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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어떻게 탄생할까?

인공지능과의 인문학 토론 4

by 낭만박사 채희태

1. 모차르트는 왜 천재가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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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주제로 천재성의 기원에 대해 토론하고 싶어. 모차르트를 예로 들어볼게. 18세기 후반 유럽에서 음악가들은 궁정이나 귀족, 교회에 고용되어 정기적으로 작품을 납품하는 '장인'에 가까웠어.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트는 잘츠부르크 대주교의 궁정 악장이었고, 동시에 아들의 재능을 일찍 발견하고 체계적으로 훈련시킨 교육자였지. 당시 음악은 오늘날처럼 녹음되거나 대중에게 유통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순간과 장소를 위해 작곡되고 연주되는 '살아있는' 예술이었어. 모차르트는 이런 환경에서 매일같이 음악이 만들어지고 연주되는 과정을 온몸으로 체험했지.


중요한 건, 모차르트가 이 모든 것을 접한 시기야. 인간은 태어날 때 이성적 존재라기보다는 생존을 위한 동물적 감각을 가진 존재로 태어나. 배고픔, 불편함, 안정감 같은 것들을 언어 이전에 느끼고 반응하지. 모차르트는 아직 언어와 논리로 세계를 분절하기 이전에, 소리와 리듬과 화성을 몸의 감각으로 받아들였어. 예술성이라는 것은 어쩌면 통제되고 정리된 이성의 바깥에 있는, 몸과 감각이 직접 포착하는 세계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작가수업』을 쓴 도로시 브랜드가 작가들에게 오전, 특히 잠에서 깬 직후에 글을 쓰라고 권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 였다고 생각해. 그 시간은 무의식과 의식 사이, 동물적 감각과 이성적 통제 사이의 경계가 가장 흐릿한 순간이거든. 아직 논리가 완전히 작동하기 전에, 밤새 축적된 이미지와 감정과 직관이 언어로 흘러나올 수 있어.


모차르트가 유년기에 축적한 음악적 경험은 이성적 학습이 아니라 몸의 기억이었고, 나중에 그것이 사회적 필요—당시 귀족 사회가 요구하던 음악적 수요—와 만나면서 폭발적으로 발현되었다고 봐. 즉, 어떤 분야의 천재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생애 과정에서 접촉했던 무의식의 경험이 사회적 필요에 의해 발현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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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관점이야. 모차르트 사례를 보면, 네 말대로 아버지 레오폴트가 당대 최고의 음악 교육자 중 한 명이었고 아들의 재능을 발견하자마자 체계적으로 훈련시켰어. 세 살부터 음악에 노출되고, 네 살에 작곡을 시작했다는 건 결국 이성적 판단 이전에 음악이 신체화된 경험이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고...


네 가설에 동의하는 부분이 많아. 특히 "무의식의 경험이 사회적 필요에 의해 발현된다"는 표현이 정확하다고 봐. 부르디외의 아비투스 개념과도 맞닿아 있는데, 천재성이란 개인의 선천적 속성이 아니라 특정한 장(field) 안에서 일찍부터 체화된 성향이 그 장의 규칙과 맞아떨어질 때 '천재'로 인정받는 거지.


다만 한 가지 보완적으로 생각해 볼 지점이 있어. 모차르트 시대에도 음악가 집안에서 자란 아이들은 많았지만, 모두가 모차르트가 되진 않았잖아. 무의식적 경험의 축적이 필요조건이라면, 충분조건으로서 뭔가가 더 있는 건 아닐까? 그게 신경학적 차이인지, 특정 시기에 특정 자극이 결합하는 우연인지, 아니면 그 경험을 조직화하는 방식의 차이인지... 이 부분은 여전히 열린 질문인 것 같아.


