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을 잃은 배는 그냥 '조난당한 배'일뿐이다.
브런지에 올리는 두 번째 글의 주제는 '내가 글을 쓰는 이유'이다.
물고기를 잡는 배는 '고기잡이 배'로 불리고, 여행의 기쁨을 선사하는 배는 '유람선'이라 불린다.
하지만 방향을 잃은 배는 그냥 '조난당한 배' 일 뿐이다.
이렇듯 분명한 목적의식은 행위 자체에 정체성을 부여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준다.
내가 브런치에 올리는 두 번째 글의 주제를 '내가 글을 쓰는 이유로' 정한 이유이다.
내가 글을 쓰는 가장 큰 이유는 '나 자신의 치유를 위해서'이다.
내 글에는 나의 아픈 과거가 자주 등장한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실제로 제 상황을 잘 아시는 한 지인분께서는,
'뭐 좋은 이야기라고 그렇게 공개적으로 이름까지 다 밝히면서 말하냐'라고 충고해 주신다.
'기쁨은 나누면 질투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약점이 되는 게 세상 이치'라며.
일견 맞는 말이기도 하다.
실제로 얼마전 또 다른 지인에게 속 사정을 털어놓았다가 그게 빌미가 돼 큰 곤욕을 치른 적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글을 쓰며 그 이치를 거슬로 보기로 했다.
이지나 작가도 자신의 책 <에세이 글쓰기 수업>에서 밝혔듯이 나 역시 안 좋은 일을 글로 계속 쓰다 보니 그때는 정말 힘들었던 그 일이 신기하게도 내가 생각한 만큼의 힘들었던 일은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또한 그때는 나쁜 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글을 쓰며 돌이켜보니, 그 일이 또 다른 좋은 인연이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음을 깨달은 적도 많다.
실제로 현재 내 삶을 풍요롭게 채워주고 있는 '솔사모', '슬배모', '1학년 선생님들과의 만남', '배드민턴부 아이들과의 만남'은, 내 삶에서 '불행'이라고 생각했던 그 사건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 사건이 없었다면 내가 부천으로 올 일도 없었을 테니까!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내 마음이 조금씩 치유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드라마 후기를 기록하면서, 내 안에 숨겨져 있던, 외로움에 지쳐 있는 나를 발견하고 위로해 주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지인과 점심 약속을 잡고, 설 명절에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다.
불과 1년 전, 저 멀리 광주에서 김포 근처 강화까지 온 대학 동기들이 잠깐 얼굴 좀 보자라고 했을 때,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다음에'라고 말했던 내가.
또한 지하실까지 곤두박질쳤던 내 자존감이 많이 회복되고 있음을 느낀다.
지금까지 제가 쓴 글을 읽어보신 분들은 느끼셨을 것이다.
자기 자랑이 좀 심하다는 것을.
쿨하게 인정한다.
앞으로는 더할 것이다. ㅋㅋ
다만 내 자존감의 성격은 좀 다르다.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아서 만들어지는 자존감이 아니라, 내 스스로 나를 인정해 줄 때 만들어지는 자존감이다.
앞선 글에서 밝혔듯이 불행의 한가운데 있었을 때 내가 제일 미워했던 사람은 '나' 자신이었다.
아버지로서, 교사로서, 한 남자로서, 모두 실패한, 총체적인 '루저'같았다.
그런데 글을 써가면서 '나 자신이 그렇게 쓸모없는 인간은 아니구나'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학생들에게 좋은 추억을 선물하기 위해 노력한 교사였고, 동료 선생님들께 약간의 선한 영향력을 끼친 교사였으며, 캘리나 필사에도 약간의 재능을 갖춘, 조금은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을 다지는 과정이라 생각하시고 나의 지나친 자랑을 너무 책망하지 말아 주시길 부탁드린다. ^^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내 안에 관종끼가 숨어 있다는 것도 솔직히 인정한다.
두 마음의 비율을 굳이 따지자면 5 대 5?
물론 전자가 5다. ㅋㅋ
근데 같은 5라고 똑같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순서가 중요하다.
참고로 나는 여행지, 식당 등을 정하는 희망 조사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을 항상 1번에 놓아둔다.
