들에게서 효과를 보고 있다. 2014년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 다른 나라 코칭스태프들은 우리나라 선수들의 향상된 경기력에 상당히 놀랐다고 한다. 그리고 고영조 선수는 PSA 투어 대회에서도 두 차례 결승에 오르며 우리나라 스쿼시에서 이전에는 없던 역사를 써냈다. 아오 결승전 편파판정만 아니었어도...
[City of Kalgoorlie & Boulder Golden Open 2016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고영조 선수. 태극기 달린 옷 입은 사람 찾는건 어렵지 않겠지. 사진=SquashSite]
지도자의 역할 중에서 '티칭(teaching)' 만큼이나 '코칭(coaching)'도 크게 부각되고 있다. 물론 이는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진다. 어린 주니어 선수나 일반 동호인 입장이라면 티칭의 비중이 클 수도 있다. 당장 퇴근하고 센터에 가서 월수금 혹은 화목에 레슨을 받는 일반 직장인 회원이라면 티칭이 더 요구되는 상황일 테니깐. 하지만, 시합이나 대회를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지도자가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티칭 외에도 코칭이라는 영역이 추가된다. 이 부분은 선수이든 동호인이든 똑같이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 넓게 해석하는 의미에서의 코칭은 어떻게 보면 티칭을 포함한다고 볼 수도 있겠는데, 코칭 자체가 영어니깐 이게 무슨 뜻인지 한 번 찾아보면 아래와 같다.
"Coaching is a form of development in which a person called a coach supports a learner or client in achieving a specific personal or professional goal by providing training, advice and guidance." - 해석은 각자 알아서.
지도자 입장에서 내가 가르치는 사람 혹은 내가 관리하는 사람이 경기에서 100% 자기 능력을 보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시합 전에 선수의 능력이 100%가 되도록 만들어야 하겠고, 그리고 시합 때는 그 100%를 모두 보여줄 수 있도록 도와야 하겠다. 가진 것이 100 인데, 시합에서 자기가 가진 100 모두를 펼쳐 보이는 것과 80 정도만 보이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자, 두 명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A: 실력은 100 인데 시합 때는 80 정도 나옴
B: 실력은 90 인데 시합 때도 90 모두 나옴
누가 이기겠는가. 내가 가진 것을 끄집어내는 능력은 기술적인 것과는 별도인 정신적인 부분이고, 이래서 '시합은 멘탈이다'라고 한 것이다.
이쯤 되면 지도자(코치)와 선수와의 관계가 상당히 중요해진다. 선수가 지도자를 믿고 의지할 수 있어야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가질 수 있고 그 지도자가 하는 얘기가 귀에 들리지, 선수와 지도자 사이에 불신이 존재한다면 애당초 잘못된 조합이라고 볼 수 있겠다. 우선 좋은 예로 니콜 데이비드와 리즈 어빙의 관계다. 리즈 어빙의 선수 조련에 대한 논란은 일단 접어두자. 니콜 데이비드는 따로 설명이 필요 없는 여자 스쿼시의 살아있는 레전드이고, 리즈 어빙은 니콜 데이비드의 코치로 알려져 있지만 현역으로 뛸 때는 세계 랭킹 2위까지 올라갔던 선수였다. 리즈 어빙은 니콜 데이비드뿐만 아니라 바네사 아킨스 (제임스 윌스트롭의 부인) 역시 세계 랭킹 1위로 만들었다. 니콜 데이비드와 리즈 어빙은 14년째 선수와 코치로 좋은 관계를 이어가고 있고 니콜 데이비드의 리즈 어빙에 대한 믿음은 상당히 굳건하다. 국내에도 이런 예는 있어서 국가대표팀 강호석 코치와 이세현 선수 역시 사제지간 관계가 상당히 좋다 (팟캐스트 스쿼시톡 14회 참조).
