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적으로 이 책은 한 노인의 독백이다. 푸구이라는 노인이 지나가는 사람에게 자신의 인생을 담당하게 늘어놓는 형식을 취했다.
주로 가족들과 관련된 에피소드(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전부 죽었기 때문이다.)가 소설의 주를 이루고 있지만, 어쨌건 이 소설의 핵심은 푸구이라는 노인이 그의 한 많은 인생에 대해서 순응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하나, 둘, 떠났지만, 푸구이는 절대로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절대로 자신의 인생에 대해 위로를 구하지 않는다. 그는 덤덤하게 자신의 인생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사실 어쩌면, 받아들이는 것 외에 별다른 방도가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지주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결국 그에겐 늙은 소 한 마리 만이 남았다. 그의 가족들은 모두 죽었다. 딸도, 아들도, 손자도, 사위도, 그리고 아내도, 모두 죽었다. 그것도 어이없게, 힘들게 죽었다. 하지만 푸구이는 끝내 살아남았고, 그는 늙은 소에 대한 연민으로 죽을 위기에 있던 소를, 자신이 갖고 있던 돈으로 사서, 오늘도 그 소와 친구가 되어, 영원한 그의 삶의 터전인 밭에 있다.
그는 그의 인생에서 최소한의 저항은 해보지만, 거대한 바람과 구름은 그 저항이 별로 의미가 없다는 것을 무심하게도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인생을 너무나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오늘도 밭에 있다. 자신의 운명에 순응한다. 한스럽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겠지만, 그는 운명에 순응한다. 가슴속에 덮고, 묻고, 한편에 고이 남기고, 여전히 푸구이는 숨을 쉬고 있다. 모든 것이 떠났지만, 푸구이란 이름의 소와 함께 오늘도 살아간다.
위화라는 작가는, 대학원 시절 교수님의 소개로 알게 되었다. 그 당시 교수님은 경영학을 가르쳐주시던 교수님이었는데,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라는 소설을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면서, 책을 한 번 읽어볼 것을 추천하셨다. 당시 대학원 도서관에서 ‘허삼관 매혈기’를 읽었으나 큰 감동은 못 느꼈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우리나라의 유명배우(하정우)가 제작한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개봉하면서 그 소설이, 이 위화라는 작가가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생’은 내가 읽은 소설 중 손에 꼽을 만큼 재미있었고, 여운이 많이 남는 작품이다. 지난주, 딸의 출생을 지켜보면서 나의 인생에 대해 되돌아볼 기회가 있었는데, 참으로 숭고하면서도 한 번쯤은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인생이라는 하나의 소풍에서, 나에게 주어진 인생, 숙명, 운명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태도는 분명 현재의 나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자세인 것 같다.
무언가를 더 얻으려 하지 말자. 분노하지 말자.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자. 승현이와 노을이가 태어나, 그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는 반면, 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는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시는 것이 마음 아프다. 어쩔 수 없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은 그냥 받아들이자.
이 책은 중국의 근대사를 꿰뚫고 있다고 한다. 푸구이의 인생에는 중국 보통사람들의 한이 녹아져 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중국의 근대사에 대해서 좀 더 알아봐야겠다. 참 재미있는 소설을 알게 되었고, 읽게 되었다. 앞으로 그의 작품을 지켜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