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이었다.
갓 증학교에 들어가서 너무 다른 환경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모르는 친구들 사이에서 얼굴을 익혀가고 있을 때였다.
주변에 장미 아파트, 우성 아파트. 잠실 주공아파트의 단지들이 빼곡했었고
토요일 짧은 주간 수업을 마치고
기억나지 않는 친구와 같이 집으로 오는 중이었다.
그 친구는 그 후에 기억이 나지도 않고 흐릿한 기억으로로 남지 않았는데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나 싶다.
갑자기 그녀가 나를 그녀의 집에는 데려갔고
고층아파트 풍경에서 성내역을 건너니 낮은 시영아파트가 나왔었고
난 그냥 아무 말도 없이 그녀와 그녀의 집에 갔다.
- 도대체??? 난 지금도 그녀의 이름도 생각이 떠오르질 않는다 -
오 층 아파트 삼층 그녀의 집.
집에는 아무도 없다고 그녀가 말했고 그 자그마한 아파트에 가만히 가방은 내려놓고
난 쭈뼛하게 앉았다.
그녀가 "기다려 내가 먹을걸 해올께"라는 소리에 그저"응"소리만 자그맣게
나왔고 그녀가 틀어준 TV를 보면서 앉아 있었다.
그녀가 뭔가를 만드는 공간에 부뚜막이 있었다.
부뚜막 위에 나란히 조르륵 세워진 실내화가 눈에 선명하다.
잠시 후에 그녀는 스뎅볼에 오이를 무쳐서 하얀 밥과 내왔는데
놀라웠다.
그때 다른 친구들과 보낸 기억으로는 엄마들이 내어주시던 간식거리와 라면이
다였었다. 친구가 직접 만든 반찬을 토요일 낮에 받다니.
아파트 상가 지하에서 삼삼오오 모여 앉아서 떡볶이에 심취하던 나로서는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녀의 은색 스뎅볼에 빨갛게 무쳐진 오이가 스뎅볼에 놓여있던 고추장이 묻은 얇은 숟가락이
시간에 많이 지난 지금도 나의 뇌리에 강하게 자국을 남겼다.
자그맣게 정리된 작은 아파트, 부뚜막. 하얀색 블라우스, 은색 스뎅볼, 선명한 빨간색의
오이 무침.
그날의 오이무침은 너무 맛있어서 지금도 잊지 못한다.
중학교 일 학년 그녀가 해준 그 오이 무침에 야채를 좋아하지 않았던 내가 반했다.
시간이 지나 엄마가 해준 오이무침 이외도 수많은 오이무침을 먹어 봤지만
전부 그만하지 않았다.
뭔가를 더 넣은 것도 없었을 텐데. 아직도 궁금하다.
내가 오이 무침을 만드는 나이가 되고 난 그 맛을 기억해 내려 애를 썼다.
참 묘하게도 내가 오이무침을 잘한다는 평을 받고 있다니.
강하게 붉어야 하고 신맛이 또렷해야 하고 오이에 물기가 비치니 않고....
내가 만든 양념이 그녀의 것과 비슷한 듯 싶지만
나도 그때의 양념이 궁금하다.
달랑 하얀 밥 한 공기에 오이 무침뿐이었는데
너무나도 환강적이던 시영아파트 거실에서의 기억.
이름도 그 어떤 기억도 남아 있지 않은데 깊게 인상적이었다.
연두와 초록빛 그리고 붉은색.
강렬한 맛을 잊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