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와 작업기억력
"어? 나 여기 왜 왔더라?"
거실에서 물을 마시러 부엌으로 걸어갔는데, 냉장고 앞에 서자마자 머릿속이 하얗게 변합니다.
"내가 폰을 왜 켰더라?" 날씨를 확인하려고 잠금 해제를 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인스타그램 피드를 20분째 보고 있습니다.
치매가 온 걸까요? 아닙니다.
ADHD 성향을 가진 분들이라면 하루에도 수십 번씩 겪는 이 현상,
바로 '문지방 효과(Doorway Effect)' 때문입니다.
오늘은 우리가 왜 자리를 옮길 때마다 기억을 잃어버리는지,
그 범인인 '작업 기억'의 정체와 해결책에 대해 이야기해 봅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문지방 효과(Doorway Effect)'는
사람이 물리적인 경계(문, 방)를 넘어갈 때,
뇌가 이전 공간에서의 기억을 '리셋' 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우리 뇌는 효율성을 위해 정보를 '장소'나 '맥락' 단위로 묶어서 처리합니다.
컴퓨터로 비유해볼게요.
거실에 있을 때는 '거실 파일'을 열어두지만,
부엌으로 들어가는 문지방을 넘는 순간 뇌는 '아, 거실 일은 끝났네. 파일 닫고 부엌 파일 열자!'라고 판단합니다.
그 찰나의 순간에 '물 마시기'라는 목적이 증발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유독 ADHD는 이 문지방 효과에 취약할까요?
바로 우리 뇌의 '작업 기억'과 관련이 있습니다.
작업 기억이란?
작업 기억은 뇌의 '임시 메모장' 혹은 컴퓨터의 'RAM'과 같습니다.
정보를 장기 기억으로 보내기 전,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붙들고 있으면서 처리하는 작업대입니다.
ADHD의 작업 기억은 '작은 책상' 신경전형인의 작업 기억이 '넓은 책상'이라면,
ADHD의 작업 기억은 '아주 좁은 책상' 혹은 '구멍 난 주머니'와 같습니다.
용량 초과
책상이 좁아서 정보가 3~4개만 올라와도 꽉 찹니다.
자동 삭제
문지방을 넘어 새로운 방(부엌)에 들어가는 순간,
'냉장고 소리', '냄새', '조명' 등 새로운 감각 정보들이 책상 위로 쏟아집니다.
밀려남
뇌는 새로운 정보를 처리하기 위해, 책상 위에 있던 기존 정보(예: 물 마셔야지)를 바닥으로 밀어버립니다.
이것이 우리가 문을 열자마자 멍해지는 뇌과학적 이유입니다.
'내가 뭐 하러 왔지?'라는 생각 이듭니다.
주의력을 뺏기거나, 작업기억의 용량이 꽉 차서 기존 정보가 날아가는 것입니다.
다음의 예시를 들 수 있어요.
카페 문을 열 때
커피 냄새와 소음이 작업 기억을 덮쳐서 '업무'라는 목적이 삭제됨.
노트북을 열 때
화려한 뉴스 배너와 아이콘이 작업 기억을 덮쳐서 '검색'이라는 목적이 삭제됨.
약한 작업 기억을 보완하고, 문지방 효과를 이겨내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바로 기억이 삭제되지 않도록 '새로고침 방지' 버튼을 누르는 것입니다.
자리를 옮기거나 폰을 켜기 전, 딱 3초만 멈추세요.
그리고 머릿속으로 내가 할 행동을 영상처럼 그려보세요.
이동 전
'나는 지금 부엌에 가서, 컵을 꺼내고, 물을 따를 거야.' (상상하기)
노트북/스마트폰을 켜기 전
'나는 네이버를 켜고, 검색창에 'ADHD 약'을 칠 거야.' (상상하기)
이 짧은 시뮬레이션은 작업 기억 속 정보를 강화하는 방법입니다.
이미지가 선명할수록 뇌는 문지방을 넘어도 그 정보를 놓치지 않습니다.
시각화가 어렵다면, 청각을 활용하세요.
이동하는 동안 계속해서 목적을 중얼거리세요.
"물, 물, 물, 물..."
"메일 답장, 메일 답장, 메일 답장..."
다소 우스꽝스러울 수 있지만,
'소리를 내어 반복하는 것'은 좁은 작업 기억 책상에서 정보가 떨어지지 않게
계속 손으로 잡고 있는 것과 같은 효과를 줍니다.
냉장고 앞에서 멍하니 서 있는 자신을 보며 "나는 왜 이럴까, 바보인가" 자책하지 마세요.
당신은 바보가 아닙니다.
그저 당신의 뇌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너무 부지런히 '파일 정리'를 해버린 탓입니다.
이제 문지방을 넘기 전, 혹은 스마트폰을 들기 전,
'목적'이라는 짐을 단단히 챙겼는지 확인하는 습관을 들여보세요.
그 작은 3초의 습관이 당신의 소중한 시간을 지켜줄 것입니다.
▶▶ 오늘 '실행할 수 있는 한 줄 조언'
지금 화장실에 가거나 물을 마시러 갈 때,
도착할 때까지 속으로 되뇌며 이동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