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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붱 May 27. 2023

선택받지 못했던 그날의 '너'에게

내 맘대로 원서 읽기 - 『あの日、選ばれなかった君へ』


언젠가부터 서점가에는 누군가의 '성공'에 관한 이야기가 넘쳐흐르기 시작한 기분이 든다. 인간의 평균수명이 100세에 가까워지고 있는데, 회사는 물론 국가조차 더 이상 나의 미래를 보장해주지 않을 것 같은 요즘 같은 사회 분위기 속에서 어쩌면 꽤 자연스러운 흐름인 것 같기도.


결국 믿을 건 나 하나라는 마음으로 사람들은 누군가의 '성공'을 동경하고 자신도 그렇게 성공한 인생을 살고 싶다는 욕망을 갖게 된 것이지 않을까 싶다.


성공하고 싶다는 욕망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원하든 원치 않든 미디어를 통해 접하게 되는 누군가의 성공 스토리에 나는 요즘 조금 지쳐있었다.


바로 그때, 이 책을 만났다. 『선택받지 못했던 그날의 너에게(あの日、選ばれなかった君へ)』


일본에서 올해 3월에 출간된 이 책은 일본의 대형 광고회사 '덴쓰(電通)'의 유명 카피라이터인 아베 코타로(阿部広太郎)가 쓴 에세이다.


총 7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어떤 무리에도 끼지 못했던 저자의 10대 시절과 미식축구를 시작하며 스스로를 변화시킨 10대 후반을 거쳐 대학과 취직, 일과 결혼 등 삶에서 마주하게 되었던 총 7가지의 굵직굵직한 사건 앞에서 저자 본인이 겪었던 '선택받지 못했던 순간'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런데 왜 본인 이야기라고 하면서 제목에 '나에게(僕へ)'가 아닌 '너에게(君へ)'라고 되어있는지 궁금하셨다면 제대로 보셨다.


이 책은 저자가 '선택받지 못했던 순간'을 겪었던 과거 속 자신에게 마치 편지를 쓰는 것처럼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아마도 저자가 말하는 '너(君)'에는 계속되는 실패에 좌절하고 어떻게든 실패를 만회 혹은 뛰어넘고자 발버둥 쳤던 과거의 본인뿐만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만의 '실패를 겪고 있을 누군가'까지 가리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 이야기가 인상 깊었지만 그중에서도 '인생은 선택받지 못하는 일의 연속이다'라는 저자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 살다 보면 마치 나를 위해 준비되어 있는 성공과 환희의 순간보다 생각했던 것처럼 잘 안 되는 좌절의 순간을 더 많이 겪게 된다.


그런 좌절의 경험은 본인의 목표치 자체가 너무 높아서일지도 모르고, 그저 '운'이 따라주지 않아서 발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만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누구나 한 번쯤 겪게 되는 '실패의 순간'에 대해 본인의 경험을 빌어 이야기하며 그 당시 스스로가 느꼈던 감정과 어떻게 해서 그 순간을 뛰어넘을 수 있었는지에 대해 매우 상세히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10대 시절, 아무런 무리에도 끼지 못하는 스스로를 바꾸고 싶어서 미식축구를 시작했다. 그렇다 해도 처음부터 큰맘 먹고 스스로 미식축구 동아리실에 찾아간 것은 아니고 야구를 하던 같은 반 친구가 미식축구부에 들어가 보려고 한다는 말에 덩달아 같이 가본 것이 계기였다.


그렇게 얼렁뚱땅 미식축구를 시작한 저자는 10대 후반이 들어서 대학 입시에 몰입하게 된다. 1년 간 열심히 노력했지만 지망하는 대학마다 전부 다 떨어지고 설상가상 주변에서는 수시입학(일본에서는 '추천입학'이라고 한다)이 결정된 친구들까지 하나 둘 속출한다.


이러다 대학 진학 자체를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휩싸였던 저자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불안하다는 건 그만큼 진심을 다하고 있다는 증거이지 않을까.?'


이 '불안'을 '에너지'로 바꿔서 스스로 대학 합격증을 따내겠다고 굳게 마음을 먹은 저자는 그 후에도 역시나 불합격의 나날이 이어진다. 정말 가고 싶었던 대학에서조차 떨어졌지만 딱 한 군데 대학에서 대기번호를 받게 된다. 결국 해당 대학의 추가합격자가 되어 그토록 꿈꿨던 대학 라이프를 시작하게 된 저자.


어렵게 진학한 대학이었던 만큼 누구보다도 높은 성과를 내보이고 싶었던 저자는 대학을 다니면서 학교 근처 학원에 등록하여 회계사 시험까지 같이 준비한다. 하지만 결국 포기하게 되는데 그때 저자를 위해 선뜻 학원비를 내줬던 부모님은 이렇게 말한다. "괜찮아. 나는 우리 아들이 학원 다닐 때보다 미식축구를 할 때가 더 즐거워 보였어."


