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드라마 '러브 미'를 보고
*이 글에는 드라마 내용에 관한 스포가 포함되어 있음을 미리 밝힙니다. 또한 사진 이미지는 JTBC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한 것을 사용했음을 미리 밝힙니다.
개인적으로 JTBC 드라마를 좋아하는 편이다.
내 인생 드라마는, 거의 대부분 JTBC에서 방영했던 드라마였다.
사실, 드라마는 내가 그리 좋아하는 장르는 아니었다.
10년 전까지 드라마는 거의 보지 않았었다.
왠지 통속적이고 저급한 장르의 영상물이라는, 선입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자극적인 소재와 막장 전개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주말연속극이나 아침 드라마가 주를 이룬 게,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모래시계(너무 옛날인가?)나 미생과 같은 좋은 드라마도 있긴 했지만.
이런 나의 선입견을 처음으로 깨트려준 드라마는 '눈이 부시게'였다.
이혼과 두 번째 사랑의 실패 후, 우울증으로 무기력한 삶을 살아가고 있던 나에게, 김혜자 선생님은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라며 위로해 주셨다.
'멜로가 체질'은 나의 삶에서 한동안 사라졌던, 웃음을 되찾게 해준 드라마였다.
정말 실컷 웃었다.
'이태원클라스'는 내용도 좋았지만, OST와 대사가 특히 좋았다.
김필의 '그때 그 아인'을 한 시간 반복 듣기, 그리고 그걸 다시 몇 차례 반복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한동안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오늘은 술이 달다. 오늘 하루가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떨었던 기억도 떠오른다.
'서른 아홉'과 '나의 해방일지'는 무기력한 나의 삶에 대한 해방구를 찾아가게 만든 드라마였다.
'나의 해방일지'의 영향 때문인지, 지금도 나는 '존경한다'는 표현 대신, '추앙한다'는 표현을 더 자주 사용한다.
'서울 자가에 사는 대기업 김부장 이야기'는 가정과 회사 모두에서 처절하게 무너진 김부장이, 찌질하기 짝이 없는 자신의 내면과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통해, '김포 자가에 사는 초등학교 김부장'(김00 체육부장)에게 '너도 다시 일어설 수 있어. 그러기 위해서는 너의 본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해'라며 격려해 주었던 드라마였다.
어젯밤, '러브 미' 11화와 최종화를 본방 사수했다.
드라마를 본방 사수한 게 언제가 마지막이었더라?
기억도 나지 않는다.
2주일 전 넷플릭스에 뜨길래, 당연히 사전제작 후 방영되는 드라마인 줄 알았다.
아뿔싸!
2편을 보고 나서야, JTBC에서 한창 상영 중인 드라마라는 걸 알게 되었다.
기다리는 걸 못 참는 성격이라, 사전제작이나 종영된 드라마만 몰아서 본다.
그래서 끝난 뒤 다시 이어서 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1,2편의 여운이 너무 강하게 남아, 하루에 두 편씩 아껴보며 보고 있다가, 어제서야 마지막 시청을 끝냈다.
엄마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남겨진 세 사람에게 찾아온 새로운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외로워서 사랑하지만, 또 사랑해서 외로워하는, 세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억지스러운 설정도 다소 섞여 있다.
하룻밤을 같이 보낸 남자가 알고 보니, 애가 있는 이혼남이었다.
심지어 그 아이는 남주의 친아들도 아니었다.
아버지에게 찾아온 두 번째 사랑은, 40대 중반의 나이에, 조로성 알츠하이머 치매 진단을 받는다.
세상의 모든 불행은 이 세 사람에게만 예고 없는 비처럼 쏟아진다.
(그 때문인지 아들은 나중에 기상청 예보관이 되기도 한다.)
연인 사이에서 발생 가능한 모든 갈등은, 이들에게 종합선물세트처럼 주어진다.
실제로 방영 후기에는, '주인공들 그만 좀 괴롭혀라'와 같은, 안타까움에 바탕을 둔 악플도 많이 보였다.
보는 내내 고구마 백 개는 먹은 듯한, 답답한 마음이 들게 하는 드라마였다.
그래서인지 평균 시청률 1.7%에, 넷플릭스 인기 드라마 10위 안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드라마에 끌렸던, 최종화를 본방 사수하게까지 했던 이유는,
첫째, '러브 미'라는 제목 때문이었다.
