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나날들과 화해해요

스스로 만든 감옥에서 걸어 나오며

by 김종명

세상 모든 문을 걸어 잠그고 스스로를 유폐시켰던 시절이 있었다.

그 캄캄한 독방안에서 나를 밖으로 불러낸 건, 뜻밖에도 소설 속 누군가가 남긴 마지막 편지의 한 구절이었다.


'당신은 그 안에서 나는 이쪽 바깥에서 한 세상을 보냈어요.

힘든 적도 많았지만 우리 이 모든 나날들과 화해해요. 잘 가요. 여보.'


황석영 작가의 '오래된 정원'에 나오는, '한윤희'의 마지막 편지에 나오는 구절이다.

죽음을 앞둔 그녀가 무기수 신분으로 감옥에 있던 첫사랑, '오현우'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에 나오는 구절이다.


황석영 작가의 '오래된 정원'은 1980년대 운동권 활동가였던 '오현우'와, 선배의 부탁으로 잠시 그의 도피 생활을 돕다 사랑에 빠진 미술 교사 '한윤희'의 사랑과 이별을 통해, 대한민국 현대사의 비극 속에서 희생되었던 개인들의 아픔을 다룬 소설이다.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 아래서, 한 개인의 삶과 사랑이 어떻게 파괴되고, 그럼에도 어떻게 지속되는지를 보여주는 소설이다.

이 책을 아직 읽어보지 않으신 분들을 위해 대강의 줄거리를 소개해드리면 이렇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이 탄압받던 시절, 지명수배를 당해 쫓기고 있던 현우는 선배의 소개로 시골 고등학교에서 미술교사로 근무하고 있던 윤희의 집에서 잠시 피신 생활을 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사랑이 싹튼 두 남녀는 연인으로 발전하지만 민주화운동에 대한 책임을 포기할 수 없었던 현우는 다시 현장으로 되돌아가고 결국 체포되어 무기징역형을 받게 된다.

그리고 홀로 남겨진 윤희는 그곳에서, 짧았지만 강렬했던 두 사람의 사랑의 결과물이었던 아이를 낳게 되지만, 그 사실을 오현우에게 알리지 않았고, 또한 자신이 그 아이를 정상적으로 키울 수 없음을 알고 여동생에게 아이를 맡긴 후 베를린으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

귀국 후 교수 생활을 하던 윤희는 자궁암으로 세상과 이별하게 되고, 반대로 현우는 감형을 통한 만기출소를 통해 세상으로 다시 나오게 된다.
출소 후 윤희의 흔적을 뒤따라가던 현우는 윤희 여동생의 양자로 입양된, 19년 가까운 시절 동안 미처 알지 못했던, 자신의 아이가 있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현우는 끝내 자신이 아버지임을 밝히지 못하고, 아이 역시 현우가 자신의 아버지임을 알고 있음을 내색하지 않은 채 소설은 끝을 맺는다.




2017년 6월 25일에 처음 이 책을 읽고 느낌을 메모장과 블로그에 올린 기억이 있다.

다시 읽어보니 소설의 줄거리와 함께 '이제는 힘들었던 그날 이후의 시간들과 화해하고 싶다. 나를 서운케 했던 주위 사람들과도 마음속으로나마 화해하고 싶다. 이제 그녀를 용서해야겠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인생 책이 뭐냐는 질문에 이 책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로 글을 마무리한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올해 1월 부모님 댁에 내려갈 때 가져가서 다시 한번 읽었다.

앞서 밝혔듯이 내 인생 책이기 때문이다.


이 문장으로 글을 시작한 건 이 문장이 나를 살린 문장이기 때문이다.

이 문장 덕분에 내가 세상으로 다시 나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문장이 내 마음속에 이토록 깊게 새겨진 건 이 책을 읽을 당시의 내 개인적인 상황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두 번째 사랑이 비극으로 끝났을 때 나의 몸과 마음은 만신창이 그 자체였다.


'오현우'의 바깥세상에는 그리움의 대상인 '한윤희'라도 있었지만 내가 속한 세상에는 폭풍만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이혼 후 곧바로 시작된 그녀와의 만남 때문에 받았던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과 오해.

그리고 그 만남이 비극적인 결말로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쏟아졌던 비난의 화살들.

그리고 비극적인 결말이 초래한 교육청의 징계 및 민형사상의 사법 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내 편이 되어줄 거라 기대했던 사람들의 무관심 혹은 외면. 속에서 나는 삶의 방향을 잃어버렸고 '내가 죽어야만 사람들이 나의 결백을 믿어줄까?'라는 극단적인 생각에 빠져들어가기 시작했다.


또한 '오현우'는 타의에 의한 물리적인 감옥에 갇혀 있었지만, 나는 스스로 걸어 잠근 '방어막'이라는 심리적인 감옥 속에 나를 유폐시킨 상태였다.


당시 나는 홀로 세상과 싸우고 있는 느낌이었다.

세상 사람 모두가 나의 적이 되어 나를 공격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무서웠고 두려웠으며 분노에 가득 찬 세월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세상을 향한 모든 문을 걸어 잠근 채 두 겹, 세 겹의 방어막을 치며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만났던 문장이었다.

폭풍의 한가운데에 홀로 외로이 서 있는 나를 따뜻하게 위로해 준 문장이었다.

돈키호테처럼 혼자만의 싸움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나를 되돌아보게 했던 문장이었다.

세상과 싸웠던, 아니 싸운다고 생각했던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닫게 해 준 문장이었다.


내가 만든 감옥에 갇혀 있던 나를 해방시켜 준 문장이었다.

너도 이제는 세상과 화해하라고 윤희가 나를 달래주는 것 같았다.

나의 고통스러운 지난 나날들과도 화해하라고 윤희가 나를 위로해 주는 것만 같았다.


그 문장을 읽고 한참을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 울음과 함께 내 안에 쳐 두었던 두꺼운 결계가 천천히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세상을 향해 세웠던, 또한 나 자신을 향하고 있던, 날 선 창을 내려놓게 한 것은 '이제 그만 화해하자'는 윤희의 다정한 권유였다.



이 문장을 만난 이후 내 마음속에도 따뜻한 볕이 드는 정원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후 나는 그 정원에 '캘리그래피'라는 꽃과 '필사'라는 나무를 하나둘 심기 시작했으며 '운동'이라는 거름을 주며 돌보기 시작했다.

처음 내 마음에 손바닥만큼 작게 자리했던 그 정원은 이제는 숫자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의 수많은 꽃들과 식물들로 가득 차, 향긋한 향기와 피톤치드를 내뿜으며 나의 마음을 치유해주고 있다.


윤희가 현우에게 그랬듯, 나도 이제 나의 지나간 나날들에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잘 가요, 나의 아팠던 나날들."

이전 03화'우울이'라는 이름 지어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