이러한 경험은 저자로 하여금 본인이 몰입하는 일이 즐겁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계속할 수 없다는 깨달음을 얻게 만들어주었다.


그 이후 대학 내에 있던 미식축구 동아리에 입부한 저자는 약 3년이 지나 동아리의 주장이 되고 싶었지만 결국 되지 못했다.


본인의 10대 시절은 물론 대학 생활 전반에 걸쳐서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부었다고 자신했던 동아리에서조차 결국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 저자는 낙담했다. 하지만 곧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주장이 아니어도 팀 내에서 내가 공헌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팀 내에서 본인만이 할 수 있는 일(혹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남은 대학생활을 끝마치고 취업 전선에 뛰어든 저자는 처음엔 스스로 어떤 일을 해보고 싶은지 몰라 방황한다.


어느 날 이미 취업에 성공한 선배에게 이런 자신의 상태를 털어놓자 선배는 저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지금까지 네가 해온 선택들을 떠올려봐. 선택에야말로 '나다움'이 깃들어 있으니까.'


선배의 그 말을 듣기 전까지 저자는 이력서와 자소서를 쓰면서 스스로의 삶을 분석하는 '자기 분석'에만 매몰되어 있었다. 하지만 당시의 저자에게 필요했던 건 '자기 분석'이 아닌 자신의 선택을 돌아보고 '왜 그 선택을 했는가'를 생각해 보는 '자기 선택'을 살펴보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때 중요한 건 과거의 나를 존중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지금까지 스스로 내려온 자신의 결정(선택)들을 부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그 안에서 미래에 대한 힌트를 찾아낼 것.


저자는 이러한 행동을 '자기 선택감'이라고 부른다. 선택받지 못했던 순간에도 스스로 선택해 온 것들을 일단 믿어주며 스스로의 앞날을 그려보는 과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자신을 아는 데 훌륭한 수단이 되기에 지금껏 내려온 자신의 선택을 꼼꼼히 헤아려나갈 것을 권한다.


생각해 보면 저자의 이러한 행동이 바로 학생과 사회인의 경계를 구분 짓는 하나의 기준선이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학창 시절, 학교에서 보는 시험에는 딱 정해진 '정답'이라는 게 있다. 정답을 맞히면 일정한 점수가 되어 돌아온다. 하지만 사회에 나가면 갑자기 이 '정답'이 사라진다. '너는 어떻게 하고 싶어?' '네 생각을 말해봐'라는 말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어떠한 정해진 답을 찾기만 해도 중간은 가던 학생시절과 더 이상 정답이 없는 사회인으로서 사는 삶은 결코 같을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삶의 변화에 인생의 경험치가 적은 10대들은 좌절하고 방황하게 되기 쉽다.


그런 사람들에게 저자는 말한다. 지금까지 내린 당신의 선택을 긍정하는 일부터 시작해 보자고. 당신이 내린 결정들은 언젠가 꼭 보상받을 수 있다고. 그리고 스스로가 행복하게 느껴지는 선택을 내려가보자고. 그 선택을 당신만의 정답으로 만들어나가면 된다고.


그런 과정을 거쳐 '광고 카피라이터'의 꿈을 꾸게 된 저자는 우여곡절 끝에 일본 최대의 광고회사인 '덴쓰'에 입사하게 된다. 하지만 처음 배속받은 팀은 '인사부'. 광고 카피라이터로서의 꿈은 입사와 동시에 좌절된다.


하지만 여기서 그냥 포기할 저자가 아니다. 덴쓰에는 사내 시험에 통과하면 광고 카피라이터 부서로 이동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저자는 1년 전 시험에 합격해 카피라이터 부서로 이동한 선배에게 상담을 요청하고 시험을 보기 전까지 선배가 내주는 과제를 성실히 수행해 나간다. 결국 사내 시험에 통과하여 그토록 원하던 광고 카피라이터가 된 저자.


드디어 본인이 꿈꿨던 일을 할 수 있다는 감격에 젖은 것도 잠시. 주변 사람들에게 '센스가 없다', '이 일 너한테 안 맞는 것 같다'는 등의 혹평을 듣게 된다.


또다시 맛보게 된 좌절의 순간에도 저자는 역시나 발버둥 친다. 유명 카피라이터가 진행하는 유료 강좌를 듣고, 카피와 관련된 책을 사 읽으며 자신의 부족한 센스를 채우고자 노력한다. 


