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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관통 Jan 31. 2019

하고 싶은 일 도전하기(11)최적주의로 최악에서 회복

완벽주의보다는 최적주의

완벽주의자는 실패를 두려워하고 부정적으로 보지만 최적주의자는 실패를 하나의 과정이자 발전할 수 있는 기회로 삼는다. 


우리는 완벽해지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타킹에서 최악의 통역을 한 적이 2번있다. 정말 부끄럽고 잊고 싶은 큰 실수를 했지만 완벽주의보다 최적주의를 추구하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그 2가지 사례를 공유해본다.



<첫 번째 사례>

살다 보면 가끔 최악의 하루를 맞이할 때가 있다. 불운이 겹치고 컨디션도 안 좋고 모든 것이 꼬이는 상황 말이다. 아침부터 일이 꼬였다. 픽업을 나오기로 한 차량이 제 시간에 도착하지 않는다. 약속 시간이 훨씬 지나서야 올 수가 없으니 알아서 오란다. 부랴부랴 택시를 타고 출연자를 픽업해서 방송국으로 갔다. 리허설을 했는데 반응이 좋지 않아서 전체 순서를 완전히 뒤집었다. 녹화를 3시간 앞두고 무대 위에서 할 내용을 다시 숙지를 해야 하는데 출연자가 짧은 시간에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녹화 시작 직전까지 숨돌릴 틈도 없이 바뀐 순서에 따라 최대한 연습을 하고 올라갔지만 출연자가 바뀐 순서에 당황했다. 2시간 분량의 설명을 해야 하기에 옆에서 최대한 흐름을 알려줘야 했다. 오늘따라 토크가 유난히 어수선하다. 누군가가 말할 때 다른 사람이 동시에 말하면 목소리가 겹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하는데 말하는 도중에 계속해서 멘트가 날아온다. 사운드가 겹치는 문제도 있고, 통역을 하는 도중에 다른 사람이 말을 하면 흐름이 끊겨서 전달하기가 힘들었다. 출연자가 진행 순서를 계속 헷갈려 하길래 옆에서 자세히 귓속 말로 알려줬는데 연예인으로부터 ‘말이 너무 많다. 예능이지 뉴스프로그램 동시통역이 아니라.’는 주의를 받았다. 그 분은 어떤 상황인지 모르니까 그런 의견을 낼 수도 있었겠지만 솔직히 억울했다.


오늘 따라 통역 중에 말을 끊고 들어오는 것은 보통이고 심지어 출연자가 설명을 마치면 통역을 해야 하는데 통역할 틈을 안 주고 다음 질문을 하는 패널도 있었다. 오늘은 정말 힘들다. 외롭다. 스타킹을 하면서 처음으로 회의감을 느꼈다. 나도 인간이기에 기분 나쁜 감정이 표정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중간에 강호동 선배님이 웃으라고 싸인을 주고, 방청객석에서 작가님이 웃으라고 싸인을 줘도 표정관리가 안 된다. 얼굴 표정도 통역하는 방법도 불친절했다. 


2시간 넘는 녹화를 마친 후 스타킹에서 통역하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모두가 보는 앞에서 강호동 선배님께 혼이 났다. 출연자가 주인공인데 왜 네가 짜증을 내냐고 지적하셨다. 맞는 말이다. 어떤 일이 있었더라도 프로답게 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내 탓이다. 활발하고 밝은 기운으로 해야 하는 예능프로그램에서 저질러서는 안 되는 실수를 했다. 출연자에게도 죄송하고 수많은 스태프와 출연자, 방청객 앞에서 부끄러웠다. 하지만 계속해서 침울해하고 있을 여유가 없다. 바로 다음 코너의 통역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스타킹 활동 최대의 위기였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무대 위에서 짜증을 얼굴로 표현했던 일이 부끄럽고 후회스러웠다. 만약 다음 통역도 엉망으로 했다가는 스타킹 통역을 다시는 못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들었다.정신을 차려야 했다. 기운이 없지만 다음 코너는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해내야 한다. 다음 녹화가 시작될 때까지 주어진 시간은 단 10분. 


우선은 지금의 실수에 매달리는 것은 잠시 중단하고 다음 녹화 준비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물과 에너지바를 먹고 눈을 감은 채로 심호흡을 했다. 후회가 밀려오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고, 육체적으로도 지쳤지만 추슬러야 한다. 이미 저지른 실수는 되돌릴 수 없다. 자책하면서 다음 행동에 영향을 끼치지 않게 하자. 2번 째 화살에 맞지 말자. 



그때 최적주의에 대해서 더 깊게 생각을 하게 해준 메이저리그 스카우트 제이미의 조언이 기억났다. 현재는 LA다저스의 스카우터로 있는 제이미가 시애틀 마리너스의 스카우터로 있을 때 최지만 선수의 일로 함께 일한 적이 있는데 그때 선수들에게 조언한 내용을 일기에 적어놓은 덕분에 가끔씩 읽으면서 마음에 담아놓았고 가장 필요한 순간에 머리에 떠올랐다.


1. 방금 던진 공은 잊자. 지금 해야 하는 것에 집중하자. 한 번에 공을 하나만 던질 수 있다.

2. 항상 완벽할 수는 없다. 실패에서 회복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타고나거나 스스로 배워야 한다. 아무도 대신 회복해주지 않는다.

3. 실수는 그 자리에서 잊고 새로운 마음으로 다음 타자를 맞을 것. 코치가 공을 가져가지 않은 것은 아직 내가 컨트롤하고 있다는 것이다.

