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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charlie Jul 22. 2019

우리가 사는 곳은 지금, 여기

<튼튼이의 모험>

 

 참으로 힘겨운 청춘이다. 냉혹한 현실의 무게에 힘겨워하는 청춘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들의 이야기는 드라마, 책, 영화 등에서 익숙한 소재로 쓰이고 있다. 현실에서 묵묵히 도전하고 남들과 다른 길을 걷는 청춘들을 응원한다. 청춘이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언젠가는 결실을 얻을 거라 잠시 지나가는 시련이라고 합리화한다. 우리는 알고 있다. 이상적이고 옳은 이야기가 현실에서 항상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님을.

 <튼튼이의 모험>은 청춘을 이야기하는 여느 영화와 다르다. 청춘을 무조건 찬양하지도 나무라지도 않는다. 이는 충길, 진권, 혁준이라는 각기 다른 세 청춘을 통해 찬양하기도 나무라기도 힘든 캐릭터와 상황을 세우기에 가능하다. 그들은 당장 결과를 내야만 하는 시기에 놓여있지 않다. 무언가를 배운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의미 있다. 이들은 레슬링대회 훈련기간 2주를 통해 비로소 세상을 배워나간다.

 결손가정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세 청춘이지만, 위축되거나 우울해하지 않는다. 레슬링 이외의 다른 길에 대해서 알지도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서울행, 대학 진학, 입상실적 등의 막연한 동경의 목표는 품고 있지만, 구체적인 이해나 실질적인 실력 습득은 없다. 충길은 재능과 실력이 부족하나 레슬링에 대한 열정만큼은 뒤지지 않는다. 그의 열정은 미래를 보장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그에게 필요한 것은 현실 자각과 장래 계획이다. 진권은 자기 인생에 대한 열정도 의지도 목표도 없다. 5년을 넘게 해온 운동을 포기하기가 쉽지 않다. 본인의 미래를 걱정해야 할 시기에 어머니가 원치도 않은 필리핀행 경비를 구하려 막노동을 하거나 마지막 기회일지 모를 체중 감량에 소홀하다. 혁준은 말만 앞세운다. 서울에 가기 위한 구체적 계획도 없다. 모처럼 발견한 레슬링 소질과 대학 진학에 대한 설레발이 고작이다. 레슬링에 빠졌다는 말은 훈련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지금이 흘리는 땀이 어떤 땀인지도 중요하다

 이들의 현실은 냉정하다. 2주간의 훈련으로 환상이 현실로 바뀌진 않는다. 5년간의 운동 경력은 현실 속 불량배들에게조차 전혀 위협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운동으로 실패한 경험이 있는 아버지가 열정만 넘치는 충길의 선택을 인정하기란 쉽지 않다. 어머니를 위한다며 막노동을 하고 혁준의 다툼에 휘말려서 다치는 진권을 단순히 인생이 꼬였다고 동정하기 어렵다.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한들 세상일이 뜻하는 대로 쉽게 이뤄질 것이라 믿고 그렇지 않으면 바로 포기해버리는 혁준을 응원하기도 어렵다. 세상은 그런 곳이다. 자신의 능력을 갈고닦아 치열하게 끈질기게 부딪혔는데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

노력한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다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으려면 우물을 벗어나야 한다. 영화 속 등장인물은 그러지 못한다. 레슬링과 함평이라는 우물에 갇혀있다. 코치인 상규는 버스 기사를 하며 함평과 레슬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충길은 좋아하는 레슬링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메달리스트의 사진을 보면서 자기 최면을 강화하는 듯하다. 진권 역시 해왔던 운동인 레슬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막노동 현장에서도 자재를 단지 이곳에서 저곳에서 옮기기만 할 뿐이다. 자신을 위해 선택하지도 뭔가를 완성하지도 못한다. 혁준은 가입했던 불량집단이 발목을 붙잡는다. 과거 잘못의 당연한 결과이고 책임이다. 미용실의 손님도 계속 올 것이고 충길 아버지는 계속 라면과 술을 먹을 것이다. 갈등이나 문제는 모두 해결되지 않는다. 그것이 현실이다.

 영화는 충길의 얼굴을 담으며 수미상관 형식을 취한다. 늘 존재했던 갈등과 고민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음을 암시한다. 좋아함과 잘함의 차이를 냉정히 깨달은 충길의 계속된 열정, 자신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결정을 내릴 진권, 불량집단에서 탈퇴한 혁준의 장래에 대한 고민의 시작은 그렇기에 중요하다. 누구나 꿈을 꾸고 그것을 쫓지만, 우리가 사는 곳은 현실이다. 청춘에게 필요한 것은 막연한 환상에 대한 찬사보다는 현실의 민낯을 마주하고 신중한 고민과 선택의 기회를 주는 것이다. <튼튼이의 모험>은 낭만적 모험에 흠뻑 젖은 찬양이 아니라 모험의 험난함에 대해 한 발짝 떨어져서 전하는 충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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