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운 적이 없는데 어떻게 합니까?

이정도도 잘하고 있는 거예요, 나란 ADHD한테는.

by 채성준

안녕하세요. ‘집중맞은 도둑력’ 운영자 채성준입니다.


요즘 무척 바쁘지만, 잠시 시간을 내어 꼭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이 글을 씁니다.



내가 가장 오래 붙들려 있던 생각들


ADHD 진단을 받기 전과 받은 뒤를 통틀어, 저를 가장 오래 괴롭혔던 생각들이 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의지가 약할까.'

'왜 시작한 일을 끝까지 해내지 못할까.'

'왜 대화할 때 맥락을 놓치고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까.'

'왜 나만 이렇게 다른 것 같지.'


다른 사람들은 비교적 큰 고민 없이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는데, 유독 저는 쓸데없이 많은 생각과 걱정을 짊어지고 사는 기분이었습니다.



혼자 있는 것보다 더 힘들었던 것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학창 시절이었습니다.

저는 친구가 거의 없었습니다. 대화의 맥락을 잘 따라가지 못했고, 엉뚱한 말을 한다는 이유로 소외되는 일이 잦았습니다. 결국 고등학교 시절 대부분을 혼자 보냈습니다.


혼자 지내는 것 자체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감각이었습니다. 심지어 부모님조차도요.


“네가 더 노력해야지.”

“남들처럼 하면 되잖아.”


이런 말을 여기저기서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미 너무 힘들었고, 안 되는 걸 안 된다고밖에 말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별다른 방법도 모른 채 그저 버텼습니다.


돌이켜보면 유치원 때부터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20대 중반까지, 삶이란 그냥 버티면서 꾸역꾸역 살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진단 이후,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다


그러다 군 전역 직후 ADHD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제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틀린 사람이 아니라, 다른 특성을 가진 사람이었구나.”

“게으른 게 아니라, 그냥 이런 방식으로 작동하는 사람이었구나.”


그 뒤로 저는 ‘정상’이라는 말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됐습니다.



대체 무엇이 정상일까


대체 무엇이 정상일까요.

저는 사실 그런 기준이 절대적인 것처럼 여겨지는 분위기 자체가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모두가 비슷한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고 믿는 것 같습니다.

정해진 시간표에 맞춰 움직이고, 정해진 기준에 따라 성과를 내고, 남들처럼 집중하고, 남들처럼 버티고, 남들처럼 적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그들 역시 그렇게 살고 싶어서라기보다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배워왔기 때문에 그 기준을 붙잡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기준에서 벗어나면 실패한다고, 뒤처진다고, 문제가 있는 사람이 된다고 배워왔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노력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저는 저를 압니다.

저는 사회가 요구하는 틀에 저를 완벽하게 끼워 맞추며 살아가기 어려운 사람입니다.

이른바 '보통 사람처럼 사는 법'이 무엇인지, 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노력은 많이 해봤습니다. ADHD 당사자들은 대체로 누구보다 많이 노력하며 살아갑니다. 다만 그 노력이 결과로만 평가되지 않을 뿐입니다.


생각해보면 참 이상합니다.

노력만으로 평가받는 세상이었다면, ADHD 당사자들은 꽤 높은 점수를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남들보다 덜 애써서 힘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애쓰고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사람들은 결국 사회가 정한 기준에서 얼마만큼의 결과를 냈는지만 묻습니다.

그 과정에서 내가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어떤 방식으로 버텨왔는지, 얼마나 애써왔는지는 잘 보지 않습니다.



정답을 찾으려 했지만


그런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도 한때는 정답을 찾으려고 애썼습니다.

사람들에게 물어봤습니다.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거냐고, 뭐가 맞는 거냐고.


그런데 다들 정확한 답은 모르더군요.

그저 ‘평범하게’ 살아보려고 애쓰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평범함이 우리에게는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야 합니다.


‘어떻게 평범해질 것인가’가 아니라,

‘나는 어떤 방식으로 살아갈 때 덜 무너지고 더 나답게 살 수 있는가.’





우리는 그런 것을 배운 적이 없다


사실 우리는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그 어디에서도 배우지 못했습니다.

ADHD의 뇌와 기질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말입니다.


