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지금도 ADHD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ADHD를 진단받은 지 3년하고도 6개월이 지났습니다.
진단받은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약을 타먹었습니다.
약 먹은 날들을 세어보니 ADHD 약만 거의 1300일 가까이 먹어온 것 같습니다. (정신과 약만 하루 평균 5알을 먹었으니... 대략 6000알 정도의 정신과 약을 먹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그래서, ADHD인 제 삶은 좀 나아졌을까요.
사실은 잘 모르겠습니다.
3년 내내 하루도 빠짐 없이 약을 먹고 있고, 상담도 받아보았습니다.
ADHD와 관련된 책도 몇십 권을 읽고, 유튜브 영상도 수없이 봤습니다. 관련 논문도 수십 편은 읽은 것 같습니다.
ADHD들끼리 서로 도움이 되어보고자 ADHD 커뮤니티를 만들어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1년 정도 작게 운영해 왔는데, 지금까지 20여명 정도의 사람들이 참가해주셨습니다.
심지어 이제는 나름 잘나가는 스타트업 HR을 때려치우고 ADHD로 창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혼자도 아니고 무려 네 명이서 사무실을 빌려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ADHD 코치'라는 한국에서는 낯선 커리어도 새로 만들어나가고 있습니다.
이런 무모함 또한 제 특징입니다.
그런데 또 가끔, 오늘 같이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에는 어깨가 지나치게 무거워집니다. 잘 하고 있는 건지, 애써 외면해오던 물음표가 머릿속에 수없이 떠오릅니다.
ADHD 커뮤니티 '집중맞은 도둑력'의 첫 모임이 끝나갈 때쯤, 누군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ADHD를 없앨 수 있다면, 없애시겠어요?"
놀랍게도 거기에 있는 10명은 저를 포함하여 모두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신기하죠? 그 괴로운 ADHD를 없앨 수 있는데도 왜 다들 그러지 않겠다고 대답했을까요?
이제 와서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 이유는 2가지입니다. 첫째, 애초에 우리는 ADHD를 없앨 수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ADHD가 빠진 나의 삶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눈치채셨겠지만, 사실 이 두 가지는 같은 말입니다.
ADHD를 가진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과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살아갑니다. 적게 잡아 전체 인구의 4% 정도의 사람들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과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이해하면서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시스템에 적응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니 당연히 힘들 수밖에요. 그렇다고 사는 걸 때려치울 수도 없습니다. 일단 살긴 살아야 합니다. 그러니 당연히 다른 사람들보다 삶이 몇배는 더 힘듭니다.
저도 그 ADHD 중 한 명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다른 사람들처럼 살 수는 없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특이한 나' 때문에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는 친구가 없습니다. 기껏 입학한 고등학교에서도 은따처럼 지내며 친구 한 명만 건졌습니다. 대학교에 입학해서도 과에서는 소위 말하는 아싸가 되었습니다. 다행히도 어찌저찌하여 대학교 전체에서는 인싸가 되는 나름의 해피엔딩을 맞이하긴 했습니다.
이제 스물 여덟, 20대가 끝나갑니다. 20대라는 빛나야 하는 시간 동안 뭘했을까요?
세상을 바꾸겠다며 정당에 들어가 활동을하다 결국 포기하고 뒤늦게 입대했습니다. 군대에서 특급전사라는 것은 어찌저찌 땄지만 사실 사회에 나오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고 잘 전역했습니다. 여기에서 마음을 다잡고 취업이라도 잘 했다면 차라리 다행이었을 것 같습니다만...
그 뒤에는 2년 동안 준비하던 고시를 말아먹고, 로스쿨을 가겠다며 뻗대다가 결국 1년을 또 날려먹었습니다. 결국 취업이라도 하기로 마음먹고 어려운 취업시장에서 나름 괜찮은 회사에 HR로 취업했습니다.
여기가 끝이었다면 정말 좋았을테지만... 결국 또 퇴사했습니다.
올해 5월, 태어난 지 28년이 되던 즈음, 비로소 '현실'을 깨닫습니다.
'나는 평범하게 살아가기 정말 어려운 사람이구나. 누구나 평범하게 사는 거, 그거 하나 하려고 바둥대면서 살아간다지만, 나는 아무리 바둥대도 절대 평범하게 살 수가 없구나.'
좀 더 빨리 깨달았다면 그 이전의 삶이 덜 고달팠을까요. 이제는 지금이라도 깨달은 것에 감사하기로 했습니다.
이제서야 생긴 대로 살아가기로 했습니다.
ADHD 코치의 커리어를 준비하며,
ADHD 당사자인 친구들과 예비창업팀을 꾸렸습니다.
돈은 벌어야 하니 변호사 친구의 법률사무소 마케팅 외주를 하며 돈을 벌고 있습니다.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라지만, 진짜 연속일 줄은 몰랐습니다.
당최 살면서 쉬운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앞으로도 그러겠지요.
최근들어서는 우울삽화가 도져서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럴 때마다 ADHD를 자신으로부터 도려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왜 남들보다 몇 배는 힘들게 살아야 할까요? 같은 문제를 마주해도 감정은 다른 사람들의 몇 배로 파도칩니다.
동기부여가 어려워서 시작한 일을 지속하려면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해야 합니다.
(발휘해도 대부분은 못합니다.)
ADHD의 특징 중 하나인 수면위상지연이 있어 매일 수면 패턴을 지키기 위해 처절한 침대 위의 사투를 합니다.
저녁쯤에는 아침에 먹은 콘서타라는 ADHD 약빨이 떨어지며 체력과 기분이 곤두박질치는 리바운드를 버텨내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하지만 전 알고 있습니다. ADHD를 도려낼 수는 없습니다. 제가 ADHD이고, ADHD가 접니다. 저는 평생 이친구와 24시간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야 ADHD를 치료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할거냐는 위의 질문에 더 편하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런 건 불가능합니다.
사실 ADHD는 치료 종결, 완치, 완전한 극복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습니다.
ADHD는 사실 개인의 특성일 뿐이거든요. 다만 현대 사회의 시스템과 그 특성이 잘 맞지 않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ADHD의 특성들은 모두 양면이 있습니다. 저도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 때가 많습니다. 장점 따위는 관심 없으니 그냥 ADHD가 사라져버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그러나 어쩌겠어요.
기왕 ADHD와 함께 살아가는 거, 잘 지내보기로 했습니다.
- 지금도 ADHD의 과몰입을 이용해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 사업 얘기를 할 때는 ADHD의 특징인 창의성을 발휘하려고 합니다.
- 무모함을 역으로 이용해 용기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 눈치 없이 사람을 좋아하는 태도는 친화력으로 발전시켰습니다.
- 매번 미루는 자신을 '그래도 정말 꼭 해야될 일은 하는 효율성을 가진 사람'이라고 부르려고 노력합니다.
ADHD와 잘 살아가자고 결심했습니다. 자신과 잘 지내보기로 하고 화해했습니다.
그리고 어쩌다보니 꿈이 생겼습니다. 간절히 바라게 되었습니다.
'특이한 나'도 이 세상에서 사람들과 함께 행복할 수 있기를 바라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이상한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저도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기를. 비정상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사실은 세상의 희망을 만들어나가는 이들이라는 것이 알려지기를, 그리고 그것을 나 또한 온몸으로 알려줄 수 있기를.
그러다 어느순간 돌아보니 제 인생 전부를 ADHD에 걸었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이렇게 말하고 다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