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고 비었고 꽉찼다.
미국에 간지 일 년 정도가 되었고,
룸메이트가 방학 동안 한국에 갔다.
도미토리를 나와서 처음 혼자 한 달을 지내야 한다.
룸메이트가 떠나고.
나는 집을 치우기 시작했다.
동면을 준비하는 듯한 간절한 맘으로.
하루 종일 닦고 쓸고 틈틈이 이불을 빨았다.
우리들의 집은 생각보다 넓었다.
일층이라 창밖으로 도로가 보이고 이층 신혼부부의 사적인 소리가 고스란히 들린다.
혼자 지내는 첫날밤에는
마트에서 오이를 여덟 개 샀었다.
저녁 11시가 넘어가는 시간에 오이소박이를 담았다.
새우젓은 없어서 피시소스를 사서 담았는데 난 천재인가 할 정도롤 잘 담았다.
처음이었는데 가진 재주겠지.
오이소박이, 삼겹살 한 팩. 계란 13개, 사촌오빠가 준 김치 조금, 쌀 한 봉투.
뿌듯하고 든든했다.
거실에 잘 청소한 뽀송뽀송한 카펫 위에 만화 캐릭터가 그려진 넓은 수건을
깔고 앉아서 여름밤을 맞았다.
그때는 랭귀지 공부와 좀처럼 채워지지 않는 토플 점수를 겨우겨우 채워 넣은 직후라서
심적으로 한가했다.
읽을 책을 여기저기에서 구해서 소설책을 일곱 권 쌓아 놓고
남자 셋 여자 셋 비디오 테이프는 한 여덟 번 본 것이었는데 버릇처럼 비디오를 틀어 놓는다ㅏ
영어 tv도 지겹고 영어 책도 꼴 보기 싫었다.
한 달 동안 이렇게 계속 지내야지 차오르는 설렘에 마음이 설렜다.
한 달 동안 거의 일상 루틴은 동일했다.
헐렁한 얇은 면 파자마와 목 눌어난 티셔츠를 입고
거실 털이 긴 카펫 위에 수건을 펼치고
소설책을 읽다가 잤다가 읽다가 잤다.
아침인지 점심이 되면 부스스한 몰골로 동네 델리에 가서 1.99짜리 베이글과 커피를 사고
집 앞에 기차역 벤치에 앉아서 먹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한국 라디오 주파수를 맞춰서 내내 따라 부르다가 남자 셋 여자 셋을 틀어 놓고 다시 소설책에 빠지고 잠이 들고 한 여름의 집은 맹렬하게 더웠으나 각 방 조절이 불가한 에어컨은 작동을 끄고
자그마한 선풍기를 켜놓았다.
허기가 몰려오면 오이소박이와 흰밥을 먹고 삼겹살과 계란이 룸메이트가 돌아 올 때까지도 있었다.
주위 유학생들은 대부분 한국에 갔고 남아 있는 사람들과는 그저 그랬다.
하루 종일 집 안에서 그렇게 보냈다.
창문을 열고 블라인드로 가린 집은 시원하고 환한 빛이었는데 난 그 느낌이 좋아서 뜨끈한 바람을 만끽하기도 했었다.
소설책은 네 권을 읽었다.
남자 셋 여자 셋은 스무 번 정도 봤는데 틀어 놓으면 그들의 익숙한 속삭임이 너무 편안했었다.
오이소박이는 처음 생오이에서 쉬어터진 오이소박이까지 단계별로 다 맛을 보았다.
만나는 사람도 없었고 만날 사람도 없었고 하고자 하는 일도 없었다ㅣ
그 흔한 맨해튼을 나가서 노는 일도 내 일이 아니었다.
지금도 여름이 되면
낡은 면바지와 낡은 티셔츠
70시간까지 오이소박이와 함께 했던 밥
열 시에 클로징 하는 델리에서 급하게 들어가서 베이글과 막판이라 검게 쪄들 커피.
새벽녘에 윗집 신혼부부의 사적인 삐그덕 소리를 집중해서 듣고
웃던 기억들이 조각조각 모여서 그립다.
한국에서 룸메이트가 돌아오던 날.
시간을 보면서 기다리던 나에게 전화를 해서는 " 나 공항도착했어 경남아 쌀 씻어. 나 깻잎 있어"
행복했었다.
누군가 나를 찾은 목소리.
나를 주겠다고 꺳잎과 고들빼기김치를 들고 와서는 좋다고 나도 웃고 그녀도 활짝 웃었다.
거실에 펴있던 수건을 개고 침대로 들어가는 것으로 마무리한 그 여름.
그 후로 여름에 그렇게 한가하지 않았다.
대학교를 다니고 인턴일 하고
두 번 찾아오지 않을 여름이었다.
시퍼렇고 텅 비었지만 꽉 찬 내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