세상에는 ADHD를 위한 정보와 기술이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ADHD가 아닌 사람들의 기준으로 설계된 사회 속에서, 우리는 정작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오히려 남들이 말하는 정상성의 기준으로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법만 배운 경우가 많습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얼마나 외로웠을까요.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 가운데도, 그런 시간을 오래 지나온 분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답은 없지만, 해답은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저는 여기에 단 하나의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답이 있다고 말하면 그건 거짓말에 가깝습니다.

다만 저는 각자에게 맞는 해답은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조금 더 당당해지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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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숨기지 않기로 했다


저는 ADHD입니다.

하기 싫은 일은 시작이 잘 안 되고, 일을 자주 미루고, 눈치를 많이 보면서도 정작 핵심 맥락을 놓칠 때가 있습니다.

꼼꼼하지 못하고, 숫자 실수를 하고, 일정을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여전히 마음이 힘들 때도 많습니다.


물론 미안한 일은 미안합니다.

늦으면 미안하고, 까먹으면 잘못한 것입니다.

그건 분명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도 제 일부입니다.


저는 좋아하는 일에는 몇 시간이고 몰입할 수 있습니다.

관습을 빨리 읽는 편은 아니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틀 밖의 방식과 아이디어를 떠올릴 때가 많습니다. 물론 모든 아이디어가 쓸모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과정은 분명 제 강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약한 부분을 인정하고, 그 부분을 잘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인정한 다음에야, 다음을 고민할 수 있었다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저는 이제 제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다음에, 어떻게 살아갈지를 고민합니다.


사실 우리는 사회에서 쉽게 인정받지 못합니다.

결과가 부족해서만이 아닙니다. 노력 자체도 잘 인정받지 못합니다.

내 특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기보다, 나를 바꿔야 한다는 압박을 더 자주 받습니다.


그런데 제가 ADHD 코칭을 배우며 들은 말 중 오래 남은 문장이 있습니다.


“노력이나 의지로 되면 그게 ADHD인가요? 그건 ADHD가 아니에요.”


이 말은 변명을 하라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현실을 정확히 보라는 뜻에 가까웠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의지보다 구조다


결국 우리에게는 우리에게 맞는 구조가 필요합니다.

구조화된 업무 환경, 이해 가능한 일정, 나를 지나치게 소모시키지 않는 방식,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이해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것을 배우기보다, 성적으로 사람을 나누는 법, 돈으로 성공을 가르는 법, 오랫동안 앉아 집중하는 사람을 더 성실하다고 여기는 기준을 먼저 배워왔습니다.



그래서 결론은 또 커뮤니티다


그래서 저는 다시 커뮤니티를 생각하게 됩니다.

결론은 또 커뮤니티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혼자 너무 오래 외로웠기 때문입니다.

내가 문제가 아니라 단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일 수 있다는 사실을,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제대로 체감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정보를 나누고, 방법을 공유하고, 서로를 덜 이상한 사람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 구조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커뮤니티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같이 살아보는 연습을 만들고 싶다


지금 이 글이 올라가는 웹 커뮤니티뿐 아니라, 실제로 ADHD 당사자들이 함께 활동할 수 있는 모임도 만들고 있습니다.

같이 구글미트에 접속해 청소를 하는 모임도 하고 있고, 바디더블링 방식의 모임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각자 할 일을 함께 하는 모임, 온라인 모임, 오프라인 행사도 조금씩 더 늘려갈 생각입니다.


‘집중맞은 도둑력’이라는 이름이 다소 가볍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조금 가벼웠으면 좋겠습니다.

ADHD라는 것이 잘못은 아니니까요.

그냥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는 것뿐이니까요.



결국 사람 때문에 다시 버틸 수 있었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싶었던 순간에도 결국 저를 붙잡아준 것은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언제나 좋은 사람만 만날 수는 없겠지만, 서로를 이해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과 연결될 확률은 분명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시간을 쪼개어 글을 씁니다.

댓글로라도, 이 공간에서라도, 서로 조금 더 연결되어 보고 싶어서요.



당신은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가요


여기까지 읽어주신 당신께 마지막으로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이제 막 ADHD를 진단받은 사람에게, 당신은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나요?


댓글로 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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