내가 글을 쓰는 두 번째 이유는 흔적을 남기고 싶어서다.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하는 마음은 동서고금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다.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에는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글쓰기는 그림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공통분모는 '그리움'이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종이에 긁어 새기면 글이 되고, 그러한 심경을 선과 색으로 화폭에 옮기면 그림이 된다. 그리움을 품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닿을 수 없는 인연을 향한 아쉬움, 하늘로 떠나 보낸 부모와 자식에 대한 애틋한 마음, 결코 돌아갈 수 없는 과거에 대한 향수 같은 것이 마음속에 너무 깊이 박혀 있어서 제거할 방법이 없다. 채 아물지 않은 그리움은 가슴을 헤집고 돌아다니기 마련이다. 그러다 그리움의 활동 반경이 유독 커지는 날이면 우린 한 줌눈물을 닦아내며 일기장 같은 은밀한 공간에 문장을 적거나 책 귀퉁이에 낙서를 끼적거린다. 그렇게라도 그리움을 쏟아내야 하기에. 그래야 견딜 수 있기에.'
사람들은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견디기 위해, 치유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거나 일기, 낙서를 쓰면서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는 것이다.
또한 임수진 작가는 <밤호수의 에세이 클럽>에서 초등학교때 쓴 자신의 일기장을 '내 인생 최초의 에세이집'이라 표현하며, 한국 친정에 있는 자신의 초등학교 일기장이 '무엇이든 버리기 좋아하시는 아빠의 손에 언제고 버려질지 몰라' 걱정이 된다는 속마음을 표현하기도 했다.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우리 딸아이의 보물 1호도 자신의 초등학교 일기장이다.
어떤 날이면(주로 힘든 하루를 보내고 온 날) 자신의 일기장을 꺼내 읽으며 키득키득 웃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딸아이는 학교폭력을 당해 힘든 초등학교 5,6학년 시절을 보냈다.)
참고로 내가 자신의 일기장을 찍어 브런치에 올린 사실을 알게 된다면 나의 목숨은 더이상 나의 것이 아니게 될 것이다. ㅋㅋ
그래서 이 글은 절대 딸아이에게 알려져서는 안된다.
그리고 흔적은 추억이 된다.
글로 쓴 자신의 흔적을 따라 가며 추억에 젖는 것이다.
제일 부러운 부분이다.
나에겐 그런 흔적이 없다.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시절에는 게으른 성격 때문에 매를 맞아 가면서까지 일기 쓰는 것을 거부했고(그때는 일기쓰기가 의무였고 일기를 쓰지 않은 날이면 내 손바닥이나 엉덩이 중 한 곳은 파랗게 파랗게 물이 들었다.), 그나마 조금 남아 있던 일기장도 여러번의 이사 과정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2017년부터 쓴 감사일기와 그후 가끔씩 쓴 잡문만이 내 메모장에 겨우 남겨져 있을 뿐이다.
지금 내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면 10년 후, 20년 후, 아니 죽을 때까지 나는 나의 흔적을 남기지 않았음에 또다시 후회할 것이다.
지금 노트북 앞에 앉아 브런치에 나의 흔적을 남기고 있는 이유이다.
먼 훗날 분위기 좋은 카페에 앉아 맛있는 브런치를 먹으면서 '브런치'에 있는 내 글을 읽으며 미소 짓는 내 모습을 그려 본다.
조금 더 큰 흔적을 남기고 싶은 소망도 있다.
내가 쓴 캘리와 그림, 읽을만한 글, 그리고 내가 직접 쓴 글씨로 출간된 '캘리그래피 산문집'을 갖는 것이다.
그리고 지하철, 버스, 혹은 어떤 곳에서 누군가 내가 쓴 캘리그래피 산문집을 읽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다.
그러다 잠시 책을 덮고 창밖을 보며 자신만의 생각에 잠기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다.
내 글이 타인의 사유가 되는 그 찰나를 지켜보는 것.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참고로 이 대사는 얼마 전 봤던 드라마 '러브미'에 등장했던 '혜온'(다현)의 입에서 비슷하게 나와서 깜짝 놀랐다.
제법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캘리와 그림 실력은 아직 많이 부족하고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글을 한 편도 쓰지 못했다.
그래서 중간에 포기할까 봐 겁이 난다.
브런치에 이 글을 올리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자기 충족적 예언의 효과를 믿는 편이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을 수차례 경험한 사람이다.
말이 씨가 된다면 글도 씨가 될 것이다.
이 글이 나의 첫 번째 캘리그래피 산문집을 이끌어내는, 마중물 역할을 해 줬으면 좋겠다.
이 글이 나의 첫 번째 캘리그래피 산문집을 출간하는, 그 험난한 길을 비춰주는 청사호롱이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
아니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