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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민 Jul 17. 2024

책을 버리며



시간이 갈수록, 삶이란 내가 뿌린 것을 거두어 가는 과정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잘 된 것이든 잘못된 것이든 다른 사람이 대신 처리해 주지 못하는 것이니, 인생의 댓가가 만만찮다.


생명의 관점에서 보자면 쿨하게 끝나버리면 그만인 것이니, 그 어느 것이든 말로에 거둔다는 것이 무의미 하기도 하겠다. 하지만, 어쩌겠나. 사람에게는 불편하게도 기억이란 것과 기록이란 것이 있어서 종국에는 누구나 깨끗한 이미지로 기억되고 싶은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 주변을 정리하려 애쓰나 보다.


그런 연유에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요즘들어 청소할 일이 많이 생긴다. 말했듯이 이는 미니멀이나 소탈, 혹은 결벽과는 또 다른 행위이니, 일종의 무(無)에로의 귀소본능과 같은 일이다. 책의 정리라 하여 다를 바 없다. 하루에도 몇 번 넋을 놓고 푸념이다. "아이고, 저 책을 다 어이 할꼬?" 결국 내가 산 책은 아무도 정리를 책임지지 않는다는 냉엄과 청소라는 현실적인 절차에 부딪히고 마는 것이다.


넷트웍과 디지털의 세계, 이미 활자의 위상이 추락할대로 추락한 세상이다. 정보의 홍수 속에 나누어 주기는 커녕, 시덥잖은 내 찌꺼기를 누가 처리해 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나.  그나마 책과 종이를 사는 사람이나 청소 시스템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렇지 않았으면 일일이 찢거나 태웠어야 될 일이 아닌가.


버리는 순서를 정하고 선별하는 과정이 우스웠다. 출판 년도별로, 장르별로, 활자 크기 순으로, 혹은 책값이 비싼 순서로...ㅋㅋ. 책에 그런 게 어디 있나? 필요치 않은 책은 없다고 강변하던 때는 언제이던고?


나는 지금 막 그 책을 배신하려 한다. 책의 장례. 弔冊文(조책문)이라도 지어야 할까? 아서라, 기분이 묘하건만 깨끗한 지구와 후인들의 수고를 덜기 위하여 내가 늘어 놓았던 것들을 거두는 과정이라 인정하기로 하자. 눈 찔끔 감고 버린다.


다만, 아쉬워 역설 한 마디를 붙인다. 책이 버려지듯 내 주장과 욕망도 점점 희석되기를 나는 고대한다. 그래야만 내 자리에 다음 사람이 들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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