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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 술샘 Aug 28. 2023

왜 배워야 해요?

엄마 나도 배우면 수영 잘할 수 있나요?

아이들 배움의 선택은 누구에게 있을까?

시기마다 다르겠지만, 유년기에는 대부분 부모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추천하는 게 일반적이다.


일하는 엄마의 빈자리, 아이를 돌보는 부모님의 수고를 조금 덜어주고자 어린이집을 다니던 5세 아이에게 신기한 한글나라 프로그램을 시킨 적이 있다. 예쁘고 친절한 선생님이 집으로 찾아와서 책도 읽어주고, 놀이도 함께하는 신기한 아기나라 프로그램을 할 때는 정원이가 아주 좋아했었다.  그런데 신기한 한글나라로 한글을 공부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눈치였다.


"어머니, 정원이는 잠시 교육을 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담당 선생님의 말이었다.

한글을 가르쳐주고 글을 읽어보라 하니, 정원이가 책을 덮으며 이렇게 얘기했단다.


"선생님이 읽어 주세요"


이런 상황이 반복되니, 오히려 한글에 대한 부정적인 경험이 쌓일까 봐 나도 그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상황이 되면 어른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공부를 싫어한다는 둥, 한글을 빨리 못 익혀서 어떡하냐는 둥의 걱정을 하신다. 정원이의 나이 5세 때의 일이다. 정원이가 한글을 몰라 세상살이가 힘들 거라는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았다. 결국 7세 병설 유치원 시절 한 달 만에 한글을 쓰기까지 완벽하게 익혔다. 때가 다 있는 법이다.


한글나라 선생님을 돌려보낸 에피소드를 통해 정원이가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일에 대해서는 표현할 줄 아는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을 좋아하는 아들에게 수영을 배워보라고 했다.

집 근처의 계곡에서 주로 물놀이를 했던 정원이는 수영을 따로 배우지 않아도 불편함이 전혀 없었다. 어른의 무릎높이, 아무리 깊어도 어린아이의 허리를 넘기지 않는 곳이었다. 머리를 박고 물속을 들여다보고, 땅 짚고 헤엄치기에도 본인의 물놀이 실력은 부족함이 없었다. 마당에 펼쳐 놓은 대형 풀장의 높이도 1미터가 최대였다.



초등학교 1학년 8살이 되던 해에 지중해를 도는 크루즈 여행을 하게 되었다. 여행 가기 전에 배의 시설들을 미리 둘러보고 가장 마음에 들어 하던 곳이 수영장이었다. 여러 개의 수영장이 있다며 하루종일 수영장에서만 놀겠다고 했다.


크루즈 승선 후 안전교육을 끝내고 정원이는 바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수영장으로 가자고 했다. 나는 물보다는 선베드를 즐기는 편이니 책 한 권 챙겨 정원이와 배의 위층에 있는 수영장을 찾았다. 미리 살펴본 대로 여러 개의 수영장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하나씩 탐색하기 시작했다. 유아용 풀과 성인용 풀이 있었다. 그리고 중간에 하나씩 따뜻한 물의 자쿠지가 있었다. 선베드에 앉아 있는데, 이리저리 살피던 정원이가 난감한 얼굴을 하고 나타났다.


유아풀 vs. 성인 풀
너무 깊어 들어갈 수가 앖어요!‘ㅜ


"엄마, 저기는 너무 얕아서 시시하고, 여기는 너무 깊어서 발이 안 닿아"


그러고 보니 어른인 나에게도 가슴까지 오는 곳부터 점점 더 깊어져서 2미터 깊이까지 들어가는 수영장이었다. 어쩔 수 없이 유아풀에서 조금 놀다가 시시하면 성인풀에 가서 살짝 발을 담그며 노는 정도로 수영장을 이용해야 했다.  그러던 중 정원이가 한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정원이보다 한참 작은 아이들이 성인풀에 뛰어들고 수영을 즐기는 모습을 본 것이다.

'저 아이들 나보다 키도 작은데, 어떻게 깊은 수영장에서 놀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같이 여행했던 비비 이모가 아침마다 수영을 하는 모습을 보고 멋지다고 했다.

