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불경기라 한다.
너무 느슨해진 가게는 나에게 진을 빼고 맥도 놓게 한다.
손님도 없고 사람도 없고 잠잠하다.
주말에 손을 놓기가 아쉬워서 조금씩 하던 과외는 가게가 느슨한 틈에 조금씩 학생이 늘어서
내가 "왜 이러지 "하고 놀랄 따름이다.
아이들과의 시간이 반갑고 고맙고 신선하기도 하다.
일요일에는 가뿐하게 일어나서 집을 나선다.
가게에 한 시간 정도 일찍 나와서 옆 카페의 맛있는 이른 아침 커피 한 잔과 그날 수업 내용을 뒤적거리면서 시작하는 나의 일요일 아침은 일주일 동안 잠잠했던 가게의 매출과 손님 생각을 조용히 가라앉힌다.
이제 중3을 건너서 고등학생이 된 앳된 학생과 벌써 움직임에서 "나 공부 좀 해"하는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는 중학생 그리고 언니 대신 들어온 혜원이.
고등 언니들 수업을 마친 나는 너덜너덜하다.
글쎄 잘 모를겠지만 똑같은 것을 싫어한다.
책도 학생의 취향을 보태서 다 다르다.
그러니 수업 때마다 여유가 없고 정신을 놓을 수도 없고 어느 정도의 긴장감을 갖는데
고등 언니들 수업을 마치고 당당하고 새침하게 늘 활짝 웃으면서 들어오는 혜원이를 보면 웃음이 난다.
초등학교 6 학년.
고3 과외를 십여 년 했고 중학생도 그다지 조금 해봤는데 초등이라.
흥미진진 긴장도 진진이다.
혜원이가 의자에 앉자마자 간첩과 같은 목소리로
"우리 이번 시간은 놀아 볼까요?"
유혹적이다.
난 담담하게 "싫어"라 대답하면 피시식 웃으면서 "아이 참"
난,
이쁘지도 젊지도 그렇다고 말을 이쁘게도 배려심 있는 정감도 없는데
아이들이 내가 웃기다(?)고 한다.
이 부분은 나도 신기하니까 설명을 할 수 없다.
예전에 남자 고등학생에게 " 내기 어디가 맘에 들어서 그리 웃으면서 오느냐" 물어보니
" 몰라요. 소개팅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냥요"
라고 대답해서 나도 어쩔 수 없이 웃었었다.
혜원이가 가족여행으로 일본을 다녀와서 가방에다 매주 다른 젤리를 챙겨서 들고 와서는 설명을 해 주면서
나눠 줬었다.
젤리를 챙겨 온 혜원이가 재미있었고 그 젤리가 너무나도 좋았던 나도 진심으로 좋았다.
50 넘은 선생과 초등학생이 영어책을 앞에 두고 젤리를 행복해했었다.
나는 수업 스피드가 빠르다.
일단 시작해서는 스피드를 높여서 아이들이 정신없게 주어진 분량을 다 할 수 있게 하고 후반이 되어서야 정리를 하고 나름의 여유를 주는 게 나의 버릇인데 그래서인지 여학생들은 아침에 곱게 빗은 머리가 수업 끝무렵에 엉망으로 헝클어 저 있기 다반사이고 책상 위에 놓인 초콜릿을 폭풍 섭취한다.
아이들에게는 버거운 수업량과 형식인데 혜원이는 무리 없이 어쩌면 가장 우수하게 소화하고 있다.
영어를 하루 놀아보려는 그녀의 소망에도 불구하고 두 번 읽으라고 했다가 일곱 번 읽으라고 시키는 선생의 주장에도 숙제가 많다고 하는데 단어도 가장 잘 알아오고 공부할 게 너무 많다고 투덜투덜거리는 혜원이 옆에서
"다음 시간부터는 문법도 나가 보자" 하는 선생의 말에도 일단은 "네"라고 답해줘서 고맙다.
아이들과의 수업은 순간순간의 묘미이다.
문제를 말이 안 되게 풀 때에도 그 말 안 됨이 어이없어서 웃고 잘 풀면 뿌듯해서 웃고.
혜원이가 수없이 끝날 무렵에 나에게
"선생님 나 끝나고 중학생 언니 수업이죠?"
" 어"
"언니가 밖에서 서있었어요 나 조금 일찍 끝나도 되는데"
" 들어오라고 하면 되지 넌 가만히 있어라. 머리 쓰지 말고 쉬어"
또 좋다고 웃는다.
수업을 쉬자고 계속 요구할 것이고 숙제도 매번 나와 거래를 시도하겠지만,
혜원이는 잘 따라와 준다.
요새 혜원이는 영어로 말하려고 아는 단어를 이어서 재미있는 문장으로 내게 말을 한다.
흥미진진한 녀석이다.
혜원이는 핑크매니아이다.
베개인지 필통인지....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