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힙합 vs 가짜 힙합
예술을 하는 사람도 예술이 뭔지 잘 모르는 경우가 있다.
두 장의 정규 앨범을 발매하고 자칭 예술가라 칭하는 나조차도 과거의 나에게 누군가 다가와 "대체 예술이 뭡니까?"라고 물어본다면 난 말문이 막혔거나 아무 말 대잔치를 열었을 것이 분명하다. 하긴 무리도 아니다. 당장 당신 옆에 열심히 전화를 받고 계시는 대리님을 붙잡고 "대체 회사원이 뭡니까?"라고 물어보자. 어떤 대답이 나올지... 하하.
어쩌면 나는 간단하게 예술을 설명하고 싶지 않았고, 예술을 대단하게 포장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나만은 다른 사람이 하지 못하는 특별하고 고귀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자신을 돌아보니 나 자신이 문득 부끄러웠다. (물론 그러한 자신감과 착각이 예술을 하는데 큰 원동력이 될 수 있느니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때부터였다. 예술이 뭔지, 문화가 뭔지 지금 내가 하는 이 행위들이 대체 뭔지 정확하게 알고 싶었다. 나의 특기이자 장기인 지적 호기심을 연료 삼아 퇴근 후에 (난 쓰리잡을 하고 있다.ㅠ) 문화 수업 강의를 들으려 다니고, 구글링과 내가 사는 곳 가깝게 위치한 국립 도서관을 제 집 드나들듯 들러 다양한 문헌들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고난의 시간이 지나고 답이 없는 논쟁이라 여겼던 문화와 예술에 관해 이제야 비로소 누구에게나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줄 수 있는 자신이 생긴 것 같다.
그다음 내가 한 일은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블로그에 옮겨 놓는 것이었다. 하지만 유명하지 않은 나의 글을 유심히 읽어줄 사람은 많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문화와 예술에 관해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던 중 양질의 콘텐츠가 모이는 브런치를 발견했고 이곳으로 가지고 왔다. 만약 창작을 하고 있거나, 문화와 관련한 사업을 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이 글을 끝까지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문화와 예술을 이해해야 대중을 이해할 수 있고, 대중을 이해하면 훌륭한 판매자가 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런 넌 뭐 하고 있냐고 물어본다면 그저 울지요..)
작년에 '대중 예술 본색'이라는 책을 읽고 느낀 것이 정말 많았다. 그동안 흩어져 있던 예술과 문화에 대한 생각들이 하나로 정리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혹시 창작하고 있거나, 예술과 문화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이 책도 꼭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내가 지금부터 써 내려가는 지식의 상당 부분이 저 책의 파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니 어쩌면 줄거리 요약에 가깝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잘 짜인 책이다.
타인에게 말을 전할 때 난 항상 입버릇처럼 "내가 말하는 건 생각이지 정답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타인의 생각을 들여다보고 부정과 긍정을 반복하면서 자신의 사고력을 성장시키면 좋겠다는 취지다. 내가 원하는 것도 주입이 아닌 교감이니 말이다.
"형상을 통해 인간과 세상에 대한 생각, 느낌, 태도를 표현하고 소통하는 인간의 정신적 산물 또는 행위"를 예술이라고 한다. 이건 내가 정의한 문장은 아니지만 간결하게 잘 정리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저 문장의 속뜻은, 무언가를 표현하는 것은 모두 예술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가 표현하는 것 중 생각, 느낌, 태도 혹은 인간 세상을 담지 않은 것은 없으니까 말이다. 이러한 예술을 우리는 두 가지 정도로 나눌 수 있다. 대중예술과 순수예술. 이 두 가지 예술에 관하여 언어적인 느낌만으로 우리 머릿속에 딱 떠오르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그건 바로
대중예술은 뭔가 돈과 관련되어 있을 것 같고... 순수 예술은 뭔가 난해하고 외골수적이고 "진짜 예술 같은" 느낌이나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를 것이다. 그렇다 그게 딱 예술을 받아들이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생각일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생각이 과연 옳은 생각인지 생각해 볼만하다. 예술이면 예술이지 진짜 예술은 뭐고 가짜 예술은 뭐란 말인가? 나는 afroamerican 음악을 하니까 힙합을 예로 많이 드는데, 뭐가 진짜 힙합이고 뭐가 가짜 힙합이란 말인가? 이센스는 진짜 힙합이고 엠씨몽은 가짜 힙합일까?
Q1) 무엇을 예술이라고 하는가?
위와 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는 예술의 정의를 이야기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형상을 통해 인간과 Blah Blah... 하지만 우리가 생각이나 이념이 부딪히는 이유는 언어의 정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이기 때문일 것이다.
" 요즘 힙합은 힙합도 아니야."
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저 문장 뭔가 조금 이상하다... 힙합이라고는 하는데 힙합이 아니라고 한다. 이는 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힙합이라고 판단하는 기준이 남달라서 생기는 문제이다. 아마도 힙합을 형태로 보기보다는 가치에 중점을 두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요즘 힙합은 (힙합적인 가치로 보았을 때, 가사의 깊이가 없고 다들 똑같고 단조로운 플로우를 구사해서 ) 힙합도 아니야" 쯤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가 무엇의 맞고 틀림을 판단 내리기 전에는 먼저 기준을 세워야 한다. 스포츠로 치면 규칙을 세우는 것과 같다.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옳고 그름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는 어떠한 예술을 칭할 때 '종류, 형태를 기준'으로 할지 '가치를 기준'으로 할지 정하자는 말이다.
Q2) '예술인가?'를 묻기 전에 질문을 '예술적인가?'로 바꿔본다면 어떨까?
이번에는 위에서 예로 들었던 가짜 힙합 vs 진짜 힙합을 가져와 보자. 엠씨몽의 음악은 힙합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다이내믹한 리듬에 음정이 담긴 노랫말 대신 랩을 주로 구사한다. 엠씨몽의 음악이 힙합인가?라고 물어본다면 형식상으로는 힙합이 맞다!라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엠씨몽의 음악이 힙합적인가?라고 물어본다면 힙합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힙합적이지 않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위와 같은 생각의 차이가 생기는 이유는 우리가 형태나 본질보다는 가치와 덕목을 기준으로 판가름하는 데 익숙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대중문화와 대중 예술에 대해서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일단 이러한 생각을 걷어내야 한다. 예술과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치와 덕목만을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다. 왜냐면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런 가치와 기준이 개인마다 너무도 다르기 때문에 내가 가치 없다 여긴다 한들 누군가는 가치 있다 여길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문화가 형성되면 그 개인적인 가치관도 무언의 약속처럼 사람들 간 공유가 될 수 있다. 우리는 문화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먼저 객관적인 관점에서 문화, 예술 현상을 파악하고자 하니 어느 한 가지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이제 예술을 판단하는 두 가지의 기준을 알았으니 예술을 대하는 데 있어서 가지고 있던 색안경의 존재를 인식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