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윈도 아래 숨겨진 커터 칼의 비명을 듣다.

이제는 우리가 그들의 목소리가 되어주어야 할 때...

by 김종명

요 근래 제가 나누었던 이야기들은 대게 '학교'라는 울타리 안의 이야기였습니다.


학교 안에서의 올바른 선후배 문화는 어떻게 정착되어야 하는지,


운동회 학부모 참관 허용에 관한 문제는 어떤 절차를 걸쳐 풀어가야 하는지,


또 이상적인 학부모 공개 수업 형태는 어떠해야 하는지.


이 질문들에 대한 제 나름대로의 답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기록해 왔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그 울타리를 잠시 넘어가 보려 합니다.


며칠 전, 작년 동학년 선생님이셨던, 이00선생님과 나누었던 대화가 며칠째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목을 보고 짐작하셨겠지만, 이 이야기 역시 결코 가벼운 주제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어쩌면 지금까지 우리가 다루어온 주제들보다 훨씬 더 무겁고 가슴 아픈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지금 우리 곁에서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를 '생명의 존엄을 짓밟는 잔혹한 현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확인하게 되는 인간의 탐욕'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태어나고 자란 전라남도 강진의 어느 시골 마을.


그 시절 여느 시골 마을의 집들이 대개 그러했듯, 저희 집 마당에도 '바둑이', '누렁이', '흰둥이' 등의 흔한 이름을 가진 여러 마리의 개들이 번갈아 가며 집을 지켰고, 그들은 어린 시절 저의 둘도 없는 친구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소위 '똥개'라 불리며 집을 지키던 그들은 '가족'인 동시에 '가축'이기도 했습니다.




국민학교 1학년, 그 즈음에 있었던 일인 것 같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저는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참혹한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습니다.


다리 난간에 묶여 버둥거리는 개를, 마을 어른들이 몽둥이로 때려죽이고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때리면서 죽여야 고기가 더 연해진다면서. ㅠㅠ


허공 속에서 네 다리를 휘저으며 짖어대던 그 처절한 비명 소리,


몽둥이로 매질을 당하며 생을 마감하던 흰둥이의 모습을 목격했던 기억은, 어린 제게 지워지지 않는 트라우마로 남았습니다.




안타깝게도 비극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2002년, 이천의 한 학교로 발령받았을 때의 일입니다.


발령받아 간 학교 뒤뜰에는 귀여운 강아지(완전 새끼 강아지는 아니고 어느 정도 성장한) 세 마리가 뛰어놀고 있었습니다.


처음 보는 저에게도 꼬리를 흔들며 다가오는 그 녀석들이 너무 귀여워 한참 동안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근데 이 녀석들의 이름이 조금 특이했습니다.


'초복이', '중복이', '말복이'


이름이 가진 섬뜩한 복선을 애써 외면하고 싶었지만, 노래 제목처럼 슬픈 예감은 이번에도 틀리지 않았습니다.


그 해 초복이 지나자 '초복이'가 사라졌고, 중복이 지나자 '중복이'가 더 이상 보이지 않았습니다.


'말복이'의 운명 역시 앞서간 '초복이', '중복이'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꼬리를 흔들며 나를 반겨주었던 그 순수한 생명들이 '보양식'이라는 이름으로 차례차례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며, 저는 인간의 이기심에 대해 깊은 자괴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행히 다음 해 보양식을 즐기시던 교장선생님은 학교를 옮기셨고, 더 이상 그 학교에는 복(伏) 날을 위해 죽음을 기다리는 생명들은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런 제게 '반려(伴侶)'의 진짜 의미를 가르쳐 준 존재는, 2008년 저희 가족이 된 '땡이'였습니다.


2년간의 주말부부 생활을 끝내고, 김포에 터전을 마련한 저희 부부에게 딸아이는 최후의 통첩장을 날리더군요.


"동생을 낳아주던지, 아니면 강아지를 키우게 해 주던지"


이미 10살이 된 딸아이의 동생을 갖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었기에, 저희는 하는 수없이 동네 동물 병원에서 슈나우저 한 마리를 입양해 키우게 되었습니다.


시골 부모님 집에서 낮잠을 즐기는 땡이와 나 ^^


생일이 10월 10일이었던 그 아이에게 저희는 '땡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장땡이'라 하고 싶었지만 저희 가족 누구도 장 씨 성을 가진 사람이 없어 그냥 '땡이'라 부르기로 하였습니다.


또한 차후에 한 마리를 더 입양해 '치리'라는 이름을 붙여줌으로써 '땡칠이' 가족을 만들고 싶은 마음에 지어준 이름이었습니다.

(땡칠이를 아는 사람은 옛날 사람 ㅋㅋ)


여러 가지 사정이 생기면서 결국 '치리'는 저희 가족과 인연을 맺지 못했고, 그렇게 땡이는 조금은 외롭게, 하지만 저희 가족의 사랑을 오롯이 받으며 막둥이로 자라 주었습니다.




그렇게 땡이가 저희와 함께한 지 10년.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땡이는 제게 단순한 강아지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지치고 외로울 때 가장 먼저 다가와 온기를 나눠주던 존재,


말하지 않아도 제 슬픔을 온몸으로 받아주던 가족이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가족 이상이었습니다.


