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서 온 북 콘서트 초대장:글이 씨가 되는 마법

브런치를 시작하는 첫 글

by 김종명

일을 시작하면서 떠벌리고 다니는 스타일이다.


사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분위기와 맛이 좋았던 음식점, 읽고 나서 좋았던 책 하나 소개하는 것도 조심스러워하던, 정말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런 내가 요즘은 일을 시작하자마자 주위 사람들에게 "나 이거 할 거야!"라고 공언하고 다닌다.

요즘은 '캘리그래피 산문집'을 낼 거라고 떠들고 다니고 있다.

주위 사람들도 조금은 지겨워하는 눈치다. ㅋㅋ(예전 같았으면 'ㅋㅋ' 대신 'ㅠㅠ'를 넣었을 것이다.)


책 제목도 미리 지어놨다.


나는 '우울이'와 친구가 되기로 했다.'


모두 다 '우울이'와 친구로 지내기로 마음먹으면서 생긴 변화였다.


브런치 작가로 등록하면서 '어떤 글을 제일 먼저 올릴까?' 하는 고민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그러다 이번에도 모두에게 공언을 하는 글로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자기 충족적 예언'의 효과를 믿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측이나 기대가 그 믿음에 맞춘 행동을 통해 현실로 실현되는 사회심리학적 현상"


사이비 교주의 말처럼 들리겠지만, 윌리엄 토머스에 의해 정립되어 현재까지도 교육심리학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엄연한 이론이다..


쉽게 말해 '믿는 대로 이루어진다.'라는 것이다.

더 쉽게 말하면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다.


35년 전 교대 사회심리학 수업에서 처음 들었던 말이다.

그때는 '피그말리온 효과'라는 용어로 더 자주 사용되었다.


나는 이 말을 믿는다.

30년 교사 생활을 하면서 그런 경험을 많이 겪어보았기 때문이다.

55년 인생을 살면서 '진짜 말이 씨가 된다더니' 이런 말을 정말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브런치에 올리는 나의 첫 번째 글을 '미래의 작가가 된 내가 미래의 내 독자들에게 전하는 머리말, 혹은 북 콘서트 인사말'로 대신해 보려고 한다.


이제 시작합니다.

삐리리리릭-----(미래로 이동하는 자체 효과음입니다. ㅋㅋ)


제가 처음 글을 쓰는 작가가 되겠다고 공언했던 건 고등학교 2학년 국어시간이었습니다.


당시 '나의 꿈'이란 주제로 글쓰기를 하는 시간이었는데, 꿈이 변해가는 과정을 나열하던 저는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매조지했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나의 꿈은 다시 바뀌었다. 글을 쓰는 작가로!"


내심 쓰고 있던 글이 마음에 들었었나 봅니다.

그러니 저런 낯 뜨거운 문장으로 마무리했겠지요.


어디선가 본, 마지막 반전을 통해 신선함을 느꼈던, 글을 살짝 흉내 낸 것도 같습니다.


아무튼 그 글은 선생님께 '글 좀 쓰네!'라는 칭찬과 함께 A+를 받았고, 저는 제 인생 최초로 나 자신에게 작가가 되겠다는 공언을 한 셈이 돼버렸습니다.


그리고 오늘, 당시 아무 생각 없이 썼던 그 한 줄의 글이 눈앞의 현실이 되어 저를 이 자리에 서게 만들었습니다.


말이 씨가 된다고 하더니, 글도 씨가 되나 봅니다.

그러니 어디 가서 함부로 쓰지 마세요.

보증 문서나 투자 서류에는 더더욱 말이죠! (웃음)


그 후 한동안은 학업을 위한 글쓰기만 이어갔습니다.


잠깐! 자랑하는 걸 좋아하는 저답게 깨알 자랑 하나 하겠습니다.


대학원 수강 중 저의 지도 교수님은 항상 수업 전 학습할 내용을 미리 읽고 A4용지 한 장 짜리 요약서(인트로)를 써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가끔 제가 쓴 인트로를 들어 보이시며, '아주 잘 쓴 인트로'라고 칭찬을 해 주셨고, 다른 원생들에게 직접 읽어주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진짜 글쓰기에 소질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죠!(착각은 자유니까!)


비록 석사 논문은 이런저런 사정으로 동기생들보다 일 년이나 늦게 통과되었지만. (눈물)


아무튼 대학원 졸업 후 제가 글을 쓰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아! 수업실기대회 보고서는 열심히 썼었네요.

그런 것도 글이라고 쳐준다면.


그러다 2007년쯤인가, 학교 교지에 실을 교사 글을 보내달라는 담당 선생님의 연락을 받고, 급히 '잡초를 위한 변명'이라는, 경험담을 기초로 한 짧은 글을 써서 담당 선생님께 보내드렸고, 교지에 아이들의 글과 함께 실렸습니다.


