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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성민 Jun 13. 2017

스쿼시 덕질 만렙 #2

지난 편에 이어..


일본어로 '오타쿠'라는 단어가 있다. 아주 쉽게 설명하자면 '특정한 분야의 취미에 심취한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 단어가 한국에 들어오면서 오타쿠 = 오덕후 = 오덕 = 덕후로 변모하였고, 덕후 기질이 보이는 행동을 하면 '덕질'한다고 한다. 그냥 최근에 생긴 인터넷 신조어로 보면 된다. 




스쿼시계에도 국내외를 막론하고 덕후들의 덕질은 무진장 많다. 나도 그 중에 하나겠지. 흔히 덕후의 길에 들어서는 첫 발걸음, 즉 '입덕'은 대게 내가 가지고 있는 장비를 가지고 덕질을 시작한다. 이러다가 증세(?)가 심해지면 남들은 가지고 있지 않은 희귀템을 구하고 다니다가, 더 증세가 심해지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내 장비를 만들기 위해 DIY의 길에 접어든다. 이후의 덕질은 사람의 취향에 따라 종류가 갈리지만 (가령 나같은 이야기꾼은 이런 글들을 쓰고) 모든 '스쿼시 덕후(이름하야 스덕)'들의 로망이 있었으니.....스덕 덕질의 끝판왕, 만렙을 찍는 단계는 바로 '내 집에 나만의 코트 짓기'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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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덕질 만렙 - 돈 없이 빽 없이 공터에 코트 짓기

미국 버몬트 주에 사는 스티븐 폴리라는 사람이 있다. 태어난 곳은 스코틀랜드이고, 거기서 스쿼시를 시작했고, 현재 직업은 집 짓는 시공 업자이고, 스쿼시 덕후다. PSA 까지 등록해서 뛴 경험도 있는 덕후 중에 상덕후. 이 사람은 겨울이 지나 봄이 오고 야외 날씨가 좋아지면서, 스쿼시를 좋은 날씨 아래 야외에서 치면 더 좋지 않을까해서 야외 코트를 지어볼 생각을 했다. 문제는, 야외 스쿼시 코트를 짓고 싶은데 스티븐 아저씨는 지난 회에 나온 사진들처럼 큰 집을 소유하고 있지도 않고, 돈도 그리 많지 않았다. 가진 것은 달랑 꿈 하나 그리고 집 짓는 기술.


때는 1998년, 스쿼시 덕후 스티븐 아저씨는 거주지에 있는 관할 관공서를 찾아가서, 집 근처 공원의 남는 공터에 스쿼시 코트를 하나 지어달라고 건의를 했다. 공무원의 대답은 당연히 "No". 일단 담당자는 스쿼시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었고, 그리고 예산도 없다는 이유에서 였다. 다만, 어차피 놀고 있는 공터니깐 너님이 알아서 재원을 충당해서 코트를 짓는 것은 허가하겠다는 약속은 받아냈다. 코트에 전기 시설이 필요하면 그것까지는 정부가 커버해주겠다는 약속도 함께.


집에 돌아온 스티븐 아저씨는 이제 고민에 빠졌다. 돈을 어디서 구해? 대략 계산해보니 재료값만 2천만원 정도가 나왔다. 미국은 인건비가 상당히 비싸서, 만약 업체에 시공을 맡기게 되면 재료값 + 인건비가 합쳐서 6천만원은 넘게 나올 견적이었다. 다행히 스티븐 아저씨는 본래 직업이 집을 짓는 시공 업자라서, 코트를 짓는 부분은 자기가 직접 하면 되니깐 인건비를 뺀 재료비만 구하면 되었다. 재료비만 2천만원, 말이 쉽지 이것을 어디서 구하나?


이제 발로 뛰기 시작하는 스티븐 아저씨. 먼저 주위의 스쿼시 동호인들을 찾아다니며 이러이러하게 코트를 짓는데 찬조금을 부탁한다며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다. 많은 사람들이 "그래 좋은 일이네~" 하고 선뜻 기부금을 내줬는데, 금액은 대략 10만원 정도. 하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기부 조금만 더 하라고 사람들을 구슬리는 스티븐 아저씨. 결국 인당 50만원 가량의 기부금을 받아내고야 만다 (미국은 기부금 문화가 대단히 활성화 되어있다). 자기 사업을 하는 사람이니 말빨도 오죽 좋았겠나. 거기에 평소 스쿼시 치면서 자주 보는 사람들이었을테니, 이 정도 삥(?)은 쉬웠을 수도 있다. 그리고 지역에 있던 라켓 제조사 '블랙나이트' 대리점을 찾아가서 (동네가 작아서 직원도 1명임) 기부금 좀 내달라고 조른다. 지역의 스쿼시가 활성화되면 당연히 라켓 판매도 증가할테니, 블랙나이트 입장에서도 나쁠 것은 없었다. 흔쾌히 한 방에 50만원을 기부하는 블랙나이트. 땡큐다. 그리고 모자라는 부분은 스티븐 아저씨 본인 사비로 채웠다. 이렇게 재료비 2천만원을 다 모은 스티븐 아저씨. 이제 코트를 지을 차례다.


