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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준 Oct 15. 2024

ADHD인 당신에게

'이상한' 당신이 세상에게 하고 싶었던 질문은 무엇인가요?

 당신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지금, 행복하신가요?


 행복이라는 것은 정의하려 하면 할수록 멀어지는 것 같습니다. 삶의 한 지점에서 문득 뒤돌아보았을 때, 우리는 비로소 지난 순간이 행복했다는 것을 알아채곤 합니다. 감정은 흘러간 이후에야 그 윤곽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니까요.



 그런데 우리는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요?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그러니까 가정과 직장과 취업시장과 연애시장과 그 밖에도 수많은 ‘시장’에서 우리는 숫자로 자신을 평가하는 것에 너무 익숙해진 것 같습니다. 숫자는 크고 작음을 명확하게 보여주곤 합니다. 높은 생산성, 많은 자산, 빠른 속도 등이 우리를 가치 있는 사람으로 만들고는 합니다. 다른 잣대도 있습니다. 논리와 합리성, 우리가 흔히 ‘이성’이라고 뭉뚱그려 표현하는 그 어떤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발명된 이 단어는 지금 여기, 특히 한국사회에서 표준으로서 작동하고 있습니다.


 ADHD의 증상을 가진 우리들 또한 자신이 숫자와 이성의 규격에 맞는지 길이를 대어보고, 과연 내가 정상인인지, 표준에 맞는 사람인지를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검토하곤 합니다.


 ADHD는 실행 기능이 약화되어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구요? 우리는 계획을 세우고 그대로 실천하는 것에 약합니다. 우리는 원인과 결과를 합리적으로 추론하는 능력이 부족합니다. 우리는 기존 규칙과 체계를 파악하고 그대로 따라가는 것에 자주 곤란함을 느낍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신의 특성들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위의 단점들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장점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표현해봅시다. 계획의 예외에 대한 신속한 임기응변, 결과를 적당히 무시하고 결심한 것을 과감하게 실천하는 용기, 기존의 규칙을 벗어나 새로운 것을 상상하는 창의성. ADHD를 진단하는 현대 의학은 우리에게 이러한 가능성을 언급해주기보다는 우리가 잘못되었다고 진단합니다. 그리고 기존 사회 시스템에 우리가 적응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하는지 그 방법을 알려주곤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만 살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복잡하고 무서운 사회에서 살아가다보면, 기존의 규칙들을 따르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실제로 우리의 삶은 실수로 가득 차있고, 실수는 불안을 낳고, 불안은 우리를 강박적으로 만들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다음 글을 보고 생각해보세요. 당신도 이렇지 않나요?


"(우리가) '관습에서 벗어난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는 핵심을 놓친 말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행동하는 걸 선택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따르지 않는 표준이라는 게 무엇인지조차 모른다!"
《ADHD 2.0》 中


 자, 이제 ADHD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보겠습니다. 우리는 사회가 우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기만을 바라는 것이 아니고, 우리 또한 사회에 맞출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우리는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보통의 사람들보다 배로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다보면 우리는 사회적 문제들에 보다 예민한 감각을 갖게 됩니다. 두려움도 보다 다채롭고 구체적으로 느끼게 됩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흔한 ADHD의 ‘실수’뿐만이 아닙니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들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도 있습니다. 늙어감(Aging), 장애(Disability), 연약함(Vulnerability) 같은 것들이요. 


 우리는 늙어가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신체적·정신적으로 건강한 정상인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우리는 ‘미성숙한’ 아기에게는 한없이 관대합니다. 우리의 대부분은 나이가 들며 신체적·정신적으로 능력이 쇠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노인들과 정신적·신체적 장애인들을 사회의 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현대인들은 대부분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자주 듣곤 합니다. 하지만 정작 조울과 불안, 강박, 공황을 가진 이들은 사회에서 쓸모가 덜한 비정상인 취급을 받기도 합니다. 그래서 다들 쉬쉬하면서 자신의 아픔을 숨기기에 바쁩니다.


 ADHD를 가진 당사자들도 그렇습니다. 실수를 하면 ‘너 오늘 약 안 먹었냐’라는 소리를 듣기도 하고, ‘너는 예의가 없어서 항상 지각한다’라는 핀잔을 달고 살며, ‘너처럼 끈기가 없어서 무엇을 하겠냐’라고 혼나기도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장점을 드러내는 순간보다, 자신의 약점을 숨기는 방법을 연습하고는 합니다. 위에서 말한 노인과 장애인, 그리고 정신질환 당사자들처럼요. 이들은 경제적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여겨집니다. 우리 또한 숫자와 합리성에서 자신의 ‘쓸모’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그것만큼 청천벽력같은 소식은 또 없을 겁니다. 우리는 그렇게 자신을 평가하는 데에 익숙해져 있으니까요.



 좋은 말만 하는 속 편한 소리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 수많은 정체성들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약한 부분을 가지고 있었거나 가지고 있거나, 또는 앞으로 가질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입니다. 특히 당신이 ADHD라면 이 말을 뼈저리게 느끼셨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미 자신에게 질려버린 분들도 계실테지요. 저도 어느정도는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정말로, 그 당연하게 여겨지는 기준대로 살아가도 괜찮은 걸까요?


 우리는 지금 사회의 기준으로 생각하고 살아가면서 행복할 수 있을까요? 사랑하고, 함께하고, 웃을 수 있을까요?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지 않냐는 생각이 드신 분들도 계실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요, 만약에, 혹시라도, 자기 자신에 대한 평가를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그렇게 당신이 변하고, 당신 주변의 한 사람이 더 변해서 적어도 내 주변에라도 그런 사람이 한 두명이라도 더 생긴다면, 그렇다면 어떠시겠어요? 우리 조금은 더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요?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너무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당신 또한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라는 것을 당신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적어도 우리가 마주치는 사람들을, 적어도 우리의 친구와 가족과 동료들을 조금은 다른 기준으로 바라봐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저는 ADHD를 가진 당신에게도 감히 기대를 해보고자 합니다.


 세상이 말하는 ‘정상성’과 ‘승자독식의 논리’, ‘생산성의 기준’에 이상함을 감지하셨을 당신에게 같이 세상에 물음표를 던져보자고 요청해보고자 합니다. 항상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이들과 그것을 귀가 떨어지게 들어 익숙해진 우리 자신에게, 조금은 다르게 생각해볼 수 있지 않냐고 되물어보기를 제안합니다.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지는 순간 이미 답은 정해져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당신에게 질문을 던져보고자 합니다. 세상에서 ‘이상하다’라는 말을 자주 들어왔던 당신에게.



 함께 살아갈 ADHD와 세상에게, 당신은 어떻게 말을 건네고 싶나요?


 당신이 세상에 따져묻고 싶은, 가슴 깊숙히 꾹꾹 눌러왔던 한 마디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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