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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백수 채희태 Mar 19. 2023

<더 글로리> 보고 속이 뻥~ 뚫리셨나요?

우리가 문동은의 복수를 보며 놓친 것은?

먼저 고백하건대,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 중 하나는 대중들의 관심을 끌어 조회수를 올려보고자 하는 모태관종의 얄팍한 사심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필터버블'에 갇혀 있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최근 많은 매체와 대화에 등장하는 가장 뜨거운 주제는 바로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인 것 같다. 모두가 각자의 생각을 담아 <더 글로리>에 대한 평을 쏟아낸다. "역시 김은숙이다", "속이 다 후련하다"는 찬사부터 등장인물에 대한 꼼꼼한 분석까지... 모두가 같은 주제로 이야기를 할 때, 난 오히려 말을 아끼는 편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나만의 생각을 숙성시킨다.


역설적으로 앞의 고백과는 달리 내가 <더 글로리>에 관해 굳이 글을 쓰고 싶지 않았던 이유 또한, 인기에 영합하고 싶지 않은 모태관종의 얄팍한 자존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넘들이 모두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는데 굳이 나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글로리>에 관한 수많은 찬사가 난무하는 가운데, 우리가 문동은의 복수에 속 시원해하고 있는 사이 놓치고 있었던 사소한 문제의식 하나를 끄ㅈ, 아니 꼬집어 내 보고자 한다. 내 생각이 제대로 숙성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1. 해피엔딩이냐, 새드엔딩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현실에 기반했으되, 현실 같지 않은 드라마의 끝은 딱 두 가지다. 해피엔딩이냐, 새드엔딩이냐... 이름 자체가 세계적인 바람둥이인 '섹스피어'의 4대 비극은 <햄릿>, <맥베스>, <오셀로>, <리어왕>으로 알려져 있다. 난 어렸을 때부터 궁금했다. 왜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안에 주인공을 모두 죽여버리고 끝낸  <로미오와 줄리엣>이 들어 있지 않은 것일까? 그렇다면 <로미오와 줄리엣>은 해피엔딩이란 말인가?


김은숙 작가의 인기 비결은 현실과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판타지 사이를 기가 막히게 스토리로 연결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즉, 새드엔딩이 뻔한 현실 속에서 판타지한 해피엔딩을 끌어내는 능력이 그 누구보다 탁월하다. <더 글로리> 또한 '학폭'이라는 지옥 같은 현실에서 시작해 학폭 가해자에 대한 완벽한 복수라는 판타지스러운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는다. 판타지 드라마, <더 글로리>에 등장하는 유일한 리얼리티는 "아니, 왜 없는 것들은 인생에 권선징악, 인과응보만 있는 줄 알까? 라며 일갈한 박연진의 대사 아닐까?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것이 바로 리얼리티다!


현실의 리얼리티와는 무관하게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더 글로리>는 해피엔딩의 새로운 전형을 보여준다. 학폭을 진두 지휘했던 '박연진'은 자신이 놓친 억울함을 궁금해하며 깜방에서 썩어갈 것이고, 박연진과 끕이 맞았던, 누가 봐도 개새끼인 '전재준'은 하도영에 의해 시멘트 속에 묻혔다. 용서를 구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굳게 믿었던 약쟁이 화백 '이사라'와, 제2의 문동은이 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 쳤던 최혜정과, 학폭의 행동 대장이었던 손명오뿐만 아니라, 문동은의 학폭에 크고 작게 가담했던 모든 이들이 응분의 대가를 받았다. 그리고, 우리는 <더 글로리>를 보며 지옥의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는 현실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사실 지옥의 본질은 현상이 아닌 모든 사람이 얽히고설켜 있는 구조 속에 꼭꼭 숨겨져 있다. 나 또한 그 지옥과 직, 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기에 지옥의 본질을 끄집어내는 것이 쉽지 않다. 그렇게 우리가 뭉개며 살아가고 있는 지옥의 본질은 다름 아닌 '계급'이다. 대부분의 문화 콘텐츠는 현상을 자극적으로 표현해 냄으로써 매우 세련되게 계급의 본질을 은폐한다. 그렇다고 본질을 다루는 문화콘텐츠가 아예 없다는 것은 아니다. '냄새'를 통해 계급을 건드린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나, 계급을 '게임'으로 풀어낸 황동혁 감독의 <오징어 게임>, 그리고 '배트맨'이라는 영웅 뒤에 숨어 있었던 빌런의 탄생과정을 그린 <조커>는 계급의 본질을 파헤친 대표적인 문화 콘텐츠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이제부터 <더 글로리>가 그럴듯하게 숨겨 놓은 계급의 본질을 한번 파헤쳐 보겠다.  