스티븐 아저씨 본인이 시공 업자인데, 돈 모으는 것이 힘들지 막상 짓는 것은 일도 아니다. 당장 첫 삽을 떴다. 그리고 시간이 좀 흐른 후.....드디어 어느 정도 뼈대가 완성되는 야외 스쿼시 코트. 두둥.


[나홀로 코트를 지으며 열일 하시는 스쿼시 덕후 만렙 스티븐 아저씨.]


가로 x 세로 모두 정식 규격이고, 지붕이 없기 때문에 높이는 대기권 높이고 재질은 콘크리트. 다만 바닥도 콘크리트다. 나무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은데, 스티븐 아저씨 얘기로는 나무나 콘크리트나 본인은 별 차이를 못 느끼겠다고.....무릎도 튼튼한 민족이라 좋겠다. 하긴, 우리나라도 3 v 3 길거리 농구를 보면 죄다 아스팔트 혹은 시멘트 바닥에서 하는데, 그거나 그거나 일 수도. 농구는 수직 점프가 많아서 무릎에 더 큰 충격이 갈텐데. 그리고 지붕도 없는 야외 코트이다보니 아무래도 나무 보다는 콘크리트로 짓는 것이 더 튼튼할 수 있다. 나무 바닥으로 지으면, 비가 많이 올 경우 마르면서 뒤틀려 버릴 수 있으니깐.


각 벽의 두께는 25 cm. 해머로 깨부수지 않는 이상, 라켓으로 코트에 데미지를 줄 수 없는 두께다. 즉, 유지비가 거의 들지 않는다는 얘기. 아, 앞 벽은 예외다. 콘크리트 코트는 가끔 앞벽을 때워줘야 하는 일이 생기는데, 뭐 이 부분은 끽해야 손바닥 보다도 작은 크기에 얼마 하지도 않으니 넘어가자. 그리고 코트 위쪽으로 약 1.2 m 가량으로 그물막을 쳐놨다. 혹시 공이 코트 밖으로 날라가는 경우를 대비해서다. 자칫 홈런을 쳤는데 그물막이 없으면 공 찾으러 한참 나갔다 와야하니깐. 아예 공을 못 찾을 수도 있고.


야외 코트, 거기에 지붕도 없는 코트다 보니 비가 오면 바닥에 물이 고일 수 있다. 그래서 코트 앞 양쪽 코너에 작게 물 빠지는 구멍을 만들어놨고, 코트 바닥은 전체적으로 보면 맨 앞쪽보다 맨 뒤쪽이 약 4 cm 가량 높게 설계되었다. 이렇게되면 빗물이 자연스레 코트 뒤에서 앞으로 흘러 배수구로 빠지게 된다. 그리고 4 cm의 고도 차이는 게임할 때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고 한다. 역시 업자의 혜안. 그리고 코트는 북향이다. 남향으로 지으면 해를 마주보며 공을 쳐야하니깐, 해를 등지고 게임할 수 있도록 북향을 선택했다. 해가 진 후에도 스쿼시를 칠 수 있도록 전등도 달아놨는데, 아쉽게도 나중에 보니 불이 생각보다 밝진 않다고 한다. 이 부분은 실패! 자, 코트 다 지었다. 한 번 봐보자.



잠깐만 잠깐만, 나는 여러분이 무슨 말을 할 지 알고 있다. 왜 뒷벽이 저렇게 낮은거냐고 물어보려고 했을 것이다. 기다리시라 wait a minute! 우리의 스쿼시 덕후 스티븐 아저씨가 설마 스쿼시 코트 규격을 몰랐을까. 자, 설명 들어간다. 애당초 많은 예산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바닥도 콘크리트고 뒷벽도 콘크리트다. 뒷벽을 유리벽으로 설치하면 단가가 올라간다. 그치만 스티븐 아저씨는 사람들이 밖에서 게임을 볼 수 있는 구조를 원했다. 그래서 일단 뒷벽은 위 사진에 보는 것과 같이 약간 낮게 만들었는데, 그 높이는 1.2 m. 원래 규격상의 뒷벽 높이는 2.13 m. 나중에 유리벽을 가져다 끼워서 2.13 m 짜리 뒷벽을 완성하겠다고 했으나 아쉽게도 이 부분은 끝내 미완성으로 남았다. 암튼, 이렇게 스티븐 아저씨 혼자 만든 스쿼시 코트. 동영상을 봐보자.


