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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백수 채희태 Mar 08. 2023

대한민국 입시교육에 면죄부를 주고 끝난 <일타 스캔들>

<일타 스캔들> 최종화 후기

어느덧 중견 배우 전도연과 달달한 호감 배우 정경호가 주연한 tvN 드라마, <일타 스캔들>이 20%에 육박하는 수도권 시청률을 기록하며 "해피하게" 막을 내렸다. 드라마는 해피하게 끝났지만,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이용한 입시교육도 해피할 수 있을까? <일타 스캔들> 최종화를 보며 난 작가가 드라마 흥행몰이를 위해 대한민국을 지옥으로 내몰고 있는 입시교육을 제대로 이용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장이 되어 버린 교육의 새로운 쓸모랄까? 하긴, 제작비 - 광고비 - 시청률이라는 순환의 고리 안에 갇혀 있는 드라마에 뭘 더 바라겠는가!


아무리 드라마지만 따질 건 따져야겠다. 해피한 엔딩을 보며 정신줄을 놓고 있다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가둔 인질범을 동정하게 되는 "스톡홀름 신드롬"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게 바로 허구적 상황극에 영혼까지 이입하게 만드는 드라마의 무시무시한 힘이기도 하다. 자, 이제 <일타 스캔들>이 우리를 어떻게 홀렸는지 하나씩 따져 보자!


천만 원만 있으면 시험지를 빼돌려도 무죄?

<일타 스캔들>에는 자녀의 입시를 위해 빌런으로 살아가는 다양한 학부모들이 대거 등장한다. 가장 먼저 대형 로펌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변호사, 선재 엄마를 소개한다. 자식을 명문대에 보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선재 엄마로 인해 선재의 형, 희재는 결국 은둔형 외톨이로 살아간다. 첫째 아들이 기대에서 이탈하자 선재 엄마는 둘째 아들, 선재에게 모든 기대를 몰빵하며 급기야 내신 1등급을 받게 하기 위해 교무부장으로부터 시험지를 빼낸다. 악마와의 거래를 뿌리치지 못한 선재는 기말고사에서 전교 1등을 하지만, 이내 죄책감을 이기지 못해 학교에 자수를 한다. 그리고, 법원은 시험지를 빼낸 선재 엄마에게 무죄와 다르지 않은 벌금형을 선고한다.


피고인의 시험지 유출 행위로 공교육의 공정성을 훼손하고 정직하게 노력하는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를 준 사실이 인정되나 피고인 자녀의 자백으로 즉시 그 피해를 복구하였고, 피고인이나 피고인의 자녀가 이 사건으로 직접적 이익을 얻지 않은 점, 피고인이 이후 죄를 자백하고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하여 피고인에게 (겨우) 벌금 1천만 원을 선고한다. 땅땅땅!
차라리 무죄를 선고해라!

<일타 스캔들> 속 법원의 판결은 설마 들통날 경우를 대비할 보험금 천만 원만 있으면 얼마든지 시험지를 빼돌려도 된다는 의미는 아닐까? 애니웨이… 이 일로 큰 깨달음을 얻은 선재 엄마는 희재와 화해를 하고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무사히 로펌에 복귀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변호사질을 이어 간다. 작가는 드라마를 해피엔딩으로 끝내기 위해 현실의 개연성 따윈 개에게 줘 버린 것 같다.


지실장은 죽어 마땅한 사이코패스일까?

교육이 단지 드라마의 흥행몰이를 위해 이용당했다는 가장 명백한 증거는 지실장의 자살을 바라보는 드라마의 태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 드라마 초반, 일타 강사 최치열은 선재와 비슷한 일로 10년 전 자살한 제자로 인한 트라우마로 섭식 장애에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살아간다. 그런 최치열의 곁을 지키던 지실장은 알고 보니 10년 전 자살한 제자의 동생… 자신의 누나가 믿고 따르던 유일한 어른이었던 최치열에 대한 왜곡된 집착은 끝내 지실상을 자살로 내몰지만, 이 심각한 사건 또한 해피엔딩을 향해 질주해야만 하는 드라마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당한다. 그렇게 <일타 스캔들>은 입시교육이 가지고 있는 심각한 구조의 문제를 한낱 개인일뿐인 지실장의 자살로 갈음한다.


