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이'라는 이름 지어주기

땡이, 볼리, 그리고 우울이

by 김종명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널리 알려진 김춘수 님의 시 '꽃'이다.


연애시절 상대에게 호감을 사기 위해 시의 일부분을 낭송하면서, '나도 너에게 특별한 무언가가 되고 싶다'며 고백했던 경험이 있다면 더욱 익숙한 시일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였으니 말이다.


이 시에 대한 문학적 해석은 여러 가지다.

다만 이 글은 이 시에 대한 문학적 분석이 목적이 아니므로 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리고 나는 그중에서 '명명을 통한 의미 부여에 관한 시'라는 해석에 집중해 이 글을 써보고자 한다.

즉 이름을 부르는 행위를 통해 비로소 대상은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 존재로 인식된다는 '인식론'적 관점 말이다.


글의 서두에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번 글의 제목이 '우울이라는 이름 지어주기'이기 때문이다.


즉 나의 우울증에게 '우울이'라는 이름을 지어 줌으로써 극복의 대상이었던 나의 우울증이, 이제는 어떻게 나의 삶 속에서 친구 같은 존재로 다시 자리매김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예전부터 나의 반려견이나 물건에게 이름 지어 주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나의 첫 번째 반려견이었던 수컷 슈나이져에게는 '땡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동네 애견 미용숍이나 동물 병원에 가게 되면 으레 "특이한 이름이네요"라는 반응을 접하곤 했다.

그럴 때면 한참을 설명해야 했다.

생일이 10월 10일이라서 '장땡이'라고 하려다가 제 성이 김 씨라서 그냥 '땡이'로 부르기로 했다고.

원래는 두 마리를 사서 '땡이'와 '치리', 합쳐서 '땡칠이'라고 부를 계획이었는데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그러질 못하고 혼자 외롭게 크고 있다고.

(땡칠이를 아는 사람은 옛날 사람 ㅋㅋ)

나중엔 그것도 귀찮아져서 그냥 '예' 하고 말았지만.

그리고 10년 후 땡이는 끝내 '치리'를 만나지 못한 채 무지개다리를 건너 우리와도 헤어지고 말았다. ㅠㅠ


혹시 모르겠다.

무지개다리 건너 그곳에서, 암컷 '치리'를 만나 아들딸 낳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을지도.


타고 다니던 차들에게도 이름을 지어 주었다.


1997년 복직 후 구입했던 나의 첫차, 보라색 엑센트의 이름은 '보라돌이'

2002년 이천으로 옮기면서 구입했던 나의 첫 번째 SUV, 은색 산타페의 이름은 은실이, 그리고 애 엄마가 타고 다니던 연두색 마티즈의 이름은 '연실이'

차의 색깔에서 따온 일차원적인 이름이었다.


그다음 타고 다니던 쏘렌토의 이름은 '쏘랭이'

호랑이 코 그릴을 지닌 차의 외관을 따라 쏘렌토와 호랭이를 합쳐서 만든 이름이다.

(참고로 이 이름은 당시 쏘렌토를 타고 다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르던 흔한 이름이었다.)


다음 쏘렌토 하이브리드 차에게는 '쏘둥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반려견 땡이를 떠나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아 구입한 차였기에 막둥이 아들 같은 애틋한 마음을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지금 타고 다니는 나의 첫 전기차, 볼보 C40 리차지에게는 '볼리'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볼보'와 '리차지'의 앞 글자를 따와서 만든 이름이다.


사람들은 이런 나의 모습을 신기해했다.

반려견은 그렇다 쳐도 무슨 차에게까지 이름을 지어주냐고.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나의 발이 되어, 내가 원하는 곳으로 곧바로 갈 수 있게 해주는 나의 차에게 최소한 이름이라도 지어줌으로써 고마움을 표현해 주고 싶었다.


이름을 불러주면 친구가 나를 보호해 주듯 나를 안전하게 지켜줄 것 같았다.

그 덕분인지 나는 현재까지 30년 무사고 기록을 유지하고 있다.


이름 짓기는 나 자신에게까지 확장되었다.

학교에서도 아이들이 나를 쉽게 부를 수 있도록 별칭을 만들었다.

이름하여 '명쌤'

내 이름의 끝 글자와 요즘 아이들이 선생님을 친근하게(?) 부르는 호칭인 '쌤'을 합친 이름이다.

'명품', '명인'처럼 훌륭한 쌤이 되고 싶은 나의 작은 소망이 섞인 이름이다.


발음하기 편해서인지 아이들, 특히 놀이 활동 수업을 맡고 있는 1학년 아이들은 어디서나 나를 보기만 하면 '명쌤'이라고 부르며 나에게 달려온다.

가끔은 급식실에서 '명쌤'이라고 크게 불러 나를 난감하게 만든 적도 여러 번이다.


그리고 별칭 덕분인지 '명쌤'으로 불리기 시작한 이후로 좀 더 좋은 선생님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쓸데없이 사설이 너무 길었다.




최근 나는 나의 우울증에게 '우울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이제는 우울증을 극복의 대상이 아닌 나의 삶과 함께 할 친구로 받아들이기로 했기 때문이다.


우울증을 처음 앓았던 15년 전에는 정말 힘들었다.

극단적인 생각을 했던 적도 있었다.

우울성 불면증을 일으켜 나에게 수면제라는 원치 않는 선물을 안겨주기도 했다.


