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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삼밭 며느리 Apr 11. 2017

봄: 봄비

누군가에겐 단비일 수도, 또 누군가에겐 아닐 수도



네, 오늘은 봄비 소식이 있습니다.
서해안을 시작으로 차츰 확대되겠는데요.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은 식목일이다. 미세먼지로 인해 하늘이 청명하지 못했던 절기 청명이 지나고 촉촉하게 봄비가 내린다. 아침방송 여섯 개의 대본. 그 중 하나에는 오늘이 식목일인만큼 봄비가 땅을 촉촉하게 적셔주겠다는 멘트를 집어 넣었다. 하늘이 맑았다면 소풍가는 기분으로 나무 한 그루를 심어보면 좋겠다는 말을 했을 거다. 생각하기 나름이고 연결짓기 나름이다.


봄에 내리는 비는 단비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지난 겨울 동쪽 지역을 중심으로 건조특보가 길게 이어지다가 잠시 해소되고 또 길게 이어지기를 반복했다. 살금살금 봄이 우리 일상으로 들어오면서 조금씩 기온이 높아짐을 체감할 때에도 건조특보가 열흘 이상 내려진 지역들이 있었다. 그 시기에 내리는 비는 방송에서 대체로 단비라고 칭한다. 오늘 같은 경우는 대기가 건조하진 않지만 미세먼지를 씻어내려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에 단비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단비라는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꼭 필요한 때에 알맞게 내리는 비라고 설명되어 있다. 그런데 이 '꼭 알맞은 때'는 누가 정하는 걸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참으로 주관적인 단어다. 물론 단비라는 말은 옛날 농경시대부터 쓰여오던 단어일 테니 농사일에 있어 알맞은 때일 것이다. 농사일 뿐 아니라 단비의 역할은 사실 중요하다. 대기가 건조하면 화재가 발생하기 쉽고, 또 사람이 감기에 걸리거나 질병에 노출되기에도 쉬운 환경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소풍을 가는 아이에게, 오늘 밖에서 무언가를 해야하는 사람에게 이 비가 단비가 될 수는 없다. 조그마한 방송실 안 마이크 앞에 앉아 날씨를 전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함부로 날씨를 좋다, 나쁘다할 수는 없다는 것.


KBS 이세라 기상캐스터의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다. 겨울에 '다행히' 춥지 않겠다는 멘트를 썼다가 데스크로부터 너무 감정적이라는 평을 듣고 수정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겨울에 조금 덜 춥고, 여름에 조금 덜 덥고, 봄과 가을에 일교차가 심하지 않으면 좋은 날씨라고 여기기 쉽다. 활동하기 쉽고, 특히 도시 사람들은 날씨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 산업에 종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다양한 삶이 있고, 다양한 생물이 있다. 겨울에 춥지 않으면 얼음이 얼지 않아 산업에 문제가 생길 수 있고, 일교차가 커야만 잘 자라는 생물도 있다. 누군가에겐 좋은 날씨가 다른 누군가에겐 좋지 않을 수 있다. 누구나에게 좋은 날씨, 누구나에게 나쁜 날씨란 어쩌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비단 날씨 뿐 아니라 세상 모든 것이 아마도 그럴 것이다. 좋은 사람, 좋은 기회, 좋은 음식, 좋은 선물, 좋은 생각. 이 모든 것이 각자에게 알맞아야한다.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가 나에게만 알맞다고 생각하니 한층 더 애틋해지는 기분이다.



4월 첫째 주 어느 날 봄비가 내리는 차창 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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