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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 술샘 Sep 01. 2023

다시 가야 하는 멕시코

다 끝내지 못한 짚 라인

여행을 많이 다닌 정원이에게 사람들이 자주 하는 질문이 있다.

"어디를 다시 가고 싶어"

"멕시코요, 다시 꼭 가야 해요."

이유가 궁금했다.

"정원아, 왜 거기를 다시 가고 싶어?"

"거기 가서 꼭 하고 와야 할 것이 있어"

정원이의 대답을 듣고, 멕시코 여행의 기억이 났다.


2017년 1월 로스엔젤러스에서 출발하는 크루즈를 타고 멕시코 여행을 했다. 

크루즈 여행 중 기항지에 내리게 되면 지역 관광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멕시코 크루즈의 기항지는 유럽 크루즈처럼 중세시대의 문화유적을 보는 도시가 아니었다. 자연환경을 그대로 누리는 휴양지에 정박을 하기 때문에  액티비티 위주의 관광을 하였다. 


멕시코 힐리스코주에 있는 휴양 도시, 푸에르코  바야르타에 기항하는 날에 우리는 노갈리토 에코파크로 집라인을 타러 갔다. 무려 11번을 타고 산을 건너는 코스였고, 마지막에는 600미터를 건너가는 코스였다. 정원이도 나도 재미있을 것 같아, 신청을 하고 집라인을 타기 시작하였다. 처음 타 보는 집라인이었지만, 안전 요원들이 우리와 함께 했기 때문에 큰 걱정은 없었다. 


마지막 600미터 코스를 앞두고, 열 번째 라인에서 정원이가 멈추었다. 잔뜩 겁을 먹은 얼굴이었다. 집라인의 중간에 머물러 있는 정원이에게 안전 요원이 가서 다리 사이에 정원이를 안고 건너왔다. 


"정원아, 계속할 수 있겠어?"

"엄마, 그만하고 싶어."


정원이를 바라보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장 높은 곳에 올라온 정원이는 처음으로 높은 곳에서의 공포를 느낀 것 같았다. 집라인을 시작할 때 신이 난 얼굴이 더 이상 아니었다. 끝까지 해내야 한다고 밀어붙이고 싶지 않았다. 


"엄마는 마지막 코스까지 타고나서 우리는 점심 먹는 곳에서 만날까?

"응, 엄마, 내가 기다리고 있을게"


낯선 곳에서 엄마와 잠시 떨어져 있어야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을 텐데, 내가 마지막까지 집라인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정원이는 안전 요원을 따라 산 정산의 레스토랑으로 이동을 했다. 집라인의 모든 코스가 끝나면 산 아래 계곡으로 내려가서 당나귀를 타고 다시 정산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는 일정이었다.


코스를 마치고 레스토랑으로 가니, 정원이의 표정은 한결 나아진 듯했고,  나초와 퀘사디아로 점심을 먹으며 투어를 마무리했다. 그렇게 일정을 끝내고 왔다. 이후 한국에 와서 통영에 집라인을 타러 갈 기회가 있었는데, 해 보겠다고 올라가서는 끝내 타지 못하고 내려왔었다. 높은 곳에 대한 공포가 있는 것 같았다. 정원이는 높은 곳에 올라가는 놀이기구도 무서워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친구들과 한두 번 경험을 하더니, 이제 높은 곳에 대한 공포는 없어진 듯했다.


"엄마, 그때 멕시코에서 왜 집라인 끝까지 타라고 안 했어?"

"네가 너무 무서워하는데, 그러라고 할 수 없었어. 재미있으라고 타는 건데, 무서운 기억이 되면 안 되잖아"

"맞아, 엄마가 억지로 타라고 했으면 정말 힘들었을 거야, 그런데 다 끝내고 나도 당나귀 타고 올라오고 싶었는데, 너무 아쉬워, 그래서 다시 거기 가야 해."


왜 정원이가 멕시코에 다시 가고 싶어 하는지 이유를 알게 되었다. 정원이에게 끝내지 못한 집라인이 숙제처럼 남아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때 했던 나의 결정에는 후회는 없다. 부모들이 가끔 아이들이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힘들어하는지는 생각하지 못한다. 


'한 번 시작했으면 무조건 끝을 내야 한다'

'남자면 절대 무서워하면 안된다'

'포기하면 실패하는 거다'

'해 보면 다 괜찮아진다'


다 괜찮아지지 않는다. 남자라도 무서운 거 있을 숫 있다. 포기한다고 해서 실패하는 것  아니다. 도전에는 성공 아니면 성장의 결과가 있을 뿐이다. 


정원이는 스스로 한 결정에 대한 대가로 다시 멕시코를 꼭 다시 찾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또 비슷한 경우가 생기면 조금은 더 용기를 내 볼지도 모른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지난여름 정원이와 함께 했던 요트 여행에서 정원이는 높은 절벽에서 바다로 뛰어내리는 도전을 했고, 성공했다. 키티라 섬에 도착해서, 수영을 할 수 있는 바다 쪽으로 갔다. 모래나 자갈이 있는 해변이 아니었다. 바위 중간중간 타월을 펼치고 쉬거나 더 높은 바위 절별애 올라가 다이빙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우리도 물 가까운 운 곳에 자리를 잡았다. 한참을 절벽에서 다이빙하는 아이들을 보더니 일어섰다.


"엄마, 나도 다이빙 고 올게"

먼저 부추기지 않았다. 정원이의 결정을 기다렸다. 그리고 응원해 주었다.

물의 깊이, 뛰어내릴 곳의 상태를 살피더니 위쪽으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뛰어내렸다. 바닷속으로 수욱 들어갔다가 나오는 정원이의 얼굴을 보니, 웃고 있었다.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이후 몇 번을 더 뛰어내리고 우리는 다시 요트로 돌아갔다.


배로 돌아와서, 저녁을 먹으면서 정원이가 말한다.

"엄마, 나 아까 다이빙 정말 잘한 것 같아. 안 하고 왔으면 또 후회했을 거야, 집라인 때처럼"

"응 너 오늘 정말 멋졌어, 엄마가 영산 다 찍어 놨잖아"


사람들에게 자랑하는 나를 말리지 않는다. 경험은 또 다른 경험을 만든다. 아쉬움이 있어야 도전할 수 있다.

정원이가 멕시코의 숙제는 이제 잊어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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