<잡초를 위한 변명>


봄볕 가득한 따사로운 수요일 4교시.

교감 선생님의 강압(?)에 못 이겨 운동장과 화단의 풀을 뽑으러 아이들과 함께 운동장으로 나가 본다.


따사로운 햇빛, 싱그러운 바람 내음, 아이들의 쉼 없는 재잘거림이 만들어내는 작은 평화는 너무도 아름답다.

그리고 그 속에서 막 돋아나는 아기 풀들은 비록 잡초일망정 너무도 아름다워 보인다.


보송보송한 노란 병아리,

이제 막 입학한 어린 1학년처럼,

모든 어린것들이 그러하듯이.


그리고 이런 예쁜 새싹을 뽑아야만 하는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에 잠시 가슴이 아려온다.


어린 잡초들은 말없이 자신의 여린 몸을 내어준다.

비폭력 정신을 말없이 실천하듯.

아니 나를 비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잡초의 끈질김을 무시하지 말라며 'I will be back'을 읊조리고 있을지도.....


문득 내 손에 우악스럽게 뽑혀 가는 잡초들이 매우 억울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조물주의 귀한 선택으로 태어나 같은 화단에서 자라왔건만,

어떤 이는, 꽃이란 예쁜 이름으로,

어떤 이는, 야생화라는 섹시한(?) 이름으로 보호받는데 비해,

왜 자신들만 잡초라는 무식한 이름으로 뽑혀 나가야만 하느냐고 따지면서.


거기다 그 선택의 기준이라는 것이 적자생존의 생태학적 기준이 아닌, 인간이 정한 너무나도 개인적인 기준이 아니냔 말이다.


그러다 문득 이 세상을 창조한 조물주께서 인간을 똑같은 기준으로 솎아낸다면 어떡할까 하는 두려움이 밀려온다.


대한민국 평균에 10센티나 모자란 키,

소개팅 후 한 번도 애프터를 받아 보지 못한 나의 외모,

어릴 적 감전의 짜릿한 충격에 형광등 갈아 끼우는 것마저 마누라에게 맡겼던 나의 운명은 너무도 뻔하지 않겠는가!


검은 사람, 하얀 사람, 노란 사람,

입으로 말하는 사람, 손으로 말하는 사람,

눈으로 책을 읽는 사람, 손으로 책을 읽는 사람,

키가 큰 사람, 키가 작은 사람,


이 모든 이들이 함께 어울려서 살아가는 세상이 아름다운 세상이라고 믿고 있다.

이 모든 이들이 함께 어울려서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작은 힘이나마 보태며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화단에 폭력이 아닌 평화를 선물해 주면 어떨까?

꽃, 야생화, 잡초가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화단을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그리고 그러한 화단을 통해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아이들에게 가르치면 어떨까?


풀 뽑기에 지친 어느 못난 투덜이의 푸념 속에서도 4월의 햇살은 따사롭기만 하다.


그리고 반년쯤 지났었나?

학교에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우연히 교지에서 선생님의 글을 보았는데, 이번 달 저희 교육 관련 잡지에 선생님의 글을 실어도 되겠느냐는 문의 전화였습니다.

물론 원고료도 없고, 많은 독자들이 있는 것도 아닌, 경기도 교육청에서 발행하는 일상적인 교육 관련 잡지였습니다.


하지만 제 인생에서는 제 글이 학교를 벗어나 처음으로 다수의(?) 독자들에게 읽히는 그런 순간이었습니다.

몇 사람이나 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ㅋㅋ


끊어졌던 글쓰기와의 인연을 다시 이어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삶의 가장 깊은 골짜기에서 만난 '불행'이었습니다.


2011년 아내와의 이혼, 그 충격을 이겨내지 못한 딸아이의 반복되는 정신과 입퇴원, 그리고 서로에게 상처만을 남기고 끝나버린 두 번째 사랑까지.

그로 인해 생긴 우울증, 대인공포증으로 무너진 제 마음 추스르기도 힘든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거든요.


그러던 2017년 5월 19일, 저는 다시 글쓰기를 시작하게 됩니다.


우울증 치료를 위해 다니고 있던 일산 백병원 정신과 선생님으로부터 우울증 치료를 위해 감사 일기를 써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은 것이었죠!

인지치료의 일환으로 많이 사용되며, 효과도 좋은 편이라는 말과 함께.


