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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붱 Jul 06. 2024

어느 날 그림이 내게 말을 걸었다

내 마음을 모르는 나에게 질문하는 미술관, 백예지, 앤의서재(2024)

몇 년 전 설레는 마음으로 매주 업로드를 기다렸던 글이 있다. 바로 보늬밤 작가님의 '쉽고 맛있는 명화 브런치'.


일상의 한 순간에서 포착된 어느 장면이나 상황을 그림과 곁들여 쉽고 '맛있게' 풀어내는 작가님의 글은 그림이라고 하면 그저 어렵고 내 삶과 무관한 것이라 여겼던 나의 생각을 서서히 바꿔주었다.


명화 브런치가 연재되던 것은 지금으로부터 4년 전인 2020년. 당시에도 나를 비롯한 많은 브런치 유저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던 그 시리즈가 드디어 4년이란 시간을 거쳐 종이책으로 출간되었다. 『내 마음을 모르는 나에게 질문하는 미술관』이라는 이름으로.


쉬고 싶죠.
시끄럽죠.
다 성가시죠.
집에 가고 싶죠.
그럴 땐 이 노래를
초콜릿처럼 꺼내 먹어요.


책은 몇 년 전 유행했던 자이언티의 노래 <꺼내 먹어요>의 가사로 시작한다. 아무렇지 않아 보여도 실은 저마다의 고민과 힘듦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마음을 예리하게 표현해 낸 이 노래처럼 작가님은 누구나 마음속에 '언제든 꺼내 먹을 수 있는 그림 한 점'을 가지고 살면 좋겠다고 말한다.


마음이 고플 때면 비상식량처럼 꺼내 먹을 수 있는, 내 삶을 조금 더 아름답고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영혼의 양식. 그림은 작가님에게 바로 그런 존재였다.


작가님은 책을 통해 그림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일상을 한 편의 예술처럼 살아가는 특별한 경험을 누렸다고 고백한다. 


나는 지금 여기서 행복한지, 반짝이지 않는 자신을 사랑할 용기가 있는지, 조금 느려도 정말 괜찮은 건지, 그래서 대체 '나'다운건 뭔지.


각각의 그림이 건네는 질문과 말들에 귀 기울이며 스스로의 답을 찾아가는 작가님의 여정은 보는 이로 하여금 나도 예전에 그랬었다는 깊은 공감과 함께 저마다의 답을 스스로 찾을 수 있게 도와준다.


총 25개의 꼭지글로 구성된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글은 우리에겐 <해바라기>와 <별이 빛나는 밤에>로 유명한 '빈센트 반 고흐'와 이 책을 읽고 처음 알게 된 화가, '앙리 마티스'에 대한 글이었다.


빈센트 반 고흐의 <자화상>


반 고흐는 지금의 엄청난 유명세에 비해 살아생전 단 1점의 작품밖에 팔지 못했던 가난한 무명의 예술가였다고 한다. 그랬던 그가 포기하지 않고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있었던 데에는 그의 동생, 테오의 지원이 있었다.


테오는 넉넉지 않은 형편이었음에도 매달 형에게 생활비를 보냈고 반 고흐는 테오에게 받은 돈의 대부분을 미술 도구와 모델을 구하는데 썼다고 한다. 


반 고흐는 이런 자신의 처지를 늘 초라하게 여겼고, 동생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가졌지만 동생은 오히려 그런 형을 인정하고 존경했다. 세상에 태어난 자신의 아들의 이름을 형의 이름인 '빈센트'로 지었을 정도로.


아기가 형처럼 늘 끈기와 용기를 가지고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테오의 편지를 본 반고흐는 떨리는 심정으로 애정을 듬뿍 담아 조카에게 줄 그림을 그렸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흰 꽃이 큼지막하게 핀 아몬드 나무를. 


<꽃피는 아몬드 나무>라는 반 고흐의 작품은 그렇게 탄생했다.