정서적 안정감은 지도자와의 친분에서 비롯될 수도 있다. 생판 모르던 사람이 혹은 전혀 친하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우리 팀의 코치가 되어서 왔고, 그래서 이 사람이 게임 중간중간마다 "침착해!!"를 외쳐준다 한들 과연 선수가 침착해지겠는가. 저 정도 얘기는 아무나 다 할 수 있는 것인데 핵심은 누가 어떻게 얘기를 해주느냐가 아닐까. 아까 위에 적은 쇼바기의 예시를 봐도 알 수 있듯이, 시합 때는 기술적인 접근보다는 선수들에게 심리적인 안정을 줄 수 있는 코치의 역할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쇼바기 입장에서는 그게 '엄마'였던 것이다. 다른 선수의 경우를 살펴보면, 라미 아슈어의 경우는 좀 특이한데, 코치를 따로 두지 않기 때문에 애당초 경기장에는 혼자 나가고 모든 정신적인 부담을 혼자 짊어진다고 한다. 라미는 전담 코치가 없지만, 심리 상담가는 자주 찾아간다고 한다. 아마 정신과 전문의 정도는 되는 사람일 듯. 그레고리 고띠에 역시 본인의 코치와 물리치료사로 이루어진 '팀'으로 함께 움직인다. 이 팀 역시 끈끈한 조직력으로 뭉쳐있다. 고띠에의 코치는 레난 라빈이라는 사람인데 선수로서의 경력은 고띠에에 비하면 약하다. 그래도 한 때 17위까지 가긴 했다. 이 사람이 고띠에보다 공을 더 잘 쳐서 고띠에가 코치로 두고 있겠는가. 스쿼시만 그런게 아니라 모든 종목에서 선수들의 정신적인 부분(멘탈)은 중요하다. 작년에 국가대표 축구팀에 은퇴한 차두리 선수가 코칭스태프로 합류하면서 기대한 효과는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개인적으로는 차두리의 폭풍 질주가 더 보고 싶긴 하다만.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코칭스태프에 합류하는 차두리 기사 링크
단체 종목은 내가 설령 못해도 팀원들이 잘해서 메꿔주면 이기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스쿼시와 같은 개인 종목은 나 스스로 '멘붕'이 오면 그대로 경기는 끝이다. 이런 부분에서 코치가 도움이 될 수 있겠고, 여기서의 코치의 역할은 전통적인 '티칭(teaching)' 보다는 정신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역할이 필요하겠다는 얘기였고, 이 부분이 원활하게 잘 되기 위해서는 플레이어와 코치와의 돈독한 신뢰관계가 기반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
자, 여기까지는 선수들에 관한 얘기였고, 그렇다면 동호인의 경우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선수들과는 다르게 대회 때 우리 센터 코치가 내 경기를 응원하게 위해 와주는 경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이 분들도 휴일에는 쉬어야지 않겠나. 회원들 대회한다고 따라와주는 코치가 있다면 이 사람이 열정적인 것이고 대단한거다. 이렇게 한다고 센터 사장님이 월급 더 주는 것도 아니니깐. 여하튼, 내가 대회를 나가는데 같이 참가한 동료들, 친구, 같은 모임 사람, 혹은 같은 센터 사람들이 있으면 외롭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그리고 아시아 국가)에서 볼 수 있는 대회 문화 중 하나인데, 매 포인트를 딸 때마다 코트 밖에서 넣어주는 응원소리는 정말 큰 힘이 되기도 한다. 서구권 문화에서는 이런 일이 자주 없고, 있다고 해도 조용하고 얌전한 응원임. 정신적인 부분, 즉 멘탈이 경기의 승패에 큰 영향을 끼친다. 특히나, 선수들과 달리, 이렇게 누군가와 경쟁하는 상황에 익숙하지 않은 동호인들 입장에서는 대회만 나가면 다리가 굳고 얼어붙어 버리는 현상이 생기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이런 것들 다 정신적인 부분(멘탈)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면 되겠다. 아, 잠깐 지나가는 얘기이긴 한데, 여기서 나오는 '멘탈'과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잘못 사용하고 있는 '멘탈 터닝'과 헷갈리지 마시라. 혹시 여러분의 센터에서 코치님이 멘탈 연습하세요, 멘탈 터닝 연습하세요 이렇게 말하면, 그게 뭐냐고 되물어보도록. 그게 무엇이냐, 왜 '멘탈 터닝'이라고 불리냐라고. 영어 쓰는 애들도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콩글리쉬 오브 더 콩글리쉬인데, 이게 설명이 될 리가 없다.
여하튼, 다시 주제로 돌아와서, 대회 때의 멘탈은 매우 중요하다. 사람들이 많이 궁금해하는 부분이 "대회 때 어떻게 하면 떨지 않고 칠 수 있을까요?"인데, 솔직히 경험 말고는 딱히 다른 방법이 있을지 모르겠다. 이런 상황에 자주 접하면서 긴장에 무뎌져야 좀 좋아지지 않으려나? 고등학교 때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허구한 날 불려내려 가서 두들겨 맞다 보니 나중에는 교무실에 끌려가도 그려려니 했던 듯하다. 하지만 대회 전 게임을 앞두고 생기는 긴장감은 PSA 선수들에게도 나타난다. 제임스 윌스트롭의 자서전을 보면 본인도 TOC 대회 결승을 앞두고, 결승전 당일 아침까지도 '오늘 게임 말려버리면 어떻게 하지'하는 걱정을 엄청나게 많이 했었다고 밝혔다. 내 기억에 당시는 윌스트롭 본인이 세계 랭킹 1위였을 시절인데, 그때 얘도 그랬다. 그러니깐 긴장감에 사로잡혔다고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 다른 사람도 다 똑같으니깐. 오히려 긴장을 너무 안해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시합은 멘탈이다. 시합 때라고 없던 기술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평소에 안들어가던 공이 시합 때라고 들어가는 일도 없다. 다만 가진 것 내에서 최대한 많은 것을 보여주는 사람이 이긴다. 내 기술의 완벽을 더해주는 것은 연습, 그렇게 연습된 기술을 끌어내는 것이 멘탈이다.
p.s. 원래 썼던 글은 재미있는 예능이었는데, 날라가서 다시 써놓고 보니 뒤죽박죽에 지루한 다큐가 되어버렸다;;;;; 에이, 젠장.....ㅠ.ㅠ
[지금 나의 상태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