처음에는 말도 안 된다고, 지금 이 상황에 무슨 감사한 일이 있겠냐며 거부했지만 이대로 가다간 큰 사달이 날 것 같은 두려움에 반신반의의 마음으로 그날부터 감사 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냥 그날 있었던 감사한 일과, 그마저도 없는 날이면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라는 식으로 썼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날부터 나에게 좋은 일이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하더라고요.

학교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사회인 야구 모임이 생겼고, 딸아이도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교육청 징계로 김포에서 부천으로 강제 전보를 당하는 안 좋은 일도 있긴 했지만.


그러다 끈기가 부족한 제 성격대로 감사 일기 쓰기는 두 달 만에 끝나버렸고 '글쓰기' 대신 '글씨 쓰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우연히 들른 캘리그래피 전시회에서 예쁜 글씨와 좋은 글귀들을 보면서 배워보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고요.

곧바로 학원에 등록했고 캘리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글씨 쓰는 힘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된다는 원장님의 권유에 따라 필사도 같이 하면서.


특히 묵향이 좋았어요.

학원에 흐르는 잔잔한 음악도 좋았고요.

수업이 끝나면 음악을 들으며 캘리 쓰던 그 시간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렇게 좋은 글귀들을 따라 쓰다 보니 제 마음도 조금씩 글귀처럼 변해가고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캘리에 대한 욕심도 더 생겼고요.

그래서 캘리에 넣을 그림을 배우기 위해 장기동에 있는 미술 학원에 등록했습니다.

미술에는 전혀 소질이 없는 터라 비교적 손쉽게 그릴 수 있는 일러스트와 색연필화를 배웠습니다.

핀터레스트 'MyRoom'님의 그림을 모사하였음을 밝힙니다.

보잘것없는 실력의 작품이지만 학교 복도나 게시판에 전시도 해놓고요.

제 그림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아이들을 가끔씩 보게 되었습니다.

살며시 지어지는 미소를 숨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막연하게나마 캘리그래피 산문집을 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게.


처음에는 정말 막연한 생각이었어요.

캘리, 그림, 글쓰기, 제대로 준비된 게 하나도 없었으니까요.


솔직히 말하면 뭔가 있어 보이려는 허세도 담겨 있었고요.

'제 버킷리스트 중의 하나는 캘리그래피 산문집을 내는 것입니다.'라고 하면 좀 멋있어 보이잖아요!


그렇게 조금씩 에세이 글을 써보기 시작했습니다.

일상생활이나 독서 후기, 영화 감상문 같은 간단한 글들을 써서 메모장에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쓴 글들이 얼마간 모이자, 막연했던 제 꿈을 현실로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제일 먼저 브런치 작가로 등록을 했습니다.


그동안 메모장에 기록해 놨던 글들을 올리고, 그날그날 생각나는 대로 글을 써서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다음은 부족한 글솜씨를 보완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을 믿기에 태수 작가님의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를 비롯해 에세이 10권 정도를 필사했습니다.


또 마음 같아서는 문창과에 편입해서 정식으로 공부하고 싶었지만, 그럴 형편이 못돼 에세이 창작 관련 책을 읽으며 따라 하기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 책은 이지나 작가님의 '에세이 글쓰기 수업'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챕터가 끝날 때마다 '실행하기'라는 과제가 있는 책이었습니다.

열심히 과제를 해서 브런치에 올렸던 기억이 나네요.


그 후로도 여러 권의 에세이 창작 관련 책을 읽으면서 공부했고 나중에는 창작 관련 모임도 나갔고요.


오늘 제 첫 번째 에세이 '나는 우울이와 친구가 되기로 했다.'가 나올 수 있게 해 준 소중한 경험들이었습니다.^^


60이 되어서야 겨우 홀로서기에 성공(?)한 한 외로운 남자의 좌충우돌 성장기를 기록한 책입니다.

캘리 문구와 그림이 텍스트와 함께 한다면 조금 더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드릴 수 있을 것 같아 함께 실었습니다.

홀로 필사면서 느겼던 그 평온함이 독자님들께도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텍스트도 제가 직접 쓴 글씨로 채워 넣었습니다.


부족한 제 책이 저와 같이 우울증 때문에 힘들어하시는 분들께 작게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제가 그랬듯 이 책을 읽고 '그래도 삶은 살아볼 만한 거야!'라고 느끼셨으면 합니다.


15년 전 제 평생의 친구 '우울이'가 저에게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오늘의 저는 이 글을 쓸 수 없었을 겁니다.

여러분과 이렇게 글 친구로나마 만나는 일도 없었겠지요.


그러니 여러분도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들이 또 다른 아름다운 인연을 시작하게 해주는 마중물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한발 한발 앞으로 내디뎌 주시기 바랍니다.


이 책이 여러분의 아름다운 앞길을 밝게 비춰주는 청사호롱이 되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