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울푸드, 팥죽

팥죽으로 위로 받은 내 영혼

by 김종명

오늘 김포로 돌아왔다.


1월 1일 내려갔으니까 12일 정도 있었던 셈이다.

보통 일주일 정도 머물곤 했었는데, 이번에는 평소보다 조금 더 긴 머무름이 필요했다.

부모님 모시고 병원에도 다녀와야 했고, 아버지 보험 신청 및 요양 보호 항목 변경 신청을 해 드려야 했기 때문이다.

홀로 아버지를 돌보시느라 힘드셨을 어머니에게도 잠깐이나마 휴식을 취하실 수 있도록 해드려야 했다.

경기도에서 교사로 근무하고 있는 처지라 방학을 이용해 몰아치기 효도를 할 수밖에 없는 나의 상황이 안타깝기도 하고 다행스럽기도 하다.




그리고 어제 저녁 메뉴는 예상대로 팥죽(정확히는 팥칼국수, 전라도에서는 팥칼국수를 팥죽이라고 한다.) 이었다.

이제는 거의 루틴처럼, 어머니는 내가 올라가기 전날 저녁을, 팥죽으로 준비하신다.

팥죽이 나의 '소울푸드'라는 걸 아시기 때문이다.



12년 전, 이혼 수속을 마치고 돌아온 집에는 어머니가 연락도 없이 와 계셨다.

그리고 말없이 팥죽을 준비하시더니,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나는 팥죽 한 그릇을 내 앞에 내놓으셨다.

멜젓(멸치 젓갈) 향이 살아있는 고소한 배추 겉절이와 함께.

달디단 팥죽을, 짜디짠 눈물을 쏟아가면서 먹었던 기억이 선하다.


참고로, 나는 팥죽 한 그릇에, 세 숟가락 정도의 설탕을 넣어 아주 달게 먹는다. 국물이 거의 시럽 수준이다. 내 팥죽을 맛본 이들은 거의 몸서리를 쳐대곤 한다.


어려서부터 나는 팥죽을 무척 좋아했다.

전라도 지역의 향토 음식인 팥죽은, 우리 어머니가 가장 잘하는 음식이기도 하다.


어머니의 팥죽을 맛보신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씀하신다.

"양동 시장에서 팥죽 장사하면 떼돈 벌겠다"

실제로 어머니는 이 제안을 심각하게 고민하시기도 하셨다.

나에게 대물림된, 우유부단한 성격 때문에 결국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셨지만.


비결은 팥물을 만드는 방법, 아니 어머니의 정성에 있다.


일단 팥은 무조건 국산을 써야만 한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셨을 적에도 팥은 항상 밭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다른 집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결정적인 비법은 따로 있다.

팥을 삶아 곧바로 믹서에 갈아 팥물을 준비하는 다른 집들과 달리, 우리 어머니는 팥을 삶은 다음 그걸 체에 밭쳐 걸러냄으로써, 까칠한 껍질이 없는 부드러운 팥물을 준비하신다.

그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으신 것은 자식들의 삶도 당신이 만드신 팥물처럼 그렇게 부드럽게 흘러가길 바라는 어머니의 마음이셨을 것이다.


그 팥물에, 간이 적당히 된 칼국수 가락을 넣어, 한소끔 끓이면, 향긋하고 부드러운 맛의 팥죽이 완성된다.


동짓날에 주로 먹는 수도권 지역과 달리, 우리 집에서는 한여름에 주로 먹었다.

아버지는 팽상(표준어로는 평상) 주위에 모깃불을 피우시고, 어머니는 한여름의 열기가 채 식지 않은 이른 저녁에 뜨거운 솥단지 앞에 쭈그리고 앉아 한솥 가득히 팥죽을 끓이셨다.

그리고 우리 머리통만 한 대접에 가득 담아 내오셨다.

그러면 우리 식구들은 취향에 따라, 누구는 설탕을 잔뜩 넣고, 누구는 소금을 조금 넣고, 또 누구는 팥 본연의 맛을 느끼고자 그대로 먹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손이 크신 어머니 덕분에 미처 다 먹지 못하고 남겨져, 푸딩처럼 변해버린, 팥죽은 주로 아버지와 내 차지였다.

그 정도로 나는 팥죽을 좋아했다.


그걸 어머니는 기억하고 계셨던 거다.

그래서 아들이 이혼 수속을 마치고 돌아온 날, 따뜻하고 달달한 팥죽 한 그릇으로, 아들을 위로해 주고 싶으셨던 거다.



어젯밤 저녁도 마찬가지였다.

열흘 넘게, 이리저리 분주하게 부모님 뒷바라지를 하는 아들이 얼마나 안쓰러워 보였을까?

부모 집에 내려와서도, 음식 준비와 설거지를 도맡아 하는 아들이 얼마나 안쓰러워 보였을까?


마지막 한 끼라도,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맛보게 하고 싶으셨던 거다.

실컷 먹을 수 있도록, 여섯 식구가 살았을 때처럼, 한 솥 가득히 끓여 놓으셨던 거다.

덕분에(?) 오늘 아침에도 푸딩처럼 변한 팥죽을, 숟가락으로 푹푹 떠먹고 왔다.


이런 게 부모 마음일 거다.


정작 당신은 당뇨 때문에 밀가루 음식을 잘 드시지도 못하신다.

몇 년 전 받은, 허리와 다리 수술 때문에 거동이 불편하셔서 한번 일어나실 때마다 '아이고'를 연신 내뱉으신다.

그런 상황을 잘 알기에 나는 어머니가 팥죽을 준비하실라치면 극구 말리곤 한다.

정 먹고 싶을 때면 배달시켜 먹자고 타협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팥죽만큼은 어머니의 고집을 꺾지 못한다.

그렇게 어젯밤 식탁에도 팥죽은 내 앞에 놓이게 된 것이다.


팥죽 한 그릇, 아니 두 그릇 덕분에 내 영혼은 충만해졌다.

어머니의 팥죽 덕분에 내 영혼은 따뜻하게 위로받았다.


<이 글은 지난 2026년 1월 13일에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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