<일타 스캔들>은 교육이 가지고 있는 구조의 문제를 오롯이 한 개인에게 전가한다.

대한민국 학부모의 롤모델로 거듭난 수아임당!

해피엔딩에 대한 강박은 이야기의 개연성을 말아먹었다.

개인적으로 난 <일타 스캔들>의 최대 빌런은 지실장이 아니라 빵수아 엄마, “수아임당”이라고 생각한다. 오로지 딸의 입시를 위해 시종일관 없던 얘기를 지어내고, 있는 얘기는 왜곡시키며 학원과 학교를 주무르던 수아임당은 남편의 외도가 발각되는 설정을 통해 응징 같은 면죄부를 받은 후, 딸 빵수아를 명문대 의대에 합격시키며 최고의 학부모 롤모델로 거듭난다. 이쯤 되면 입시교육을 바라보는 작가의 주제 의식뿐만 아니라, 오로지 해피엔딩을 위해 마땅히 드라마가 해야할 사회적 가치 장치인 권선징악을 포기한 작가의 자질까지도 의심하지 아니할 수가 없다.


면죄부의 화령점정은?

대한민국 입시교육에 대한 최종 무죄 선고는 일타 강사 최지열과 현직 교사 전종렬이 술자리에서 내린다.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약물까지 복용하다 학원 수업 중 쓰러진 학생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일타 강사, 최치열과 현직 교사, 전종렬의 대화를 한번 들어보자.


현직 교사 : 맞아, 애들이 별 걸 다 먹더라고. 에너지 드링크에 고카페인 음료에 ADHD 치료제까지...
일타 강사 : 아휴, 근데 뭐 한편으론 이해가 돼. 아니 밥 먹고 공부밖에 안 하는 애들인데, 시험 한 번에 인생이 왔다 갔다 거리는 거잖아, 얼마나 쫄리겠냐~ 그 치킨 게임 같은 입시 시스템에 결국 나도 일조를 하고 있는 거고... 그걸로 내가 돈 벌어먹고 살고 있잖아~
현직 교사 : 별일이다, 뭘 새삼스럽게...
일타 강사 : 그러게, 뭘 새삼스럽게...
현직 교사 : 오버하지 마! 자의식 과잉이야, 인마~ 교육계나 부모들 인식 전반의 문제인데 일개 일타강사가 자각한다고 그거 뭐, 해결이 되냐?
일타 강사 : 일개 일타강사... 갑자기 현타 온다.
현직 교사 : 억울해할 거 없다. 일개 교사도 여기 있으니까...
그럼, 교육은 누가 책임지나요? ㅠㅠ

충분히 있을법한 이 짧은 대화를 통해 느껴지는 바가 적지 않다. 어쩌면 <일타 스캔들>이야말로 이 사회의 모습을 제대로 그려낸 리얼리티의 결정판인지 모른다. 우리는 모두 경쟁이라는 기둥 위에 올라탄  애벌레다. 기둥의 이름은 성공이고, 성공의 끝은 구름 위에 가려져 있어 아무도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없다. 그 기둥 안에서는 학생도 학부모도, 그리고 현직 교사도 일타 강사도 모두 똑같은 애벌레다. 다양한 애벌레들이 서로 엉키고 성켜 있어 아무도 그 기둥을 어쩌지 못한다.


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

입시교육 문제로 무겁게 스타트를 끊은 <일타 스캔들> 최종화엔 패배자는 등장하지 않는다. 시험지를 훔쳤든, 가짜뉴스를 퍼뜨려 이익을 챙겼든, 학부모들의 불안을 먹고 사는 학원 업자든, 그 학원을 통해 돈을 긁어 모으는 일타 강사든, 그리고 그 모든 교육의 문제를 방관하고 있는 현직 교사든 모두 해피엔딩의 주인공이 된다. 정말 드라마 같은 일이 현실에서도 벌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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