밤늦게 집에 들어갈 때면 꼬리를 흔들며 저를 반겨주던 이는 오직 땡이뿐이었던 날이 많았으니까요.




그러던 땡이가 2018년 2월 20일, 갑작스레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말았습니다.


원인은 급성 췌장염.


동물 병원이라곤 다섯 살 적, 음식 쓰레기봉투에 있던 상한 수박을 몰래 훔쳐 먹고 식중독에 걸려 입원했던 것이 유일했던, 평소 너무도 건강했던 아이였기에 저와 딸아이가 받았던 충격은 너무도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교육청 징계로 부천에 강제 발령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닥친 땡이의 죽음은, 저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거대한 슬픔의 파도였고, 세상에 홀로 남겨진 듯한 지독한 고립감으로 다가왔습니다.


새 학기 준비로 바쁜 시기였지만,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겨우겨우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더 이상 저를 반겨주는 땡이가 없는 집에서 한참 동안 외로움의 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


땡이를 떠나보내며 저는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제가 땡이를 지켜준 게 아니라 땡이가 저를 지켜주고 있었음을 말입니다.




그 후 살아있는 생명을 거두고 키우는 일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가끔 유기견 보호 시설에 봉사 활동을 다니면서 땡이를 떠나보낸 상실감을 달랠 뿐이었습니다.


땡이와 닮은 슈나우저나 유독 슬픈 눈을 가진 녀석들을 볼 때마다 땡이의 환생인가 싶어 입양을 고민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제 한계를 잘 알기에 그 눈빛들을 애써 외면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헛헛한 마음을 달래려 반려동물 대신 반려 식물을 키우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친히 세 마리의 유기견을 돌보고 계시며, 유기견 보호 단체(사단법인 유행사)에서 열심히 봉사 활동을 하고 계시는 동료 선생님께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리가 쇼윈도에서 마주하는 예쁜 강아지들 뒤에 숨겨진 잔혹한 진실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더 많은 수익을 내기 위해 쉴 새 없이 강제 임신을 시키고, 제왕절개를 한답시고 커터 칼로 배를 갈라 새끼를 꺼낸 뒤 스테이플러로 대충 봉합한 다음 또다시 임신을 시키는 악덕 분양업자들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심지어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모견들을 산 채로 아무 곳에 나 묻어버리기까지 한다는 말을 듣고는 진정 인간의 탐욕의 끝은 어디까지인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릴 적 목격했던 몽둥이의 폭력이, 없이 살았던 우리 아버지들의 나름의 '생존 방식'이었다면, 지금 대한민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체계적인 학대는 '탐욕'이 만들어낸 '잔혹한 범죄'라고 생각합니다.


'땡이'의 아빠였던 사람으로서, 또한 아이들에게 '생명 존중'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저는 이 비극적인 연결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명을 돈으로 환산하고, 물건처럼 찍어내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되찾아야 할 가치는 무엇일까 고민해 봅니다.


시골 마당의 흰둥이부터 제 곁을 지켜 주었던 땡이,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번식장에서 고통받는 생명들까지.


그들 역시 우리처럼 똑같이 아픔을 느끼고 사랑을 갈구하는 소중한 생명들이니까요.


그들이 더 이상 안타까운 비명을 지르지 않도록,

더 이상의 아픔을 느끼지 않도록,

이제는 우리가 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을까요?


P. S. 선생님과 나눴던 이야기가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 아이들을 위해 뭐라도 해야만 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며칠 전, 그 봉사 단체에 정기 후원을 시작했습니다.


많은 금액을 후원하고 싶었지만, 외벌이 신세에 기존에 후원하고 있던 단체가 여럿이기에 그러지 못해 못내 안타까웠습니다. ㅠㅠ


그래서 저 같은 사람이 로또에 당첨되어야 합니다. ㅋㅋ


"하나님! 제발 좋은 곳에 펑펑 쓸 수 있도록 로또 당첨되게 해 주세요." ^^


하지만, 이번주도 꽝이네요. ㅠㅠ


솔직히 말씀드리면, 게으른 성격 탓에 몸으로 하는 봉사는 못 하겠고, 불편한 마음은 달래야 했던 얄팍한 저의 부채감을 덜어내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땡이'들이 조금 더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음만은 진심이랍니다.


혹시 이런 저의 간절한 마음에 동참을 원하시는 분이 계신다면, 아래 계좌로 마음을 함께해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


국민은행 762301-04-304418

(예금주 사단법인 유행사, 유기 동물 행복 찾는 사람들)


'유행사' 인스타그램


위의 사진에서 확인하실 수 있는 것처럼, 100% 자원봉사자들로 이루어진, 오직 유기 동물의 행복을 찾아주자는 마음으로 쉬는 날에도 봉사 활동을 멈추시지 않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합니다.


마침 다음주 일요일에 '유행사 봄 정기 바자회'가 열리기도 하네요.




부디 저의 이 작은 소망이, 지금도 커터 칼의 공포 속에서 숨죽이고 있을, 어느 이름 모를 생명들에게 따뜻한 손길로 닿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해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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