우리의 여행이 끝나갈 무렵 정원이가 수영을 배우고 싶다고 이야기를 꺼낸다.


"엄마, 나도 수영 배우면 싶은 수영장에서도 겁내지 않고 수영할 수 있을까?"

"그럼, 넌 물을 겁내지 않고 좋아하니까 금방 배울 수 있을 거야"


한국으로 돌아가서 집에서 가까운 수영장을 알아보았다. 부곡하와이에 매일 수영을 가르쳐주는 강좌가 있었다. 매일 한 시간씩 수영 강습을 받기 위해 2시 정도 어른들의 수고가 필요했다. 셔틀버스를 따로 운영하지 않았기에 수업시간에 맞추어 데려가 주고, 기다렸다가 다시 데리고 와야 했다. 부모님이 함께 살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정원이는 수영하는 것을 너무 재미있어해서 하루도 수업에 빠지지 않았다. 그렇게 6개월을 배우고 나니, 배형, 자유형, 접형, 평형 모든 수영의 방법을 익힐 수 있게 되었다.

이쉽게도 6개월의 수강이 끝나고 부곡하와이는 문을 닫게 되었다.  정원이의 추억의 장소가 되었다.


이렇게 수영을 잘 하고 좋아하니, 주변에서는 수영선수 하라고 성화다. 부곡화아이 수영장이 문을 닫게 되었을 때, 미침 창녕군에 군립수영장이 새로 개관을 했다. 정원이의 수영실력에 맞춰 반을 선택하다 보니 선수반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반에 있는 선수들과 같이 너무 혹독하게 수영을 하니 힘들어했다. 정원이에게는 수영은 재미있는 물놀이였다. 이후 강습은 그만두고, 친구들과 원할 때마다 자유수영을 다녔다.

이미 물에서 자유로워졌으니, 언제든 원하는 만큼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무엇을 할 때는 누가 정하는 것일까? 어떤 것에 호기심이 느끼는 단계가 있다. 아직 시작하고 싶을 때는 아닌 것이다. 그러다가 해 보고 싶다는 때가 온다. 바로 그때 정보를 준다. 아이가 원하면 조언도 한다.

한글을 거부했던 다섯 살 이후로 내가 먼저 제안한 것은 몇 가지 되지 않는다. 대부분은 본인이 먼저 이야기를 꺼낸다.


"엄마, 기타 배워볼까?"

"엄마, 농구도 재미있겠지?"

"엄마, 방송댄스도 배우면 신낱 것 같은데, 살 좀 빼고 시작하면 좀 더 멋질 것 같지?"


정원이가 이야기라는 모든 것들 다 해보겠다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지금은. 정원이와 이런 대화를 나눌 때 나는 주로 듣는다.


"그거 재미있겠다!, 멋지다!"

"어디서 배울 수 있어?"


검색은 아이들이 더 잘한다, 특히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이 있을 때는 어떡해서든 찾아낸다.

정원이에게 말하지 않고 나도 나름대로 알아보기는 한다. 이후 나에게 조언을 구할 때 그 정보를 공유한다.

'엄마도 네가 흥미로워 하는 것에 관심은 가지고 있어, 너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거야'라는 나의 마음이다.


정원이가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것 중에 내가 꼭 하자고 하는 것이 있다. 외국어와 책 읽기이다. 이 두 가지의 중요성과 효용을 이야기하며 어떤 반론도 제기할 수 없으니 따르고 있다. 앞으로도 외국어와 책 읽기 만큼은 계속해서 강요할 생각이다.


모든 선택과 결정에는 자유와 책임이 있다. 무조건 아이가 하자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충분히 알아보고 고민해 본 후에도 꼭 해야겠으면 하는 것이다. 내가 하자고 하는 것도 그렇다.


이렇게 쌓아온 시간들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정원이와의 대화가 즐겁다. 부산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는 정원이와 자주 통화하고 소통한다. 사춘기의 부모의 사랑은 무관심한 사랑이라는데, 어느 시기라도 믿고 기다려주는 때가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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