https://youtu.be/YB0HwGyX__M


https://youtu.be/VEiknDPHT7s


요즘 캠핑도 유행인데, 저런 곳에서 텐트치고 놀다가 스쿼시도 치고 고기도 구워먹고 하면 재미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잠시 해봤다. 혹시 스티븐 아저씨한테 코트 짓는 것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은 사람은 아래 이메일로 연락하면 된다. 아래는 스티븐 아저씨 이메일 주소.

steven@polliconstruction.com


스쿼시 덕후 스티븐 아저씨 정도 되면 '덕질 만렙'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싶다. 자기 손으로 뚝딱뚝딱 코트를 지어버리는 레벨이니. 그러나 이제 좀 슬픈 소식(?)을 전해보려고 한다. 현재 저 코트는 유지보수가 되지 않고 있다. 우선 스티븐 아저씨가 약간 멀리 이사를 가버려서 같은 도시 내이긴 하지만 누가 맡아서 관리할 사람이 없어졌다. 그리고 스티븐 아저씨의 예상과는 달리, 생각보다 사람들의 야외 코트 이용이 저조했다. 우선, 탈의실이 없고, 샤워실이 없다. 그리고 한여름 땡볕 아래서 치고 싶어하는 사람도 없었다고 한다. 이러다보니 자연스레 기가 꺾일 수 밖에. 그래도 모든 스쿼시 덕후들이 생각하는 꿈 - 내 손으로 코트 짓기 - 를 현실로 해낸 업적은 정말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코트를 지으면서 온갖 노하우가 쌓였다고 하는데, 필요하면 위의 이메일로 연락해서 물어보시라. 아, 이메일은 영어로 써야한다.


7) 대한민국의 유일의 스쿼시 팬션 - 홍천스포랜드

한국에도 '덕질 만렙'을 달성한 사람이 있다. 국내 유일의 스쿼시 팬션 홍천스포랜드. 내 집에 스쿼시를 짓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스쿼시장이 있는 집을 지어버렸다. 내 기억이 맞다면 2007년에 오픈했다. 사실 홍천스포랜드는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 같아서 내가 따로 얘기할 꺼리가 없을 듯 하다. 스쿼시 제법 한 사람치고 홍천스포랜드 안가본 사람은 없을테니깐. 각 동호회마다 MT든, 행사든, 뭐든 간에 홍천스포랜드를 숙소로 잡고 1박 2일 코스로 뻑적지근하게 많이들 다녀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만약 안가봤다면 이번 여름에 한 번 꼭 가보시라. 여름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여기 정말 좋다. 참고로, 나 홍천스포랜드에서 뭐 받고 쓰는거 아니다. 광고글 아님.



홍천스포랜드 엄병태 사장님은 구력도 상당히 오래된 열혈 스쿼시 동호인이시다 (KBS 88에서 운동하셨음). 현재 따님은 우리나라 스쿼시 국가대표 엄화영 선수 - 관련기사 클릭. 그리고 사람들이 많이 모르는데, 어느새 레프리 자격증까지 취득하셨다. 엄사장님 앞에서 게임하다 판정가지고 우기지 마시라.


[한국에 있을 때 놀러갔던 홍천스포랜드. 엄병태 사장님과 한 컷.]


사실 스쿼시 동호인 중에서 '스쿼시 센터 사장님'이 된 경우는 여럿 있다. 전 국가대표 김동우 선수의 부모님은 스쿼시 동호인이셨고 의정부 석천을 인수하였으며, 인천의 21세기 스쿼시 클럽 역시 장년부 동호인 고수가 사장님이 되었다. 그런데 이중에 굳이 홍천스포랜드를 꼽은 이유는, 우선 ''에서 ''를 창조했고, 더군다나 기존에는 없던 스쿼시 팬션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렇게 꼽아봤다. 아, 예약 문의는 아래 홈페이지에서 가능.


홍천스포랜드 홈페이지 가기 클릭


홍천스포랜드에 스쿼시 코트가 있어서 좋은 점 중에 하나는, 스쿼시를 전혀 모르고 팬션을 이용하는 손님들 중에 이렇게 우연히 팬션에 있는 스쿼시 코트를 보고나서 나중에 스쿼시 센터를 등록하고 스쿼시를 하는 동호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홍천스포랜드 이용 고객 중에는 스쿼시를 하는 사람이 많긴 하겠지만, 지금 스쿼시가 물불 가릴 때가 아니잖은가. 이렇게라도 저변 확대가 되면 땡큐지.


스쿼시 덕후들의 덕질 최고봉, 내가 직접 코트 짓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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