요즘 내가 가장 천착하고 있는 주제, '나를 사랑해 주자'와 관련된 드라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랑은 원래 어려운 주제이다.
그래서 세상에 나오는 영화, 드라마, 노래의 대부분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사랑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는지 정답을 찾기 위해, 또 사랑 때문에 받은 상처를 위로받고 싶어서.
그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건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다.
왜 그럴까?
자기 자신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싫은, 드러내기 꺼려지는, 자신만의 약점, 찌질함을, 자기 자신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주인공들도 마찬가지였다.
진호는 자기가 두려움 덩어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장애를 입은 아내를 사랑했지만, 한편으론 버거워했던 진호는, 자신에게 찾아온 두 번째 사랑이 알츠하이머 치매 진단을 받자 두려워한다.
내가 이 사랑을 또다시 감당할 수 있을까?
준경은 자기가 죄책감 덩어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자기 때문에 엄마가 장애인이 됐다는 자책감에서 헤어 나오질 못한다.
그래서 더 이상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도, 상처받고 싶지도 않겠다는 마음으로, 자신만의 결계를 쳐놓고, 아무도 그곳에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준서 역시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열등감 덩어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스스로 아무것도 해내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에 매번 실망한다.
그러고는 어렸을 적, 아들 바보 엄마 때문에 자기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다며 엄마에게 탓을 돌린다.
잘 나가는 여자친구의 성공도 진심으로 축하해 주지 못한다.
나도 그랬었다.
두 번의 사랑이 비극으로 끝났을 때, 내가 제일 힘들었던 건, 두 사람에 대한 미움, 주변 사람들의 배신이 아니었다.
나 자신이 너무 싫고 미웠다.
정신과 치료를 받는 딸아이를 보면서, 자식 가슴에 커다란 생채기를 낸, 못 난 아빠라고 자책했다.
두 여자에게 연이어 배신당하면서, 한 남자로서의 자존감이 무너졌다.
담임을 맡지 못할 정도로 무기력한 나날들을 보내다, 결국 승진을 포기하면서, '교사로서도 실패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실기대회에서, 항상 나보다 더 높은 등급을 받는 애 엄마의 성공을 진정으로 축하해 주지 못했던, 찌질남이었다는 사실도 인정해야만 했다.
경험해 보신적 있으신가?
내 스스로 나를 미워한다는게 얼마나 비참한 일인지!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또다시 상처받을까 봐, 좋은 여자 있다며 만나보라는 가족 및 친구, 동료들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누구도 침범하지 못하게 나만의 성을 쌓고, 프사, 인스타도 하지 않았으며, 대학 동창 모임 초대에도 응하지 않는 소위 '자따'였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김부장 이야기'에서, 김낙수는 마지막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선택을 밀고 나가며 행복을 되찾는다.
드라마 주인공들도 마찬가지였다.
사랑의 기쁨과 아픔을 경험하면서, 자신의 진짜 모습을 발견하고, 조금씩,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며, 자기 자신과 상대방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된다.
나도 그랬다.
나는 닥치는 대로 걸었다.
일주일간 지리산 둘레길도 걷고, 가까이에 있는 강화 나들이길도 걷고, 그마저 안되면 집 앞에 있는 호수 공원과 가마지천을 몇 시간이고 걸었다.
걸으면서 나와의 대화를 시작했다.
내가 무얼 두려워하고 있는지, 내 죄책감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나의 찌질함은 어디까지인지,
또 억지로 거울 앞에서 나를 바라보았다.
삶에 지친, 우울함이 가득한 얼굴을 한, 낯선 아저씨가 보였다.
처음에는 어색했으나 나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많이 지쳐 보이네"
"오늘은 힘든 일이 많았구나!"
"맛있는 거 먹을래?"
조금씩 나를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또 다른 아픔이 찾아올까 하는 두려움에, 좋아하는 마음을 감추고 억누르고 있는 나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내가 쳐 두었던 결계가 사라져, 또다시 고통에 몸부림칠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나를 인정하고 조금씩 결계를 풀게 되었다.
대인공포증 때문에, 사람들 앞에 설 때마다 목소리가 떨려 나오면 어쩌지, 걱정하고 있는 나를 인정하고, 교실에 안정제를 비치해 두었다.