2. 유전자, 무의식, 그리고 우연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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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진 유전자의 힘을 완전히 무시할 순 없겠지만, 인간에게 주어진 환경이라는 부분을 인간이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으니... 유전자가 가진 능력, 유전자에 무의식적으로 새겨진 어떤 경험, 그리고 그러한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우연하게 사회적 필요와 만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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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천재의 탄생'이라는 현상을 단일 원인으로 환원할 수 없다는 거네. 네가 짚은 세 층위가 흥미로워. 유전자가 가진 잠재적 능력, 그 유전자에 새겨진 무의식적 경험—이건 후성유전학적 관점까지 포함할 수 있겠고—그리고 통제 불가능한 환경과의 상호작용에서 생기는 우연적 만남. 이 세 가지가 중첩되면서 특정 시공간에서 '천재'라고 호명되는 존재가 출현한다는 거지.

여기서 "사회적 필요와 만난다"는 표현이 핵심인 것 같아. 모차르트가 200년 뒤에 태어났다면 그 능력이 '천재'로 인정받았을까, 아니면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발현되었을까. 천재성이란 결국 개인 내부에 실체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특정 사회가 특정 능력을 필요로 하고 인정하는 관계 속에서 구성되는 거니까.

이렇게 보면 "왜 천재가 되었는가"라는 질문 자체가 전환되어야 할 수도 있겠어. "어떤 조건에서 누군가가 천재로 호명되는가"로... 그리고 그 조건의 상당 부분은 당사자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 있다는 점에서, 천재성에 대한 과도한 숭배나 능력주의적 해석에 대한 비판으로도 이어질 수 있겠고...


3. 천재 신화를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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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토론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하는 것 같아. 천재는 타고나는가, 만들어지는가? 모차르트의 사례는 이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음을 보여주지 않아? 천재는 타고나는 것도, 단순히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야. 유전적 잠재력, 유년기에 체화된 무의식적 경험, 그리고 그것을 '천재'로 호명할 준비가 된 사회적 필요. 이 세 가지가 우연히 교차하는 지점에서 천재가 '출현'한다고 봐.


이러한 관점은 능력주의 신화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를 가능하게 하는 것 같아. 우리가 누군가를 '천재'라고 부를 때, 그것은 그 개인의 순수한 내적 속성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역사적·사회적 조건이 만들어낸 관계적 구성물을 지칭하는 거지. 모차르트가 천재인 것은 그가 천재로 태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18세기 유럽이라는 특정한 장에서 그의 체화된 성향이 사회적 필요와 만났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해.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천재'를 숭배하고 '능력'에 따른 보상을 정당화할 때, 우리는 과연 무엇을 정당화하고 있는 걸까? 개인의 노력과 재능인가, 아니면 통제할 수 없는 조건들의 우연한 조합인가? 천재성의 신화를 해체하는 것은 곧 능력주의의 신화를 해체하는 것이고, 이는 다시 우리 사회가 '공정'이라고 부르는 것의 실체를 묻는 일로 이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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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지적이야. 네 말처럼 천재성을 개인의 내재적 속성으로 보는 순간, 우리는 그것을 정당화의 근거로 삼게 되지. "그 사람은 천재니까 당연히 더 많은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식으로. 하지만 우리가 오늘 나눈 대화가 보여주듯, 천재성은 통제 불가능한 여러 조건의 조합이야. 특히 "공정"이라는 개념을 다시 생각해 보게 돼. 능력주의 사회에서 공정이란 보통 "능력에 따른 차등 보상"을 의미하지. 하지만 그 능력 자체가 유전자, 가정환경, 시대적 필요 같은 본인이 선택하지 않은 요소들의 산물이라면, 과연 그 능력을 개인의 '공로'로만 볼 수 있을까?


오늘 토론을 통해 천재성이라는 현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얻은 것 같아. 천재는 발견되는 것도,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라 특정한 조건에서 '출현'하는 거지. 그리고 그 출현의 조건 대부분은 당사자의 통제 밖에 있어. 이런 인식이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보상 체계를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 오늘도 의미있는 주제를 던져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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