2. 나이스한 개새끼 '하도영'과 소름 끼치는 소시오패스, '강영천'

<더 글로리> 시즌2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등장인물은 다름 아닌 '하도영'인 것 같다. 하도영이 어떤 새끼냐고 묻는 전재준의 질문에 최혜정은 "나이스한 개새끼"라고 답한다. 시즌1에서 개새끼스러움을 살짝 보여주었던 하도영은 시즌2에서 나이스한 매력을 한껏 발산한다. 하도영을 중심으로 본다면 <더 글로리>는 하도영이라는 캐릭터의 나이스와 개새끼 사이를 촘촘하게 그려낸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일단 왜 하도영이 나이스한 개새끼인지 애매하고도 모호하게 설명해 주는 장면은 <더 글로리> 4화에 등장한다.


하도영의 운전기사는 선물로 들어온 와인을 차에서 꺼내기 위해 잠시 우산을 하도영에게 맡긴다.

나이스와 개새끼 사이 그 어딘가에 있는 하도영
운전기사 : 죄송하지만 잠시 우산 좀 부탁드립니다. 비서실에서 챙겨드리란 와인이 조수석에 있어서요. 한진마루 신대표님이 보내셨답니다.
하도영 : 아, 가져가 마셔요. 그 신대표가 보낸 거면 백 이하는 아닐 겁니다.
운전기사 : 네? 아닙니다, 대표님.
하도영 : (우산 든 손과 핸드폰 든 손을 교대로 바라본 후) 내가 지금 손이 없어서...
운전기사 : 그렇다고 이 귀한 걸 제가 어떻게... 전 이런 거 마실 줄도 모르고 정말 괜찮습니다, 대표님.
하도영 : 괜찮다는 말은 내가 할 말이고... 이미 했고...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는데...
운전기사 : 네?
하도영 : 그럼 들어가는 길에 편의점에서 만 원짜리 와인을 한 병 사요. 치즈도 좀 사고, 그 만 원짜리 와인을 먼저 마시고 그걸 마셔요. 그럼 마실 줄 알게 될 겁니다. 내일 봅시다.

내가 운전기사였다면 기분이 어땠을까? 아싸~ 하며 와인을 집에 가지고 들어와, "여보, 대표님이 백만 원짜리 와인을 주셨어~"라며 기뻐했을까? 아마 진심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하도영을 불쾌하게 만든 이 사건으로 인해 운전기사는 더 이상 <더 글로리>에 등장하지 않는다.


이제 자신을 치료한 의사를 죽인 소시오패스, 강영천에 대해 살펴보자. 강영천은 <더 글로리> 15화에서 자신을 살려준 아버지를 왜 죽였냐는 주여정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한다.

