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의 소설 '싯다르타'를 통해 내가 알게된 것들
이 책은 감히 제 인생소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나름 가지고 있는 나만의 인생소설의 조건은 첫째, 너무 길지 않아서 언제든지 다시금 읽을 수 있어야 하고, 둘째, 영화의 열린결말처럼 여운이 남으면서도 내 삶에 직접적인 교훈이 느껴져야 하는데 이 '싯다르타'는 그 두 조건을 너무나 만족하는 책입니다.
사실 이 책을 읽기까지 몇 번의 망설임이 있었습니다.
헤르만 헤세의 대표작인 '데미안'을 먼저 구매했었습니다. 언제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을 정도로 수년전 구매했던 그 책을 그동안 몇번이고 읽어보려 노력했지만 쉽게 읽히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데미안'은 책장 한 곳에 남아 있는데, 그러던 중 '싯다르타'라는 제목에 끌렸습니다. 하지만 헤세 소설의 어려움을 알고 있어 쉽게 용기를 내질 못하고 있다가 읽어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 책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전혀 종교적인 가르침이 아닙니다.
헤세가 이 책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그것은 모든 종교를 초월하는 메세지입니다. 저는 그것을 '직접경험' 의 중요성, 또는 '파격'의 중요성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틀을 깨거나 한 단계 성장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에게 배우기보다는 직접 경험하고 고민하고 느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제가 왜 그렇게 생각을 하는지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1. 태어남과 떠남
책의 주인공인 싯다르타는 지금으로 치면 사회지도층의 자제로서 주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 할 많은 것들을 갖추었습니다. 인간적인 매력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위치까지, 한마디로 금수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싯다르타는 현재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거부합니다. 만족하지 않습니다.
완전한 것, 완성을 의미하는 '옴', 참된 자아, 생명력을 뜻하는 '아트만'이 되기 위해서 주어진 모든 것들을 거부하고 사문이 되기 위해 떠납니다. 친구인 고빈다와 함께.
사문이 되기 위해 떠나기 전, 아버지에게 허락을 받으러 간 싯다르타는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 밤새 아버지 옆에서 한발짝도 움직이지 않으면서 기어코 허락을 받아냅니다. 그는 의지가 크고 자기 확신이 있는 청년이었던 것입니다.
2. 수행과 헤어짐
집을 떠난 싯다르타와 고빈다는 이름난 스승을 찾아 길을 떠납니다.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은 '아트만'을 찾기위해 수행을 계속합니다. 그러던 중 숲속에서 당시 이름난 지존인 고타마를 만나게 되고 그 둘은 고타마가 이끄는 무리에 들어갑니다. 지존 고타마 밑에서라면 자신들이 찾아 헤맨 그 진리를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싯다르타는 얼마 되지 않아 고타마 곁을 떠납니다. 고빈다와도 자연스레 헤어지게 됩니다. 숲을 떠난 싯다르타는 길을 떠나고 강을 건너 이웃 마을로 갑니다.
3. 세속
강을 건너 마을로 온 싯다르타는 우연히 유명한 기생 카밀라를 알게되고, 그녀에게서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매력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싯다르타는 오랜 수행으로 가진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사색하는 것, 기다리는 것, 단식하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카밀라는 그런 싯다르타에게서 지금까지 그녀가 만나온 다른 남성들로부터 느낄 수 없었던 무언가를 느끼게 되고 싯다르타가 마을에 정착하고 부자가 될 수 있도록 일자리를 알아봐 줍니다. 싯다르타는 그녀의 도움으로 장사를 하게 되고 큰 돈을 모으게 됩니다. 처음 수행을 위해 아버지 곁을 떠났을 때, 지존 고타마를 만났지만 자신만의 수행의 방식을 지켜나가기 위해 고타마와 고빈다를 떠났을 때의 싯다르타는 없었습니다. 어느날 우연히 거울속의 자신의 모습을 본 싯다르타는 너무나 생소한 나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의 생활에 근원적인 회의를 품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날, 싯다르타는 역시 조용히 카밀라와 카밀라 뱃속에 있는 아이 곁을 떠납니다.
4. 강에서 얻은 깨닳음
마을을 떠난 싯다르타는 그 옛날 고타마와 고빈다 곁을 떠나 마을로 이동하기 위해 강을 건널 때 만났던 뱃사공을 다시 만납니다. 강가에서 깊은 잠에 들었던 그를 살려준 바쥬데바라는 이름의 뱃사공에게서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찾아 헤맸던 깨닳음을 발견합니다. 바로 듣는 것, 욕심을 버리는 것, 가만히 바라보는 것. 그것이었습니다. 싯다르타는 바쥬데바 곁에서 뱃사공을 하며 강을 건너는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조금씩 조금씩 깨닳음을 얻어갑니다. 마치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강, 하지만 그 강을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모든 것은 변하지만 결국에 변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깨닳음을 바쥬데바를 통해 얻은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 옛날 고타마가 죽음을 앞두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죽음을 모시기 위해 강을 건너기 위해 강가로 온 카밀라와 아들과 극적인 재회를 합니다. 불행히도 카밀라는 뱀에 물려 죽고, 싯다르타는 아들과 함께 강에서 살아갑다. 하지만 아들은 싯다르타와의 생활을 거부합니다. 마치 그 옛날 싯다르타가 아버지 곁을 떠난 것처럼 아들이 싯다르타의 곁을 떠나고, 아들을 찾아 떠난 싯다르타는 결국 아들을 찾지 못하고 마음 속에서도 놓아줍니다. 모든 것이 집착이었기 때문입니다. 스승이나 다름없던 바쥬데바도 죽고 싯다르타는 홀로 강에서 살아갑니다.
5. 고빈다와의 재회
강에서 살아가던 중 어느날 수행하는 한 무리가 강으로 오는데, 한번에 싯다르타는 고빈다임을 알아봅니다. 반면 고빈다는 싯다르타는 알아보지 못하지만, 곧 싯다르타가 자신이 생각하는 깨닳음을 고빈다에게 이야기 하자 고빈다는 그가 싯다르타 임을 알아봅니다. 평생을 다른이를 통해 진리를 배워왔던 고빈다는 평생을 스스로 경험하고 체험하며 진지를 터득한 싯다르타에게 모든 존경을 담아 진심으로 예를 표하고 다시 길을 떠납니다.
인생에 맞서는 한 인간의 노력
이 책을 읽으면서 허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산티아고가 생각났습니다.
소설에 나오는 "인간은 파괴될 순 있지만 패배하지는 않는다."는 그의 말이 싯다르타의 삶 속에 엿보였기 때문입니다. 싯다르타는 속세에서 미인과 사랑도 나누고 부자도 되어봅니다. 하지만 다시 강으로 돌아오면서 처음 집을 떠났을 때 자신의 목표를 다시 떠올립니다. 사랑했던 카밀라가 죽고, 사랑하는 아들도 떠나갔지만 그는 계속 살아간다. 그는 깨닳았기 때문에 살아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싯다르타'는 몇 년 후 다시 읽었을 때 또 어떠한 울림을 받을까 기대가 되는 훌륭한 소설입니다.
우리는 여러 이유로 안정을 추구하고 새로운 도전을 망설입니다. 지금보다 더 안좋아지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소설속 싯다르타가 보여주는 모습을 통해 우리를 반성해볼 수 있습니다. 끊임없이 도전하고 변하고, 어려움에 굴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자신이 생각했던 그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