4. 결국에는 멘탈게임이다. 현재는 기량의 30~40퍼센트가 멘탈이라면 빅리그에서는 멘탈이 60~70퍼센트를 차지한다.

5. 공은 살아있다. 긴장하고 꽉 쥐면 공이 살아서 날아가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감쌀 것.



이 글귀를 가슴에 새기면서 다음 코너 녹화에 들어갔다. 최악의 실패를 했지만 이미 저지른 실패는 우선 잊고 다음 코너에 새로운 마음으로 집중했다. 음향팀으로부터 마이크를 받았다. 아직 내가 마이크를 잡고 있다. 내가 통역하고 있다. 우선은 다음 코너를 통역하는 것에 전념했다. 방금 전에 스튜디오 안의 모두의 앞에서 혼났지만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평소에 하듯이 최대한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행동하려 노력했다.


걱정을 했지만 녹화가 시작되자 다행히 평소처럼 무난하게 통역을 할 수 있었다. 녹화가 끝나고 강호동 선배님이 조언해주셨다.


명심하고 집에 와서 일기장에 적어놓았다. 지금도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명심하고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두 번째 사례>

최악의 상황이라고 생각되었던 것보다 더 최악의 통역을 한 상황이 있었으니 바로 뮤지컬 켓츠팀의 통역을 했던 때의 일이다. 뮤지컬 특집인 뮤지컬킹에서 특별 공연을 하기 위해 켓츠팀이 특별 출연했다. 인터뷰를 시작했는데 켓츠의 배우이다 보니 고양이 흉내를 내면서 쉴새 없이 말을 하기에 어느 타이밍에 통역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고양이를 떠올린다면 내 심정이 이해가 갈 것이다. 동작과 함께 대사를 1분 가량 쉬지 않고 했기에 중간에 미쳐 통역할 틈을 찾지 못했다. 


내 목소리가 이어폰으로 전해지는 동시통역 환경이라면 외국인이 말할 때 동시에 말해도 괜찮겠지만 스타킹 무대에서는 동시통역을 할 수 없다. 내 목소리가 마이크로 스튜디오 전체에 전해지기 때문에 출연자와 동시에 말하면 목소리가 겹치기 때문이다. 그것을 예방하기 위해 출연자를 향한 질문은 출연자의 귀에 위스퍼링통역을 하더라도 출연자의 답변은 항상 순차로 진행해왔다. 고양이 럼텀터커의 1분간의 행동이 끝난 후에 동작과 같이 이루어진 대사를 말로만 통역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동작과 함께 이뤄진 인터뷰 통역을 실패해버렸다. 


이어진 인터뷰에서도 2명의 배우가 답을 하는데 한 명의 대답이 끝난 후에 내가 통역할 틈이 없이 바로 다른 배우가 대답을 해서 전체 답할 분량이 길어졌다. 평상시라면 답변이 길어도 노트테이킹을 하면서 소화했겠지만 아까 동작을 포함한 인터뷰를 실패했던 충격이 너무나 커서 2명이 이어서한 대답에 대한 통역도 불안하게 하고 말았다. 여태껏 이렇게 당황한 적이 없었다. 완벽한 실패였다. 


끝나고 출연자들을 보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최악의 통역이었다. 켓츠팀과 동행한 한국 기획사 팀장님이 왜 그렇게 긴장했냐고 물으셔서 더욱 죄송했다. 집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도 부끄러웠다. 나에게는 수많은 통역 중에 한 번이겠지만 켓츠팀에겐 스타킹에서의 유일한 기억일 수도 있기 때문에 더욱 아쉽고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최악의 통역을 한 원인을 찾기 위해 일어난 일을 계속해서 생각했다. 



스타킹 통역이 끝날 때마다 후기를 쓰는데 이번엔 벌거벗은 나와 마중한다는 느낌으로 그날 일어난 일과 느낀 감정을 솔직하고 빠짐없이 기록했다. 글 마지막 부분에는 이번엔 실패했지만 다음에는 같은 실수를 하지 말자. 이미 지난 일 자책만 하기보다는 해결책을 찾자고 썼다.


최악의 통역을 했지만 그것으로 끝은 아니었다. 다음 통역 기회가 왔을 때 평상시에 해왔듯이 최선을 다해서 통역을 했다. 통역을 하면서도 머릿속으로 동작과 말을 동시에 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 일본에서 온 팝핀댄서 토리할머니의 녹화 때 같은 상황이 일어났다. 인터뷰 중에 토리할머니가 동작을 하면서 답변했다. 예전에 당황했던 연속적으로 동작을 하면서 대답을 하는 형식이었다. 한 번 실패한 경험이 있는 바로 그 대답 방식이었다.


아, 그동안 고민했던 상황이 다시 일어났구나. 침착하려고 노력했다. 할머니가 하는 동작을 눈으로 보면서 손으로는 대사를 메모한 후에 내가 직접 할머니가 보여준 동작을 따라 하면서 통역했다. 


‘이제는 통역만 해서는 안 돼요. 생동감 있는 통역을 하고 있어요!'


 MC와 패널들이 웃으면서 말했다. 다행히 답변의 의미를 제대로 전달했을 뿐만 아니라 웃음까지 줄 수 있었다. 실패한 것을 후회하고 완벽하지 못한 것을 자책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그것을 계기로 상황에 가장 적합한 해결책을 찾았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기에 실수를 하기 마련이다. 최정상급의 프로들도 실수를 한다. 중요한 것은 실수를 한 후에 그것을 어떻게 대응하느냐이다. 누구나 실수를 하지만 실수를 했을 때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프로와 아마추어를 구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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