그래서 최근까지도 이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나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의사 선생님의 권유에 따라 감사일기도 쓰고,

말이 씨가 된다면 글도 씨가 될 거라는 생각으로 캘리그래피 학원을 다니면서 위로와 치유의 글귀를 따라 쓰기도 했다.

또한 상처 입은 동물들이 동굴 속에 들어가 치유의 시간을 갖듯이, 나 또한 나만의 동굴에서 내면의 치유를 위한 시간을 가진 적도 있었다.

타의에 의해 혼자가 된 '괴로움'이 아닌 자발적으로 즐기는 '고독'이라고 자위하면서.


때로는 우울증이라는 이름 뒤에 숨기도 했다.

학교에서 힘든 업무를 맡길라치면 "우울증이 심해 이 업무는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라며 뒷걸음질 쳤고, 친구들의 만남 제안에도 "조금 더 회복되면 그때 보자"라며 거절의 방패로 삼기도 했다.

물론 효과는 백점 만점이었다.


그러다 현재 근무하고 있는 학교로 옮기면서 상황이 달라져 버렸다.

전에 근무했던 학교는 40 학급의 대규모 학교로 지어졌지만, 주변 지역의 재개발 계획이 무산되면서 12 학급의 소규모 학교로 개교하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12 학급 규모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이들과 교사를 위한 휴게 공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었다.

덕분에 나도 학교 맨 구석에 교실 한 칸을 전부 쓸 수 있는 '체육전담실'이라는 나만의 공간을 차지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음악도 듣고, 캘리그래피도 쓰면서 나만의 고독한 시간을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5년 만기를 채운 후, 2023년 현재 근무하고 있는 00초로 옮기게 되었다.

근데 이곳은 30 학급의 비교적 큰 규모의 학교로 유휴교실이 없다.

당연히 나만의 공간은 없다.

과학전담교사로 근무하고 있기에 수업이 끝나면 과학실에 남아 있기도 하지만, 도예와 바둑교실이라는 방과 후 교육 수업 때문에 교실을 비워줘야 할 때가 많다.


자연스레 학년 연구실에서 다른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많아졌다.

특히 작년에는 우리 학교 최고의 긍정 바이러스 선생님, 자칭 타칭 '큰 도라희'와 '작은 도라희'가 포함된 1학년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많아졌다.


내가 주 1회 1학년 놀이 활동 수업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어쩔 수 없이 갔지만 최근에는 자발적으로 찾아간다.

선생님들이 안 계시면 혼자 책을 보거나 음악을 듣기도 한다.


그러면서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내가 고독을 즐기는 게 아니라, 외로움에 힘들어하고 있다는 사실을.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게 아니라,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최근에 '러브 미'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더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내가 눈물을 흘렸던 장면은 죽음, 이별, 질병과 같은 비극적인 장면이 아니었다.

오히려 누군가에게 따뜻하게 위로를 받고, 알콩달콩 사랑을 주고받는 따뜻한 장면이었다.


참고로 최근 JTBC에서 방영됐던 '서울 자가에 사는 대기업 김 부장 이야기'에서 내가 가장 서럽게 운 장면은 명예퇴직 후 집에 돌아온 김 부장을 그의 아내가 말없이 안아주는 장면이었다.


지금은 많이 회복되긴 했지만 여전히 우울증은 내 옆에 자리하고 있다.

좀처럼 떠날 생각을 안 한다.

그래서 나는 내 곁을 떠나지 않는 이 우울증을 나의 친구로 삼기로 했다.


내가 우울하다고 말하면 말할수록 더 우울해지는, 우울한 일이 더 많이 발생하는, '우울의 프레임'에 갇혀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막연한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우울증에게 '우울이'라는 친근한 이름을 붙여줌으로써, 우울증을 더 이상 통제 불가능한 괴물이 아니라,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대상으로 만들어버리는 '명명(Naming)의 심리학'의 힘을 믿었기 때문이다.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를 쓰신 작가 태수님의 말처럼 '세상에는 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 되지 않는 게 더 많다.'


이제 우울증은 더 이상 나에게 극복의 대상이 아니다.

과거의 나와 함께 했고, 현재의 내 곁에 있으며, 미래의 나와 함께할 나의 친구일 뿐이다.


사실 우울증은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손님 같은 존재다.


다만 나에게는 좀 더 자주 찾아올 뿐이다.

한 번 찾아오면 좀 더 오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주기적으로(주로 겨울), 가끔은 느닷없이 찾아오기도 하는 나의 '우울이'에게 이제는 좀 더 잘해주려고 한다.

'우울이'가 찾아오면 다정하게 맞아주려고 한다.

맛있는 것도 사주고 여행도 시켜주면서 달래주려고 한다.


'이 사랑 통역 되나요'의 주인공 차무희의 마음속에 '도라미'라는 또 다른 자아가 있듯이, 나의 마음속에도 나의 또 다른 자아 '우울이'가 있기 때문이다.

내 안에 있는 '우울이' 역시 또 다른 '나'이기 때문이다.




김춘수 님의 '꽃'을 '우울이'로 패러디해 보았다.


우울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나를 괴롭히는 우울증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우울이'가 되었다.


내가 그에게 '우울이'라는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나의 친구가 되어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친구가 되고 싶다.


이제 나의 우울은

나에게로 와서

'우울이'라는 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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