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포터 교복 입고 싶어요.
올랜도는 테마파크의 성지이다. 디즈니월드, 유니버설 스튜디오, 씨월드, 레고랜드, 나사까지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에게도 즐거운 도시이다.
2016년 겨울, 추운 뉴욕을 경유해 따뜻한 남쪽 올랜도로 여행을 갔다. 일주인간 머물면서 매일 다른 테마파크로 출근을 했다.
디즈니 월드는 모두 4개의 공원이 있다. - 매직킹덤, 애니멀킹덤, 앱콧, 할리우드 스튜디오 4개의 공원을 모두 돌아보려면 디즈니월드만 하더라도 최소 4일이 필요하다. 일정상 한 개만 꼭 선택해야 했기 때문에 신데렐라 성이 있는 매직킹덤을 갔다.
올랜도 유니버설 스튜디오도 두 개의 공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디를 어떻게 즐긴 것인지에 따라 티켓의 종류도 다양하다. 우리는 두 개의 공원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파크 투 파크 이틀권을 샀다. 이 티켓으로 유니버설 스튜디오와 아일랜드 오브 어드밴처 구간을 호그와트 급행열차를 타고 이동할 수 있다. 이틀을 꽉 채워 돌아보더라도 모든 어트랙션을 즐기기에는 시간이 많이 부족하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시간도 만만치 않다. 유니버셜의 여러 어트랙션 중에서도 가장 으뜸은 단연 해리포터이다. 이틀 동안 가장 오랜 시간을 보냈던 곳도 바로 이곳이었다.
여행을 앞두고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간다는 이야기를 들은 정원이는 해리포터를 찾아보며 마법의 주문을 외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본인이 사고 싶은 지팡이도 미리 고르느라 고심했다. 해리포터의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이 사용하는 지팡이는 무려 44종이나 된다고 한다. 무엇을 살지 몇 가지를 고르고는 막상 올랜도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샵에 가서도 한잠을 고민하고 고르더니, 악당 볼드머트의 지팡이를 샀다.
지팡이를 사고 샵을 나오려는데, 정원이의 눈길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해리포터의 교복이 걸려 있는 쪽이었다.
"엄마, 나 이거 한 번만 입어 봐도 돼"
"응, 그래?"
그렇게 대답하면서 슬쩍 가격표를 보았다.
정원이가 산 볼드머트의 지팡이도 이미 5만 원이 넘는 가격이었는데, 교복은 얼핏 환산해도 15만 원이 넘는 것 같았다.
정원이와 함께 여행하며 정한 규칙이 몇 가지가 있다. 그 중 하나가 용돈에 관한 것이었다. 일주일을 기준으로 5만원을 현지 돈으로 환전해서 주고, 사고 싶은 거나 먹고 싶은 간식을 사 먹으라고 한다. 이미 지팡이 하나의 가격이 5만 원이 넘었기 때문에 쓸 수 있는 돈의 예산이 넘었다는 것을 아는 정원이가 나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본 것이다.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한 번이라도 방문해 본 사람은 해리포터 구역의 분위기를 알 것이다. 영화 속 등장인물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교복과 머플러를 입고 한 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있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오히려 교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더 낯설게 느껴진다.
일단 교복이 있는 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정원이에게 한번 입어보라고 했다. 꼭 사줘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행거에 걸린 교복을 빼내어 입고 한 손에는 지팡이를 드니, 영화 속 작은 마법사가 뛰쳐나온 듯했다. 그 모습이 사랑스러워서 벗으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잠시 고민은 했다. 정원이에게 제안을 했다.
"정원아, 교복 가격이 비싸지만 네가 너무 멋져서 엄마가 꼭 사주고 싶은데, 미션이 있어"
"응 나도 꼭 입고 싶어, 미션이 뭐야?"
"네가 이 옷을 입은 다른 사람들과 열 장의 사진을 모두 다 찍으면 미션 완료 하는 거야, 성공하면 엄마가 사주는 거고, 실패하면 한국에 가서 네가 모아놓은 용돈으로 옷값을 엄마한테 줘야 해, 어때?"
잠시 고민한 정원이는 그러겠다고 했다.
"Can I take a picture with you?"
이렇게 말하고 사람들과 함께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영어를 하지 못했던 정원이는 그저 엄마가 하는 소리를 듣고 문장을 외어 말을 걸어본다.
교복을 입은 사람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부끄러워서 잘하지 못하다가 조금씩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 자긴 돈을 엄마에게 주고 싶지 않알으니까. 다섯 번째 사진까지 재미있게 찍었고, 하나씩 늘려 나갔다. 마지막 한 장을 남겨 놓고 정원이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공원이 끝날 시간이 다 되어 모두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우리도 그 행렬에 있었다.
"엄마, 한 장만 더 하면 되는데...."
금방 울음이 타질 것 같았다.
모두 밖으로 바쁘게 걸어 나가고 있어 사람들을 붙잡기가 쉬지가 않았다. 바로 그때 한 일행이 보였다. 교복을 입고 있지는 않았지만 손에 들고 있는 것 같았다. 정원이의 사정을 이야기하니, 벗었던 교복을 다시 주섬주섬 입고서 정원이와 함께 포즈를 취해 준다. 열 장의 사진 미션을 완성하고 나니 걱정 가득하던 정원이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이다.
대가를 치르고 얻게 된 해리포터의 교복은 이미 많이 커버린 정원이에게 맞지 않지만, 여전히 옷장에 잘 걸려 있다. 이제 그 옷은 해리포터 교복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옷이 되었다.
가끔 여행에서 정원이에게 내주는 미션을 보고, 사람들이 정원이를 안쓰럽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정원이가 매 순간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기를 바란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치러야 하는 대가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기를 바란다, 처음에는 어려웠던 일들이 반복을 통해서 쉬워지게 되고, 익숙해져서 자유롭게 즐기고 있는 자신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냥 쉽에 돈을 지불하고 사 줄 수 있었던 옷 하나에 조금 의미를 담고 싶었던 엄마의 마음이 전해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