두드리면 더 단단해지는 강철 같은 남자가 아니라, 안타깝게도 두드리면 곧바로 깨져버리는 크리스탈 같은 남자가, 나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나를 더 조심스럽게 대해 주었다.
두 번째 이유는, 요즈음 내가 헷갈려 하는 주제 '외로움과 고독의 차이'때문이다.
8화, 준경이 한강대교를 건너는 장면에서, 라디오 진행자의 멘트가 나온다.
'고독과 외로움의 차이를 아시나요?
고독은 자발적으로 혼자가 된 즐거움이고 외로움은 타의적으로 혼자가 된 괴로움을 말한다네요.
지금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지금까지, 나는 고독을 즐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최근에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를 울리는 장면들이 그걸 증명해 주었다.
준경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가족들이 슬퍼하는 장면에서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진호가 알츠하이머에 걸린 자영을 위로하는 장면도 전혀 슬프지 않았다.
자기 때문에 진호가 힘들어할까 봐 떠나는 자영의 모습도 안타깝기는 했지만, 눈물은 나지 않았다.
내가 눈물을 흘렸던 장면은 따로 있었다.
10화에서 준경이가 고민하고 있을 때, 엄마가 '준경아! 겁 내지 마. 넌 엄마보다 훨씬 더 강한 사람이야'라고 위로해 주는 장면에서 눈가가 붉어졌다.
세 커플의 알콩달콩 사랑을 주고받는 장면을 볼 때면,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도현에게 재결합 의사를 밝혔으나, 거절당하고 슬퍼하는 윤주의 모습을 보고 눈물이 났다.
참고로 '김부장 이야기'에서, 내가 가장 서럽게 운 장면은, 명예퇴직 후 집에 돌아온 김부장을 그의 아내가 말없이 안아주는 장면이었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내가 고독을 즐기고 있는 게 아니라, 외로움에 괴로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 외로워서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어 한다는 것을.
누군가를 사랑하고, 또 사랑받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수업이 끝나면, 혼자 있을 나만의 공간을 찾던 내가, 왜 요즘은 1학년 연구실을 스스로 찾아가는지를.
이제는 나를 사랑해 주려 한다.
주변에서 좋은 여자 소개해 주겠다고 하면 한번 만나보려 한다.
아무것도 없던 프사도 사진으로 바꿨다.
대학 동창 모임에도 나가보려 한다.
설 명절에 만나기로 약속도 잡았다.
세상으로 한발짝 더 나가보려 한다.
이제 기다리고 기다리던 '경도를 기다리며'를 볼 차례다.
나는 드라마 두 편을 동시에 보지 못한다.
감정선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박서준과 원지안 배우가 나오는 드라마라 기대가 크다.
조금 우울한 드라마를 봤으니, 이번에는 달달한 로코 차례다.
음식도 '단짠단짠'이 진리 아닌가!
드라마 중간에 나왔던, '밤 산책 '라디오 DJ의 멘트를 소개하며 이 글을 마친다.
기쁨도 슬픔도
늘 느닷없이 다가오는 것 같아요
특히 슬픔은 더욱 그렇게 느껴지죠
아프리카 어느 부족은
비를 신이 주는 슬픔의 신호라고 생각해
비가 내리면 그 비가 멈출 때까지
마을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고 해요
해가 비치고 땅이 마를 때까지
지금 서울에는 예보 없던 비가 내리고 있네요
신이 우리에게 주는
슬픔의 신호일까요?
여러분 우산은 준비하셨나요?
참! 하나 더.....
(나이를 먹으면 이렇게 말이 많아진다 ㅠㅠ)
평소 내가 하고 다니던 말이, 혜온(다현)에게서 나와서 깜짝 놀랐다.
"내 꿈은 전철을 타고 가다 누군가 내가 쓴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는 거야!"
"그 책이 설사 베스트셀러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나도 주위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하고 다녔었다.
"내 버킷리스트 중의 하나는 캘리그라피 산문집을 쓰는 것입니다."
"어느 곳에서 우연히 내가 쓴 책을 누군가가 읽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겁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책을 덮고 조용히 자신만의 생각에 잠기는 모습을 지켜보는 겁니다."
글 쓰는 사람들의 꿈은 다들 비슷한가 보다. &*
<이 글은 2026년 1월 24일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