강영천 : 모두가 수술을 거부했어요. 팔은 부러져서 정말 죽겠다 싶게 아픈데, 피는 철철 나는데, 실인마라고, 그때 아버님이 들어오셨어요.
주성학(주여정의 아버지) : 제가 합니다. 수액 다세요. 그 수갑 좀 풀어주세요. 이 상태로는 처지 못 합니다.
의사 1 : 원장님, 하지 마시죠. 다른 병원으로 보내시죠.
주성학 : 그럼 그 병원은? 그 병원 의사들은? 죄를 묻는 건 법원이 할 일이고, 우린 살려서 법원으로 보내야지. 누가 여정이한테 전화 좀... 오늘 저녁 같이 먹기로 해서 오는 중일 거야. 그냥 집으로 가라고, 라면 먹지 말라고... 걔 라면 왜 그렇게 좋아하나 몰라...
강영천 : 아, 난 죽어가고 있는데 라면 먹지 말라니? 제 입장에서는 너무 모욕적이지 않나요? 아무튼 수술이 시작됐고, 난 중간에 마취가 깼는데, 한쪽 팔이 자유로운 거예요. 메스도 가깝고... 그 순간 누가 보고 싶었는지 아세요? 라면 좋아하는 원장 아들이요. 그래서 그랬어요. 아버지가 죽으면 올 테니까, 메스로 쓰윽~ 주여정 선생님이 나한테 달려오라고...
강영천을 맡았던 '이무생'의 연기에서 소름이 돋았던 장면

나는 이 두 장면에서 "어쩔 수 없는 계급의 본질"을 느꼈다. 하도영과 주원장의 의도와 무관하게 - 피해자로 하여금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이 들게 하는 일체의 접촉이 성추행이듯 - 운전기사와 강영천이 그들의 언행에서 모욕감을 느꼈다면, 그것은 모욕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모욕이 오고 간 맥락과 강도가 달랐기에 운전기사는 어리둥절 그저 와인을 챙겼고, 강영천은 메스를 들었다. 마치 송강호가 자신의 냄새에 코를 막고 돌아서는 이선균의 등에 칼을 꽂았듯이, 그리고 해피한 정신병을 앓고 있던 조커가 넘을 수 없는 계급의 벽을 인식한 후 행복을 포기하고 고담시의 빌런이 되었듯이...


모욕에 대한 명쾌한 정의는 약쟁이 화백 '이사라'가 내려준다. 모욕을 받는 입장이 아니라, 모욕을 주는 입장에서 내린 정의라 더욱 신뢰가 간다.

모욕의 본질을 일러주는 이사라의 말투에서 친구 최혜정에게 계급의 본질을 일깨워주려는 안타까움마저 묻어난다.
넌 '씨발', '존나'만 욕이지? 아니야~ 모욕도 욕이야, 혜정아!


3. 복수는 판타지에서만 가능하다?

드라마에 복수라는 키워드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법과 제도가 사회적 약자의 억울함을 제대로 풀어주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심지어 박찬욱 감독은 <복수는 나의 것>, <올드 보이>, <친절한 금자씨>로 이어지는 복수 3부작을 선보이기도 했다. 사실 이 시대를 지탱하고 있는 또 다른 신화인 법과 제도는 계급으로 인해 발생하고 있는 다양한 억울함을 세련되게 은폐하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법과 제도는 현재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 작동하고, 법과 제도가 지키려고 하는 현재의 질서는 지극히 불공정하고 불평등하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왜 하필 그렇게 죽어서, 후대에게 법과 질서에 순응해야 한다는 쓰잘데 없는 교훈을 남겼는지... 플라톤의 <크리톤>을 읽어보면 소크라테스가 죽어서까지 남기고자 했던 교훈이 또 그게 아니긴 하지만...

어쨌든 <더 글로리>는 법과 제도가 가로막고 있는 복수를 완벽하게 해 냄으로써 시청자들에게 통쾌한 대리만족을 선사했다. 글을 맺기 전에 <더 글로리>를 보는 내내 진짜 궁금했던 한 가지를 말해야겠다. 드라마 속 주인공이랑 비슷한 캐릭터들이 현실 속에도 없지 않을 텐데... 현실 속 박연진, 전재준, 이사라, 최혜정, 손명오는 드라마, <더 글로리>를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들에게 감정이입을 했을까, 아니면 다른 시청자들과 똑같이 욕을 하면서 보았을까? 그리고, 이런 건 나만 궁금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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