아몬드 나무는 겨울의 매서운 바람과 추위를 뚫고 가장 먼저 꽃을 피운다고 알려져 있다. 생명과 새로운 시작의 상징인 셈이다. 고흐는 이처럼 긍정적인 기운을 담아 그림을 그렸다.

(중략) 

세상에 하나뿐인, 값을 매길 수 조차 없는 애틋한 축하 선물이었다.

- 63p,『내 마음을 모르는 나에게 질문하는 미술관, 백예지, 앤의서재(2024)』


솔직히 말해서 나는 반 고흐가 이런 그림도 그렸다는 것을 책을 읽고 나서야 알았다. 그의 동생인 테오와의 일화 역시 책을 읽기 전엔 전혀 몰랐다.


파블로 피카소와 함께 20세기 프랑스 미술계에 큰 획을 그은 화가, '앙리 마티스'도 그렇다. 부끄럽지만 나는 책을 읽기 전까지는 이런 화가가 존재하는지도 몰랐다.


앙리 마티스는 야수파의 창시자로서 강렬한 색채와 대담하고도 활기찬 양식으로 자신만의 화풍을 창조해왔다고 한다. 그런데 말년에 이르러 큰 위기에 봉착한다. 십이지장암으로 큰 수술을 받은 것이다. 그의 나이 73세의 일이었다.


수술을 받은 뒤 앙리 마티스는 서는 것조차 어려워 휠체어에 의존해야 했고 조수의 도움 없이는 혼자 붓을 잡는 것조차 힘들게 되었다고 한다.


예술가로서의 생명이 끝날 위기에 봉착한 그는 그대로 주저앉는 대신 새로운 도약을 택한다. 붓 대신 가위를 든 것이다.


흰 도화지를 형형색색의 구아슈 물감으로 칠하고 잘 말린 뒤 여러 가지 모양으로 조각내고 붙인다. 일명 '색종이 오리기'라고도 불리는 '컷-아웃' 기법을 고안해 낸 것이다.

- 277p,『내 마음을 모르는 나에게 질문하는 미술관, 백예지, 앤의서재(2024)』


앙리 마티스, <이카로스>, 1946


이렇게 제작된 마티스의 작품은 그의 또 하나의 시그니처가 되어 새로운 예술 형식으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추락의 위기에서 자신만의 착지를 이뤄낸 거장의 요령'이라고 표현한 작가님의 말씀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처럼 책은 그림이라곤 어떻게 줄도 모르고 즐길지도 모르는 나에게도 그림을 보는 이유와 재미를 동시에 느끼게 할 정도로 매우 쉽고 친절하게 쓰였다.


어릴 적 아버지가 사준 명화집을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보며 그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키워온 보늬밤, 백예지 작가는 책을 통해 어떻게 하면 그림을 즐길 수 있는지, 그 안에서 건져 올린 질문들은 무엇이었는지, 그에 대한 답을 자신의 삶에 어떻게 접목시킬지에 대한 힌트를 살짝 알려준다.



누구나 마음속에 '언제든 꺼내 먹을 수 있는 그림' 한 점을 가지고 살면 좋겠다는 작가님의 말처럼 이 책을 읽고 난 뒤 내 마음속에도 언제든 꺼내 먹고 싶은 그림이 생겼다.


덤으로 빈센트 반 고흐가 이런 그림도 그렸다고. 절체절명의 순간에 자신만의 특별한 화법을 만들어내 더 크게 도약한 화가를 아느냐며 살짝 아는 척할 수 있게 된 것도 이 책이 가져다준 예상치 못한 선물(?)이다.


이 책 덕분에 그림을 제대로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아직도 그림은 다소 어렵고 멀게만 느껴지지만 그럼에도 계속 보다보면 언젠가 나 역시 작가님처럼 그림이 건네는 말이 조금씩 들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을 가지면서.







- 지극히 주관적인, 내돈내산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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