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사랑을 위하여], [은중과 상연], [폭군의 셰프] 등 말랑말랑한 드라마에 빠져 사느라 디플의 [북극성] 시청을 미루고 미루다 며칠 전부터 보기 시작했다. 무려 주연이 전지현과 강동원이지만, 드라마 표지가 주는 묵직함에 눌려 아마 본격적인 시청을 위한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던 듯하다.
드라마, [북극성]의 주요 키워드는 정치, 전쟁,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북한이다. 이 정도 키워드면 표지에 실린 두 주인공이 왜 그렇게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는지 짐작이 간다. 몇 화까지 갈지 모르지만 오늘은 5화 마지막 즈음에 나오는 미 국방장관의 대사가 바쁜 내 손길을 붙잡았다.
상황은 이렇다. 북한이 언제든 핵탄두를 날릴 수 있는 1만 톤급 핵 잠수함을 보유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한 미국은 북한에 대한 정밀 타격을 중국과 한국 대통령에게 통보한다. 자칫 3차 대전이 발발할 수도 있는 상황! 그 사실을 알게 된 우리의 대통령 '후보' 전지현은 전쟁을 막기 위해 미국의 북한 타격이 계획되어 있는 날 이 사실을 시민에게 폭로한다. 2003년 미국이 대량살상무기(WMD)를 빌미로 감행했던 이라크 전쟁처럼 북한의 핵잠수함 또한 실체가 없는 의혹이라는 사실과 함께... 수만 명의 이라크 군인과 민간인 학살로 끝난 이라크 전쟁에서 끝내 대량살상무기를 발견되지 않았다.
전지현의 활약으로 미국의 북한 타격은 주춤할 수밖에 없게 되었고, 이 상황을 지켜보는 미국의 태도가 매우 가관이다.
대통령 비서관: 앤더슨 뉴스가 중간 선거에 미칠 영향에 대한 보고서를 3시간 내로 만들어 줘.
국방장관: 우리가 만약 1994년에 북한을 타격했다면 그들은 지금 단 한 기의 핵폭탄도 가지지 못했겠지. 우리는 2006년에도, 2017년에도 똑같은 기회를 놓쳤어, 왜냐? 언제나 6개월 뒤에 있을 중간 선거를 걱정했으니까. 우리가 오늘 북한의 위협을 영원히 제거한다면 5년 뒤, 10년 뒤 미국은 우리에게 감사할 거야!
우리는 보통 기가 막힌 현실을 직면했을 때 영화 같다고 말하곤 한다. 마찬가지로 개연성이 충분한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현실 같다고 말한다. [북극성] 5화에 나오는 미국방장관의 대사는 정치의 본질을 꿰뚫는 현실적 개연성이 차고도 넘친다. 그 개연성에 기대 언제나 그래왔듯 세 가지 시사점을 던져 보겠다.
첫째, 미국이 그동안 꼴뵈기 싫은 북한을 공격하지 못했던 건 선거에 미칠 영향을 고려한 정치적 속성 '덕분'이다.
둘째, 북한이 벼랑끝 외교로 미국을 들었다 놓았다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러한 미국 정치의 속성을 간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정치인들은 언제나 주댕이로는 국가와 국민을 말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본인의 당선이다.
그러니... 정치인을 너무 믿지도 말되, 또 너무 미워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어쩌면 그들의 권력 놀음 덕에 우리가 서로 머리 끄댕이를 잡아당기며 싸우는 한이 있어도 전쟁이 안 나는 것일 수도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