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과 함께 한 강진 나들이
지난 금요일, 나주 부모님 댁에 내려갔다 오늘 김포로 올라왔습니다.
다가오는 수요일은 어머니의 79번째 생신, 금요일은 어버이날이지만, 토요일에 제가 지도하는 배드민턴부 아이들의 스포츠클럽 대회가 예정되어 있어 가족회의 끝에 일정을 미리 앞당긴 것이었습니다.
지난 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사흘간 운동회를 치렀고, 거기에 목요일 저녁엔 슬배모 뒤풀이까지 있었던 터라 몸은 천근만근 무거웠지만, 아버지와 함께하는 마지막 어머니 생신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기꺼이 길을 나섰습니다.
KTX를 탈까 고민도 했지만, 아버지의 치매에 작은 도움이라도 될까 하여 고항 나들이를 계획하고 있었기에 볼리(제 차 이름)를 끌고 내려왔습니다.
금요일 아침, 4남매가 모두 모여 요양원에 계신 아버지를 모시고 고향 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저희 4남매에 7명의 손주들까지 모두 참석한, 떠들썩한 그향 나들이였지만, 마음 한구석엔 형언할 수 없는 애잔함이 밀려왔습니다.
휠체어를 타신 아버지와 함께하는 첫 번째 고향 나들이였기 때문입니다.
지난 설 나들이 때까지만 해도 가까운 거리는 아들들의 부축만으로도 다니실 수 있었는데 말입니다.
지난 설 명절에 미처 다녀오지 못한 선산에 들러 성묘를 드렸습니다.
계절은 이미 여름 초입을 지났지만, 응달진 곳엔 아직 고사리순이 자라고 있더군요
옛 추억을 떠올리며 한참 고사리순 채취에 열중했더니 제법 많은 수확물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좋아하는 고사리 나물을 무쳐 먹을 수 있겠다며 어머님이 좋아라 하시네요.
선산에 위치한 옥련사에도 잠시 들렀습니다.
이곳은 제 어린 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깃든 곳이랍니다.
국민학교 4학년 겨울방학 때였습니다.
당시 국문학과 학생이었던 주지 스님의 조카분께서 명심보감 특강을 열어주셨고, 저는 동네 형들과 친구, 동생들과 함께 특강에 참여했답니다.
40년이 훌쩍 지났지만 몇몇 구절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답니다.^^
동료장학 수업 반성회에서 제 수업의 개선할 점을 요청드릴 때 써먹는,
'子曰, 道我善者 是我賊이요, 道我惡者 是我師'니라'
(나의 착한 점, 장점을 말해 주는 사람은 나의 적이요. 나의 잘못을 말해 주는 사람은 나의 스승이다.)
또한 수많은 구절 중에서도 지금까지 제 마음속 깊이 남아 삶의 이정표가 되어주는 구절이 하나 있답니다.
'子曰, 見善如不及 하고, 見不善如探湯 하라'
(착한 일을 보거든 그것에 미치지 못할까 두려워하고, 착하지 않은 일을 보거든 끓는 물에 손을 넣은 것처럼 빨리 피하라.)
살면서 유혹에 흔들린 순간도 많았지만, 그럴 때마다 이 구절을 거울삼아 제 마음을 고쳐 잡곤 했답니다.
당시엔 어린 마음에 미처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대학생 누나의 헌신이 참 크게 다가옵니다.
아무 대가 없이 행해진 그 헌신 덕분에 저희 동네 아이들은 중학교 한문 시간에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고, 그보다 훨씬 중요한 인성 교육을 일찍이 받을 수 있었으니까요.
저도 그분의 헌신을 본받아 주위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시금 다짐해 봅니다.
고향 집 근처 강진만 생태공원도 다녀왔습니다.
이곳 역시 제 추억이 한가득 담긴 곳이랍니다.
지금은 간척 사업으로 갯벌이 되었지만, 당시엔 탐진강 하류와 바닷물이 만나는 기수(汽水) 지역이었습니다.
섬진강 재첩 못지않은, 맛 좋고 씨알 굵은 '갱조개(재첩의 강진 사투리)'가 많이 났던 곳이었지요.
쉬는 날이면 친구들과 함께 갱조개를 주워 근처 식당에 팔아 모은 돈으로 야구 글러브와 배트를 사곤 했답니다.
고향 나들이를 마치고 나주로 돌아와 조금 이른 어머니의 생신 파티를 열었습니다.
식사 후 다른 삼 남매는 처갓집을 가거나 여행을 떠났고, 저만 홀로 남아 부모님과 이틀을 더 보냈습니다.
'못생긴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겠지요.
둘째 아들이 혼자가 된 덕분에(?) 어머니는 주말을 외롭지 않게 보내셨고, 아버지께서도 이틀간 집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내실 수 있었으니까요. ^^
부모님댁에 조금 더 오래 머물고 싶었지만, 저희 학교는 월요일이 재량 휴업일로 지정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오늘 올라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휠체어에 의지한 아버지의 뒷모습이 조금 낯설었지만, 그래도 가족 모두 여행할 수 있음에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선산을 지키는 못생긴 소나무처럼, 조금은 부족한 모습일지라도 부모님 곁을 오래도록 지켜드리고 싶습니다.
부디 이번 고향 나들이가 부모님과 함께하는 마지막 나들이가 아니길 바래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