동시에 카피 라이터 업계에서 최고로 쳐주는 '선전회의상(宣伝会議賞)'에 3년 연속으로 응모를 하는데 한 번 응모할 때 접수하는 작품의 개수는 최소 1,000개를 넘을 정도의 엄청난 노력을 쏟아붓는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3년째 참가 당시에는 총 2,223개의 카피 문구를 응모했고, 그 안에서 44개가 1차를 통과, 2개가 2차 통과, 1개가 최종 우수작에 노미네이트 되었지만 아쉽게 우수작 수상은 하지 못했고 대신 '협찬회사상'에 1개의 카피가 당선된다.


원하던 형태는 아니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 저자에게 있어서 '협찬회사상'도 큰 보상이 되어 주었을 것이다. 포기하지 말고 계속 카피 라이터로서 일해도 된다는 일종의 허락을 받은 느낌이지 않았을까?


여기서 이야기가 끝나면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결국엔 본인의 꿈을 이뤄낸 성공한 사람의 스토리구만'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실제로 이 책은 갖은 실패와 좌절의 순간을 극복해 낸 저자의 성공기라고도 볼 수 있다. 다만 그저 그런 성공 스토리와 이 책의 차별점은 바로 '선택받지 못한 사람을 대하는 저자의 태도'에 있다고 본다.


카피라이터로서 어느 정도 성공 가도를 달리던 저자는 어느 날 문득 회사에서 시키는 일뿐만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 기획하는 일'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하여 '전 세계의 사람들이 각자의 기획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든 '기획으로 밥벌이하며 산다(企画で メシ を食っていく)'란 이름의 강좌를 개설하게 된다.


각 분야의 유명 크리에이터들을 초청하여 반년 간 매달 2회씩 진행되는 강의는 정원이 딱 30명으로 정해져 있었다. 그런데 처음 강의를 시작한 2015년에서부터 매해 강의 응모자가 늘어나더니 2017년에는 200여 명이 훌쩍 넘는 사람들이 강의에 응모하게 된다. 언제나 '선택받지 못했던 입장'에 있던 저자가 갑자기 '선택하는 입장'이 된 것이다.


누구보다도 '선택받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을 잘 알고 있던 저자는 강의를 들을 수 없게 된 탈락자들 170여 명에게 이런 메일을 보낸다.


'비록 강의에 모시진 못하게 되었지만 기획에 대한 저의 생각과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오프라인 모임을 하나 준비했습니다. *월 *일 오후 4시부터 7시 30분까지 이어지며 모임이 끝난 뒤엔 뒤풀이도 있습니다. 모임 참가를 원하시는 분은 장소 대관료로 사용될 개인 음료비 500엔만 지참해 주시면 됩니다. 그럼, 여러분을 만나게 될 그날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책의 말미에는 실제로 이 '탈락자 오프라인 모임'에 참가한 사람의 일기가 실려 있는데 이게 또 엄청난 감동을 준다.


실제로 탈락자 오프라인 모임에 온 사람들은 약 30여 명 정도였고, 모임이 끝나자 '우리도 뭔가를 기획해 보자'며 뭉친 사람이 8명 정도 되었다고 한다.


그 8명은 '기획으로 밥벌이하며 산다(企画で メシ を食っていく)'가 진행되는 반년 동안 자신들도 뭔가를 '기획'하여 진행해 보자고 의기투합하고, 실제로 해낸다. (비록 반년이라는 기한은 다소 넘어섰지만) 그들이 기획한 행사가 잘 진행될 수 있도록 저자 역시 물심양면으로 돕는 것은 물론이다.


이러한 경험은 탈락자들로 하여금 비록 기획과 관련된 일을 지금 하고 있지 않아도, 기획에 대해 아무런 지식도 경험도 없어도 '기획을 하고자 하는 의지'와 '포기하지 않는 실행력'만 있다면 누구든 기획을 할 수 있다는 깨달음과 함께 '선택받지 못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라는 자신감을 갖게 만들었다.


생각해 보면 저자 역시 기획의 '기'자도 모르는 생초보에서부터 시작하여 유명 카피라이터라는 지금의 위치에 오르게 되었다.


그렇기에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어 봤자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는 일견 뻔해 보일 수 있는 저자의 말이 결코 뻔하게 들리지만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책을 마무리하며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선택받지 못했을 땐 세상이 다 끝난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고. 오히려 새로운 세계의 시작이었다고. 


스스로 선택한 것들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앞으로 앞으로 계속 나아가자고. 무언가를 스스로 선택하는 일은 본인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기도 하다고.


원래대로라면 짧게 후기를 남기고 끝냈을 서평을 이토록 길게, 자세히 풀어놓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는 책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이자 저자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가장 전하고 싶었던 이 메시지에 오래도록 시선이 머물렀다.


오랜만에 읽고 나서 가슴이 뜨거워지는 에세이를 만났다. 이 책을 꼭 한국어판으로도 볼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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